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사랑밖엔 난 몰라 2011/05/20 13:57   http://blog.azoomma.com/silkjewel/283969
 
황동규 시인
출생1938년 4월 9일
출생지대한민국 서울
신체A형
데뷔1958년 현대문학 '시월' 등단
경력제4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황동규 선생님이 대덕문화원 강의차 내려오셔서

문화원장님과 김용재교수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피부가 뽀얀 황동규 교수님은

여행을 좋아하셔서 충남곳곳을 다니셨다고 하셨다.

유쾌한 대화를 나누다 생방송때문에 그분의 강의를 듣지 못하고 오고말았다.

아주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황동규 선생님

 

소나기가 화살처럼 내리꽂는 날

소나기를 쓰신 황순원님의 아드님을 만나는 기회였다. 

 
 

즐거운 편지 - 황 동 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겨울밤 0시 5분 / 황동규

 

 


별을 보며 걸었다.

아파트 후문에서 마을버스를 내려

길을 건너려다 그냥 걸었다.

추위를 속에 감추려는 듯 상점들이 셔터들을 내렸다.

 

늦저녁에 잠깐 내리다 만 눈

지금도 흰 것 한두 깃 바람에 날리고 있다.

먼지는 잠시 잠잠해졌겠지.

얼마 만인가? 코트 여며 마음 조금 가다듬고

별을 보며 종점까지 한 정거를 걸었다.


마을버스 종점, 미니 광장 삼각형 한 변에

얼마 전까지 창밖에 가위와 칼들을

바로크 음악처럼 주렁주렁 달아놓던 철물점 헐리고

농산물쎈터 '밭으로 가자'가 들어섰다.

 

건물의 불 꺼지고 외등이 간판을 읽어준다.

건너편 변에서는 '신라명과'가 막 문을 닫고 있다.


나머지 한 변이 시작되는 곳에

막차로 오는 딸이나 남편을 기다리는 듯

흘끔흘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

 

키 크고 허리 약간 굽은,

들릴까 말까 한 소리로 무엇인가 외우고 있다.

그 옆에 아는 사이인 듯 서서

두 손을 비비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서리 가볍게 치다 만 것 같은 하늘에 저건 북두칠성,

저건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아 오리온,

다 낱별들로 뜯겨지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여자가 들릴까 말까 그러나 단호하게

'이제 그만 죽어버릴꺼야', 한다.

가로등이 슬쩍 비춰주는 파리한 얼굴,

살기(殺氣)묻어 있지 않아 적이 마음 놓인다.

나도 속으로 '오기만 와봐라!'를 몇 번 반복한다.

 


별 하나가 스르르 환해지며 묻는다.

'그대는 뭘 기다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

어둠이 없는 세상? 먼지 가라않은 세상?

어둠 속에서 먼지 몸 얼렸다 녹으면서 빛 내뿜는

혜성의 삶도 살맛일 텐데.'

누가 헛기침을 참았던가,

옆에 누가 없었다면 또박또박 힘주어 말할 뻔했다.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곁에서

어둠이나 빛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별들이 스쿠버다이빙 수경(水鏡) 밖처럼

어른어른대다 멎었다.

이제 곧 막차가 올 것이다.

 

 

황동규 시인의 신작 시집 『겨울밤 0시 5분』. 2006년 출간한 『꽃의 고요』

 이후 3년 만이다. 지난해 등단 50주년을 맞이한 시인은 그동안 열세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의 열네 번째 시집 『겨울밤 0시 5분』에는 총 63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시에 대한 열정과 관록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황동규 --1938년에 평안남도 숙천에서 황순원 소설가의 맏아들로 출생하였으며,

 1946년에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미국 뉴욕 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시 <즐거운 편지>를 포함한 시 3편이 서정주 시인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1958년)하였으며,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김종삼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어떤 개인 날』, 『악어를 조심하라고?』, 『풍장』,

『버클리풍의 사랑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

『겨울 노래』,『젖은 손으로 돌아보라』,『시가 태어나는 자리』,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풍장(風葬)1

/ 황동규 /

 

내 세상 뜨면 풍장(風葬)시켜 다오/섭섭하지 않게

/ 옷은 입은 채로 전자 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 바람과 놀게 해다오/ ...

 

 


풍장 70 /

 

냇물 위로 뻗은 마른 나뭇가지 끝/

 저녁 햇빛 속에/조그만 물새 하나 앉아 있다 /

 수척한 물새 하나/ 생각에 잠겼는가 /

냇물을 굽어보는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가/

조으는가 / 조으는가 / 꿈도 없이 /

여기서 저녁 나절의 햇빛속에 앉아 조으는 한마리 작은 새는,

 풍장 되는 자신의 몸 일부를 쪼아, 새의 몸이 된 바로 시인 자신이 아닐런지요...

 얼른/ 겨울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서설이 내리고/ 밤새 내려 쌓인 눈길을 밟아 /

 나도 내 오랜 그리움을 찾아 / 이미 오래 전에 / 잊은 듯 버려 두었던

 / 길을 찾아 나서고 싶습니다. / 자유로이 떠도는 바람 되어 /

 수천 수만의 / 나비로 날아드는 / 눈송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