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장에서
사랑밖엔 난 몰라 2008/01/29 23:02   http://blog.azoomma.com/silkjewel/266655

 

서재 바닥이 따끈해서 누웠다가

책꽂이 꽂혀있는 낡은 일기장이 눈에 띄였다.

아주 오래된 ...1980년 1월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쓴 일기장이었다.

 

그 일기장에는 80년대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적혀져 있고

그리고 유산을 했던 기억과 지독한 입덧을 하던 고생담이 적혀있었다.

 

1979년 12월 1일 결혼 했으니 바로 다음해 부터 쓴 일기장

남편에게 받은 누런 월급봉투가 붙여져 있고

일기장 갈피에서 잠자다 떨어진 사진 한 장

1979년 5월 13일 약혼식을 하고 동네 사진관 에서 찍은 사진 한장.

스물한살때 사진...

 

스물하나...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던가.

 

5월13일 아침

약혼식은 우리집에서 치루게 되었다.

그때 마흔여섯이시던 시어머님은 초록색 한복을 입고 오셨다.

 

분홍보자기로 싼 상자에 남편의 사주와 빌로드천으로 된 옷감한벌이 들어있었다.

아무런 패물도 없이 치뤄진 우리의 약혼식

그저 같이 밥먹고

사진찍고

금강유원지에 다녀온 기억

 

아 오월의 금강유원지는 물빛이 참 파랬었다

물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가 팔딱였고

그리고 금강 어느 매운탕집에서 먹은 도리뱅뱅이와 쏘가리탕이 맛 있었던 기억이 난다.

스물일곱의 가난한 시골농부의 팔남매 장남

그리고  스물하나의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얼마나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 약혼식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 이때 둘다 참 말랐었다..."

 

"당신 정말 이뻤는데..."

"이쁘긴 ..꼭 촌띠기고만...머리는 왜이렇게 늘어뜨리고..."

 

"눈이 얼마나 총명하게 생겼어...아유..꼬마아가씨가 어찌나 똘똘하던지

그때부터 기죽어 살잖아"

 

"쳇...기죽기는..."

 

1979년에 결혼했으니 내년 2009년이면 햇수로 30년이다.

30년...

 

그세월속에 우리는 이렇게 익어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어가는게 아니라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것이다"

 

억지로 세월을 우긴다.

 

 오래된 약혼사진 한장속에 담겨진 30년

참 많은 사연을 안고 흘러갔다.

 

가슴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