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편지를 쓰고싶다
사랑밖엔 난 몰라 2010/11/25 13:29   http://blog.azoomma.com/silkjewel/283614
 


 오늘 방송은 편지쇼가 있는 날
애청자들이 보내준 편지를 분류하고 선정하고 원고를 작성하면서 방송을 준비했다.
방송원고를 다 써서 담당 프로듀서 책상에 가져다 주려고 갔는데 우리방송 앞으로 온 노란 봉투가 있었다.
노란색이 주는 경쾌함..기분이 좋아졌다.
가위로 봉투를 여니 세상에!!! ..노란 편지지 뒤에는 코스모스 꽃잎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노란 봉투안에는 노란 자주 국화꽃잎을 말려 넣어보내셨다.
아 이 그윽한 국화향..
사연은 결혼 15주년 인데 아내에게 별다른 선물은 못하고 금연으로 선물을 준비했다는 내용이었다.
금연 한달째인데 ..앞으로도 계속 잘할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는 편지였다.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국화향이 났다.
000씨죠?
어쩌면 남자분이 이렇게 섬세하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고등학교때 연애편지 쓸때 기분으로 해봤어요..받으시는 분들 기분 좋으라고요..
이렇게 연애편지 쓰신 분과 결혼 하셨어요?
아니요..지금 아내에겐 못해봤어요.
그래서 미안해요...
 
네...오늘 일 잘 하시고요..행복하세요..라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남편과 살고 있다면...이 부인은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물 대신 금연이라..그것도 좋은 방법이고..한달째니 계속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요즘은 통 손글씨 편지를 받기 어렵다. 방송 홈피에 올리면 되니까..
 
그래도 이렇게 편지를 받고보니 여고시절 정말 열심히 편지를 써댔던 일이 기억난다.
위문편지도 많이 썼고 친구 연애편지도 대필했고 내 편지도 썼고..
하하...편지를 받은 군인아저씨들이 나를 찾아올 때의 당혹감도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문학소녀의 꿈이 그때부터 시작됐으니 편지를 오죽 정성들여 썼을까?
물론 책에서 읽은 좋은 글들을 베껴 쓰기는 했었지만..그일들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무슨 편지를 그렇게 써대냐고 하셨었다.
그리고 우체부 아저씨는 혹시 댁의 따님 불량소녀냐고 물었다고 한다.
군인아저씨들 편지가 하도 많이 오니까..내 편지를 받은 그 아저씨들 다 어디에 있는 걸까?
그때 위문편지는 무작위였다. 주소를 모르니 국군아저씨께를 쓰면 학교에서 어느 부대론가 보내졌나보다.
그런데 내 편지를 받으면 모두 답장을 보냈다.
보고싶은 학생...귀여운 소녀에게..예쁜 학생에게..이런 글로 시작된 답장을 받았는데
나는 이제 50의 중반으로 가고 있다.

 

 



 

어젯 저녁 남편이 물었다.

12월1일이 결혼 만 30주년인데 뭘 해줄까?

"결혼 나혼자 했나 뭐..필요한 거 없어"

"그래도 ..백화점 가서 옷 사줄까?"

 

"괜찮아"

이소리가 좀 서운한지 아무말이 없다.

30년...참 많은 사연도 있었고 절망도 있었고 웃음도 있었고

고통도 있었지만 단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건

불행하지는 않았다는거다.

 

부부

          최석우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 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 마땅해 하고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 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경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

어느 날 몸살감기라도 호되게 앓다 보면 빗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서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잌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이말로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