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온다
사랑밖엔 난 몰라 2011/03/15 13:56   http://blog.azoomma.com/silkjewel/283870
 


"형님!!

내가 정신이 조금 있을때 말하고 싶은건데..

나 만약 잘못되면 우리애들..그리고 그이 형님에게 맡기고 가요.

형님만 믿고갈게요"

 

오늘아침 서울로 떠난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렇게 말을 전한다.

기슴이 턱 막힌다.

"동서 ..김영희..나 김영희 믿어"

라고 말했지만 손에 힘이 풀렸다.

 

"어제 저녁 그이에게 만약 내가 없으면 이집에서 이사하라고 했어요

내 그림자 지우라고..."

 

벌써 그렇게 준비를 하는것인가

병을 안지 보름만에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 내 동서!!

 

나와 한살차이인 내동서는 정말 같이 28년을 살아오면서

우리집의 일들을 무난히 해낼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였다.

아니 힘에 부쳐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많은 나를 척척 도와

제대로 임무완수를 하게 만들어 준 동서

 

어느날 함께 살던 시동생이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그때 기억이 분홍 니트 원피스를 입고 온것 같다.

그 아가씨는 우리집 아이들을 무척 예뻐했다.

둘이 데이트 할 때도 큰아이를 꼭 데리고 다녔다.

 헤어지기 싫다고 우는 큰아이를 놓고가며 아가씨도 울었다.

그 아가씨는 그렇게 내 아래동서가 되었다.

 

우리가 사는 근처 작은 방하나를 얻었다.

주인과 부엌을 같이쓰는 집

비가오면 비가 새는 집이었다.

그때 시동생이 공무원시험공부를 하던중이라 수입이 없었다.

나도 생활이 넉넉지 않아서 저녁에 반찬을 사면서 그반찬을 반으로 나누었다.

무도 사면 반으로 나누고 동태한마리도 반으로 나누며

그렇게 나누며 살았다.

명절이 오면 우리는 그나마 월급이 나오니 집에갈 수 있는 여비를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을 나누며 살았다.

 

시동생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출근을 하기 시작했고

알뜰하게 살림을 한 동서네는 그 작은 단칸방에서 벗어나 방두칸짜리 전세로 이사를 했다.

그러며 아이들을 낳았다.

 

첫조카 예솔이..

스물여덟살

2Kg의 작은아기였다.

안고 돌아오는데 포대기 무게만 느껴지던  아기.

애지중지 잘도 길렀다.

 

그리고 둘째 예리를 낳고..

첫째와 둘째 산바라지를 맡아서 해주었다.

 

세째로 아들을 낳고..

정말 알콩달콩 살림 불리며 잘 살아왔다.

 

얼마 후 공무원 아파트를 마련해 이사를 가고

동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걱정없이 지내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병마의 침입을 받았다.

 

 

우리는 여자들이었지만 여자의 마음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여자들간에 반목은 없었다.

 

이 동서가 내게 자기의 생을 맡긴다고 했다.

무섭다.

 지금부터 긴 투병에 들어가는 우리 동서.

잘 이겨내기를 응원한다.

 

아직은 쉰셋 너무 젊고 아이셋이 그냥 있고

눈물젖은 남편이 있기에 동서가 힘을 내주기 바랄뿐이다.

 

봄날은 오는데

봄은 오는데

아직 내마음은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