
장맛비가 내린다. 아직 장마초기 인데 벌써 대전의 한 건물이 침수됐다는 뉴스다.
대전은 57%이상이 살기좋은 곳이라고 나타났다고 하는데
더이상 피해는 없기 바란다.
작년 작은 아들집에 물에 잠겨서 참 많이 마음이 아팠었다.
올해는 아파트로 이사해서 그걱정은 덜었다.
대전 충남 지역 곳곳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금요일
출근하다 문득 한교수님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제 학생들의 성적처리 기간이라
성적을 주면서 내 성적처리가 한 학생의 인생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공정하게 성적을 처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학기 동안 출석과 발표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업태도를 일일이 기록해 두었더니
평가하기가 편했다.
나의 성적처리로 상처받는 학생이 없기를 바라면서..
나에게 대학시절과 대학원시절을 통틀어 단 하나의 C+
이 C+가 영원히 남아서 성적증명서를 볼 때마다 그 교수님 생각이 난다.
그 성적을 주셨는데도 기분 나쁘게가 아니라 기분좋게
내 가슴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상당히 인간적인 면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문예창작과에 들어간 나는 가장 취약점이 영어 였다.
어찌 그렇게 혀도 않돌아가고 그랬던지.
신학기 산아래 있는 교정은 아직 찬바람이 가득한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영어 교수님은 온몸이 까만..
입술은 두텁고 이만 하얀 흑인 이셨다.
아...
절망이다.
한국 교수님이라면 사정이라도 해보겠지만 이교수님은 영어 점수가 하도 짜서
4학년 선배들이 이수를 못해 졸업때까지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첫시간
뭐라뭐라 하시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손을 들었다.
(나)미...노우 스피킹...노우 히어링...노우 잉글리쉬
(교수님)오 마이 갓..
(나)미...고 홈?"
(교수님)노...싯 다운..
이렇게 첫시간 나를 알리고 다음부터는 맨 앞줄에서 앉아 교수님 입만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며 여러가지 과제를 해내야 했고 급작스런 쪽지시험도 치뤄야 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쪽지시험을 본후 채점을 하신 다음
내 시험지는 꼭 접어서 주셨다.
'다른학생들이 보지않도록 하신 것이다.
절반은 틀린 시험지에 꼼꼼하게 답을 적어 주셨고 공부하는 방법까지 보태주셨다.
어느 토킹시간..달달 외운다고 외웠어도 조금 하다 막히고 말았다.
오...
말은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졌는데..
교수님..노래로 대신하면 않될까요? 하고 했더니..
오케이...를 해주셨다.
나는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른 것같다.
교수님이 박수를 오래 보내주셨다.
기말고사 시간이었다.
정말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했어도 독해도 어려웠고 듣기도 안되는 판에
기말고사는 정말 부담이었다.
책상에 시험지가 놓여지고 한숨을 쉬고 있는데
교수님이 내손에 쪽지 한장을 쥐어주셨다.
조그만 쪽지에는
노트 펴 놓고 하세요...
약간은 삐뚤한 글씨였는데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졌다.
눈물도 없이 냉철하다는 원어민 교수님이 나를 안타까워 하고 계셨구나.
그러나 다른 학생들도 있는데 나만 노트를 펴놓고 할 수는 없었다.
그냥 당당히 시험을 보자고 마음먹었다.
아무리 답을 몰라도 기분이 좋았다.
내 점수는 C+이었다.
F가 아닌게 그저 감사하고 감사했다.
그 쪽지를 문창과 교수님들께 보여드렸다니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하시면 웃으셨다.
그교수가 특별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을테고 영어가 안돼
노래로 대신하는 용기를 보았을거리고 내 마음을 두둔해 주셨다.
그래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내 성적증명서에 A+와 A가 즐비한 숲에 하얀 쌀 속의 뉘처럼 들어있는 C+하나
내인생 영원히 따라 다니며 그교수님을 기억 할 것이다.
아주 기분좋게..
종강시간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며 학생들에게
내가 A를 맞아야 하는 이유를 써내라고 했더니
두 학생이 써냈다.
"저는 1번으로 발표를 언제나 처음으로 했고 단 한번도 지각이나 출석을 하지않았고
과제와 발표를 충실히 했으며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의 강의를 충실히 들었기에 ...교수님 감사합니다."
또 한학생은 전역을 한 복학생이었다.
"저는 간간 지각을 했는데..전날 술을 마신적도 있고 늦잠을 잔적도 있습니다.
이번에 졸업하지 못하면 어머니께 다리몽둥이가 부러지게 맞을 것 입니다.
교수님 도와주세요"
늦게 한 학생이 메일로 보내온것은
"교수님 저는 시계의 알람을 제대로 듣지 못해..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아침에 잘 못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과제를 하기위해 현장까지 찾아다니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발표 할 때마다 칭찬해 주셔서 용기를 많이 얻었습니다.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문창과를 복수전공하는 광고심리학과 학생답게 자신을 어필했다.
모두 젊은 학생답다.
그들도 먼훗날 나를 인간적인 사람으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학생들의 성적처리를 하고 며칠 간 마음에 걸려하고 있는 것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성적처리 후 이의 신청은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던 나의 말에 전화 하고 싶어도 못하는 학생의 마음을
미리 위로하면서..
그때의 영어교수님의 마음 속 따스함을 배우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