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근하려고 아파트 입구를 나오는데 채반에 나란히 널어놓은 애호박 썬것이 눈에 띄였다.
아..이뻐라 탄성이 나오는데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시던 11층 아주머니
"우리거예요.."
"어쩜 이리 예쁘게 썰어널으셨어요?"
"씨가 있어서 발라서 썰었더니"
채반에 가지런히 널어놓으신 그정성스런 마음을 가을햇살은 잘 말릴것이다.
"얼마전에는 가지도 말렸는걸요"
불량주부..이런 묵나물하나도 준비해 놓지않고 가을햇살을 허비하고 있으니.

어린시절 어머니는 봄이면 산나물을 뜯어다 말리셨다. 고사리 취나물 망초나물 명아주잎 아주까리잎
산에들에 나는 새잎은 봄에는 그냥먹고 남은건 다 말려놓으셨다.
그리고 고구마줄기 토란줄기 가지 호박 고구마 삶은것까지 돌담장에 널어놓으셨다.
호박 늙은것도 길게 켜서 빨래줄에 걸어 말리셔서 한겨울 백설기를 짤때도 넣으시고 김치찌게에도 넣으셨다.
무슨 버섯인지 몰라도 버섯도 많이 말리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온갖 장아찌를 다 만드셨다. 깻잎은 기본이고 콩잎..무 ..감..오이..참외..
이렇게 부지런히 묵나물과 장아찌를 저장해두시고는 긴겨울을 나셨다.
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청국장을 만드셨다.
햇콩을 푹삶아 시루에 짚을깔고 아랫묵에 뭍어놓으며 콜콜한 청국장 뜨는 냄새에 코를 막다가도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주시면 환상이었던 그맛..그맛도 잊고 산다.
어머니는 청국장을 담북장이라 말하셨다.
이렇게 가을은 그리운 어머니 손맛도 그리워지게 한다.
솜씨 좋으셨던 친정어머니를 닮지못한 나는 정말 불량주부다.

가을햇살은 이렇게 찰지다.
몸과 마음의 보약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호박을 잘말리고
입까지 호강하게 한다.
돼지고기 고추장찌게에 넣으면 쫄깃하고 맛있는 호박말림
들깨 갈아넣고 볶으면 좋은 호박나물을 가을은 햇살하나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 무상의 가을햇살
몸에 마음에 뜸뿍 바르고
건강하게 보냈으면 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가을은 그리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