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태양님의 월요편지-잊지못할 소중한 선물
사랑밖엔 난 몰라 2010/11/01 08:22   http://blog.azoomma.com/silkjewel/283531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선물 가게 일이 바빠서 매일 아침 정신없이 나가다 보면 언제나 운동화를 신게 된다. 매일 운동화만 신고 다니다 보니, 다른 신발을 신을 기회가 없다. 모처럼 가게 문을 닫은 일요일. 운동화 대신 신고 나갈 만한 게 없을까 해서 신발장을 뒤져보았다. 신발장이 번잡스러워서 이 기회에 아예 정리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작아서 못 신는 아들 운동화, 굽이 부러지거나 가죽이 벗겨진 딸애의 구두, 언젠가는 신겠지 하고 들여놓았던 내 구두들······.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신을 수도 없는 낡고 해진 신발들은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쓸데없이 어수선하기만 했던 신발장 안이 깔끔 해졌다. 그렇게 내놓은 신발들을 버릴 것과 재활용할 것으로 구분하는데,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신문으로 돌돌 말아 싼 뭉치였다. '이게 대체 뭘까? 도통 기억이 안 나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것을 풀어보았다. 깜짝 놀랐다. 털신이었다. 그나마 있던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밑창이 새서 도저히 신을 수 없는털신.. 그 털신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8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이들과 교회에 가려고 서둘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친구네 갔다 온다"던 아들애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교회는 가야겠는데······. 오지 않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헐레벌떡 뛰어오는 아이가 보였다. 추운 날씨에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들어온 아이를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지금까지 어디서 뭐 하느라고 이제 오는 거야? 엄마랑 누나랑 너기다린 거 알아, 몰라! 교회 갈 시간도 늦어버렸잖아!" 아이는 얼마나 서둘러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거리느라 대답조차 제대로 못했다. 그러고는 대답 대신 손에 든 검은 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아이의 손은 꽁꽁 얼어 있었다. "엄마 신어. 이거 신으면 발 안 시리대.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아이는 입조차 얼었는지 말까지 더듬거렸다. "이게 뭔데?" 봉지를 여는 순간 내 입이 딱 벌어졌다. 털신이었다. 할머니들이 한겨울 내내 신고 버티는 털신. 그 즈음에도 그런 털신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당시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어디서 그것을 살 수 있었는지, 그게 더 놀랍고 궁금했다. 더구나 그 추운 밤에 말이다. 아이가 말했다. "학교 가는 길목 시장에 있던데. 엄마는 가게에서 일하니까 요즘처럼 추울 때 발 시릴 거 아냐. 그래서 내가 용돈 모아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샀어."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 나는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며칠 후, 그 신발 가게 아저씨를 찾아가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가 한 달 넘게 아침저녁으로 와서는 털신에 대해 묻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아저씨, 저 털신 신으면 정말 발 안 시려요? 여기 있는 거 다 팔리면 또 갖다 놓으실 거예요?" 아저씨는 매일 인사하듯 들르는 아이에게 꽤나 시달렸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친다고 혼을 냈는데, 아이가 워낙 진지하게 털신에 대해 묻고 쳐다보고 만지는 바람에 나중에는 야단을 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에 찾아와서는 "돈이 모자라니 조금 깎아달라"고 했단다. 털신 값이 7,000원이었는데 6,850원, 그것도 전부 동전으로 내어놓는 아이를 보고 아저씨는 '고놈 참 기특하다' 싶어서 아이에게 500원을 되돌려주었다는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내 아들, 아버지 없이도 반듯하게 잘 자라주는구나.' 그러나 뿌듯한 마음 한편으로 용돈이라고 제대로 줘보지 못했는데 어린것이 그 돈을 모으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아팠다. 아이가 모을 수 있는 돈이란 게 어쩌다 내가 주는 심부름 값, 가게 손님이나 친척 들이 가끔 주는 용돈이 전부였을 텐데 말이다. 내 발은 그 털신 덕분에 그해 겨울, 조금도 시리지 않았다. 그 뒤로도 겨울만 되면 꺼내 신다 보니 어느새 듬성듬성 털이 빠지고 밑창이 새서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물이 스며들어 더 이상 신을 수 없게 되었다. 아들은 "더 좋은 신발 사드릴 테니 버리세요"라고 야단이었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 다루듯 잘 싸서 신발장 안에 넣어두었다. 비록 형편없이 낡아버렸지만, 얼굴까지 꽁꽁 얼어가면서 신발 가게로 달려갔을 아이의 사랑이 스민 그 털신을 이 세상 어떤 신발과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신을 수는 없지만 두고두고 꺼내보기라도 할 생각이다. 세월이 흐르고, 그때의 열 살짜리 꼬마는 엄마인 내가 올려다봐야할 정도로 성큼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그때만큼 다정하지도 않고 때론 무뚝뚝하기까지 해서 가끔씩 섭섭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털신을 꺼내 보면서 아이의 그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시린 엄마 발이 걱정되어 사탕 하나, 과자 한 봉지의 유혹을 뿌리친채 몇 달 동안 고사리 손으로 모은 돈으로 사준 털신 한 켤레. 그것은 그동안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중 가장 소중하고 비싼 것이었다. 그해 겨울 내내 나의 발은 참으로 따뜻했다. 아직도 그해 겨울의 크리스마스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출처 : 곁에 있어 고마워요(김경숙 외 지음) ******************************************* 따스함을 가까이 하고싶은 계절입니다. 가슴이 그렇고 날씨가 그렇고.. 10월의 마지막 밤에 따스했던 사랑을 기억하며.. 2010. 10. 31. - 밝은태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