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고동창생...
30여년을 함께해오고 있는 우리넷은 이빠진 동그라미의 한쪽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가는 KTX를 탔다.
그 한쪽이 부산에 살고 있기때문이다.
대전에서 넷은 한달에 한번씩 만나면서 만날때마다 여고시절 이야기에 웃음꽃을 피우는데
부산의 한쪽은 참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산으로 가기전 살뜰한 남편에게서 여행경비를 이렇게 선물 받았다.

대전역..
공무원인 선화공주님
하나님의 충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현홍권사님
장애우의 발이되고 있는 국희공주님
우리손녀가 부르는 것처럼 공주할머니인 나
떠나기 전 대전역에서 찰칵~



부산역은 비릿한 생선 냄새로 부터
아 여기가 부산이구나를 느끼게 했다
다시 부산역에서 찰칵
2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근례공주가 살고 있구나




이빠진 동그라미의 한쪽을 채운 근례공주와 그야말로 다섯공주가..
이중에 현홍과 나만 아이들을 결혼시켜 할머니가 되었고
셋은 아직 할머니가 않되었다고 루루 자랑을 하지만..
훗...할머니의 즐거움이 얼마나 많은지 니들이 나중에 알아보기를..



실은 나는 근례에게 묵직한 빚을 지었었다.
28년전 근례 결혼하던 날
작은 아이 수술로 인한 우리집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친구가 결혼한다고 하는데
마음을 보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빈손으로 가서 결혼식을 보았다.
그러고 돌아오면서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그마음의 빚을 갚았다.
근례야!!
너 결혼하던 그날 우리집 형편이 않 좋아 마음을 주지 못했어
그게 지금까지 걸려 아주 조금 내마음을 표시할게.
행복하게 지내서 보기좋다.
그 봉투안에는 내 마음의 부담을 벗어버린 껍질이 들어있었다.
근례는 기억도 없다!!됐다..그때 너 아이때문에 많이 힘든거 안다!!
억센 경상도 말투로 손을 내저었지만
옆 친구들의 박수로 전할 수 있었다.

근례는 근사한 바다의 해변을 걸을 것을 예상하고 부산을 간 우리들을
해변의 둘레길로 인도했다.
헉 운동화도 신지않았는데..
이기대 관광지라고 했다.
해안 절경은 멋졌지만 몸이 정말 고되고 힘들었다.
오르고 내리고..
니들 회 예약해 놨다!!
그 유혹으로 해안길을 걸었다.
간간 바람이 비릿했고 달콤했다.
미역냄새가 났다.
그러나 다섯의 웃음은 이기대 주변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바다는 왜 그리움의 벌판일까?
바다가 없는 대전에서 살아온 동경일까?
바다를 배경으로 선 우린 50의 중반을 향해 가고 있지만 마음은 여고시절 그때로 돌아가 깔깔
참 어려웠다 그때
서로의 집을 다니며 밥을 먹고..
부모님이 두분다 공무원 이었던 선화공주님 집엘 가면 햄이란걸 먹을 수 있었다.
그때 참 맛있었는데..
그래도 우리집에 와서 먹던 밥이 맛있었다고 한다.
참 가난했던 우리집에서 먹을게 뭐가 있었을까?
하여간 맛있는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선생님 이야기..
식빵을 튀겨 설탕을 뿌려놓은 걸 사먹던 이야기.
내가 반장하던 3학년 데모한다고 솔밭에 모여 학교수업에 빠진이야기.
그때 나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하하
지금 나는 정의도 뭐도 없는 ..








우린 다시 부산에 한쪽을 남겨두고
대전으로 ...














자갈치 시장에서 먹은 꼼장어 맛과
근례공주가 사준 도다리회..
그리고 다섯이 남겨놓은 부산의 추억!!
우리는 대전에 도착해 수라면옥으로 가서 시원한 냉면 한그릇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아 역시 냄면은 수라면옥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