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오후
불현듯 엄마에게 가고 싶었다
아랫집 있는 동생과 함께 찾아간 소영원은
아직 오롯하게 눈에 덮혀있었다
상석에 쌓인 눈위에 엄마!!라고 써보았다.
엄마!! 눈부신 엄마!!
고백하자면 살아계실때 나는 살뜰한 딸이 아니었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가득했었다.
가난이 죄가 되던 시절이라고 이해는 했지만 너무나 힘들었던 어린시절의 나만의 그림자는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야 마음속의 미움을 화해할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그리고 엄마가 계시지 않는 지금은 날마다, 아니 가끔 엄마가 절절하게 그립다.


오빠들이 다녀가면서 눈을 쓸어놓고간 엄마 집.
이곳에서 엄마는 춤지않게 계신걸까?
엄마는 이렇게 누워계시다.
만질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고
대답도 없이...
그런 엄마가 그립다.
자신의 몸을 산산히 나눠 세상에 던져두고
자식들 가슴에 그리움만 되어.



동생이 엄마에게 노래불러줄까?
하더니 평소 엄마가 좋아하시던 개나리처녀를 불렀다.
그리고 나에게 노래하란다.
나는 소양강처녀를 불렀다.
엄마는 노래를 좋아하셨다.
이 동생에게 오만원을 주면서 개나리 처녀를 가르쳐달라고 하셨었다.
그노래를 완벽하게 배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개나리 처녀셨다.


엄마가 초사흘이 되면 자식들이 중요한 시험이 있을때
떡시루를 놓고 정성을 들이면서 하던 주문이 있다.
"시험장에 들거들랑 대낮같이 불을 밝혀
답을 맞게 해주시고
꿀묻은 바가지 깨 늘어붙듯 부자되게 해주시고..."동생이 눈위에 쓰면서 엄마 나 잘 봐주세요한다.
나는 22일에 작은 아들이 간호사 국가고시가 있어서 어머니께 기원했다.
"어릴적 부터 의사되는 날 태어났다던 손자 간호사 시험보니까 엄마가 책임져요!!!"
엄마에게 다녀오면 먹먹했던 마음이 환해지는 듯하다.
엄마의 한결같던 정성이 우리 6남매를 세상에서 밝게 살게 하신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