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기원전 1세기( B.C 33년), 한(漢)나라 원제(元帝-한 무제의 할아버지)시절,
북방의 오랑캐라 불리던 흉노(匈奴-서양 역사에 등장하는 '훈(Hun)족'의 일파로 추정)는
흡사 비 온 뒤에 초원의 풀이 자라듯 무럭무럭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호한야 선우'에 이르자 세력은 중원을 집어 삼킬 정도로 막강해졌다.
북방 오랑캐에 관한한 누대로 극심한 열등감을 갖고 있던 한 나라 조정은
궁여지책으로 선우가 요구 하는 대로 한 나라 궁궐의 한 궁녀를 시집보내기로 한다.
당시 원제는 궁중화가들에게 궁녀들의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마음에 드는
궁녀를 침소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궁녀들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자 궁중화가에게
뇌물을 바친 것은 불문가지, 하지만 미모에 남다른 자신감을 갖고 있던
왕소군(王昭君-중국 4대미인의 한사람으로 지금의 湖北省 출신)은 뇌물을 바치지 않아
화공들에게 미움을 사 추하게 그려졌고, 내막을 모르던 원제는 그중 제일 못생긴 왕소군을
시집보내마고 덜컥 약속해버렸다. 헌데, 막상 면접을 본 원제는 그만 찻잔을 떨어뜨리고 만다.
왕소군은 어느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천하미인이었던 것, 하지만 어쩌랴!
군자불실언(君子不失言)인걸. 왕소군이 궁궐을 떠나던 날 왕소군도 울었고, 원제도 울었다.
울다가 깨어난 원제는 얼마나 분했던지 수석화가 모연수의 목을 베게 했다.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 간 왕소군은 끔찍한 사랑을 받았고, 아들을 낳았다.
그 뒤 호한야가 죽자, 흉노의 풍습대로 후계자인 정처(正妻)의 아들 '복주누약제
선우'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고 그곳(지금의 내몽골)에서 죽었다.
왕소군의 고사는 우리나라의 춘향전처럼 유명한데,
소군이 한나라 궁궐을 떠나 흉노 땅에 들어 설 때,
그녀가 읊었다는 오언절구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胡地無花草,春來不似春,自然衣帶緩,非是爲腰身
오랑캐 땅이라 한들 어찌 화초도 없겠냐만('오랑캐 땅에는 풀도 없으니..'로 해석할 수도 있다),
끌려 온 이 몸에겐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자연히 허리끈이 헐렁해지고
즉 두고 온 고향 생각에 식욕이 없으니 허리가 절로 날씬해지고,
이것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함은 아니라네.
" 분석해 보건데, 앞의 두 구절은 왕소군이 직접 읊었다고 볼 수 있지만,
뒤의 두 구절은 후세의 시인들에 의해 가다듬어 졌다고 보여 진다.
오늘 날씨가 쌀쌀하다.
봄이 왔지만 봄같지가 않다.
이런 날씨에서도 여기저기 산수유 꽃이 피어나고 있다.
목련봉오리가 통통해 지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날씨가 심술궂다.
하지만 바람을 마주 맞으면 역풍이 되지만
등뒤로 맞으면 순풍이 된다고 한다.
바람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찬바람 부는 속에서
마음온도를 높이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아침에 아내를 위해 현미밥을 하고
된장을 넣은 시래기를 볶아 차려준 고마움
작은며느리가 팥죽을 사서 작은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간다며
채원이 사진까지 넣은 문자를 보내준 오후의 따스함
후배가 점심먹자며 팔을 끌던 웃음
이런 것들이 내마음 온도를 높여주는 일이었다.
어제 동서는 급기야 작은아들이 있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어제저녁 작은아이가 채원이를 데리고 갔었나보다.
동서는 채원이가 예쁘다며 전화를 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놓인다.
집에서 고생하다가 병원에 입원하니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는가 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동서에게 전화를 했다.
아침에 죽을 좀 먹었다고 한다.
봄이오는데 동서는 봄을 맞지못하고 병원에 있다 .
어서일어나 봄을 함께 맞았으면 좋겠다.
머리가 아프다.몸살기가 있는 것 같다
얼른 방송끝내고 어디가서 뜨끈한 국물이라도 먹어서
마음의 온도보다 몸의 온도를 먼저 올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