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인 없는 편지
사랑밖엔 난 몰라 2007/06/06 21:46   http://blog.azoomma.com/silkjewel/249432
 

 

 

아마 오늘 그분들은 대전 국립현충원을 다녀가셨을 것이다.

며칠전 전화통화 했을 때 현충일 하루전날 대전에 와서 자고

현충일 새벽 아들의 묘역을 찾는다고 말씀 하셨었다.

 

나는 정말 모처럼 현충일 휴일을 맞아 시골아버님께 다녀왔다.

아버님 모시고 나가 점심을 먹고 마련해 간 국이랑 완두콩 깐것 마늘 다진것

멸치등을 냉장고에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 어머니 산소에 들러 풀도 뽑고 복숭아 과수원도 돌아보았다.

과수원이래야 복숭아 나무만 오십그루 심어놓고 손도보지 못하고 있는데

저절로 아름하게 자랐다.

나무 밑둥이 제법 굵다.

그냥 화사한 꽃만 봐도 어디냐고 심어놨지만 속과를 해주지 않아

다닥다닥 붙은 복숭아를 보니 마음아팠다.

 

다른 과일보다 복숭아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것도 딱딱하게 단 복숭아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복숭아 실컷 먹인다고

심어놓은 복숭아 나무

올봄 꽃은 화냥기처럼 피었다 지고

얼마나 바람과 놀아났는지 매실만한 복숭아들이

고물고물 달렸다.

그냥 놓고 왔다.

떨어질래면 떨어지고 남아서 굵어 단물들면 먹어볼 양으로...

 

돌아오는 길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렸다.

하늘을 가르는 번갯불이 찌릿하다.

모내기한 논에, 메주콩 심어놓는 밭에 단비가 될 것이다.

 

집에 돌아와 아파트베란다에 꽂아놓는 조기를 걷으며 그분들 생각이 났다.

아~오늘 얼마나 눈물 뿌리고 돌아가셨을까?

 

경산에 살고 계시는 그 분들

딸 둘을 낳으시고 얻은 아들~그 소중한 아들을 22살에 군대를 보내셨다.

지금부터 19년전 이라고 하셨다.

그 아들이 군에간지 6개월만에 사고로 죽었다.

죽었다......

 

건강하게 웃으며 ..잘 다녀오겠다고 한 아들

그 아들이 죽었다.

 

그 아들이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그때부터...그분들은 아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들의 생일..그리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대소사..그리고 그리운 마음

절절히 끓는 아버지 어머니 마음을 적어

국립현충원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편지가 오면 현충원에서는 비닐로 곱게 싸

 아들의 묘역앞에 갖다 놓아주었다.

그러기를 올해로 19년째 500여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모아 국립 현충원에서 책으로 펴냈다.

 

'수신인 없는 편지'

 

그분들을 내 프로그램에 초대하고 싶어 수소문해서  아버지와 통화하게 되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그분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건 아닐까

조심스러워 하는 내게

걱정하지 말고 말하라고 편하게 하셨다.

 

"19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절망은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은 부모를 영원히 살리고 떠났습니다.

일흔이 된 우리부부..아들덕에 편안히 살고 있습니다.

어느 아들이 부모 살아 생전 경제적인 걱정없이 살수 있게 만들어 주겠습니까?

그래서 아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고 살겠다고...

지금 노인대학에서 노인대노인 케어 봉사를 하고

상담을 하고..그리고 어려운 어른들께 도시락 배달을 하며

일주일을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 그분들

오늘 아들을 만나 어떤 말씀을 나누고 가셨을까?

아직도 사랑한다고...

아직도 사랑한다고...

눈물 뿌리며 돌아가셨을거다.

 

오늘 꼭 만나고 싶었는데 6.10항쟁 특집방송이 잡히는 바람에

그분들을 만나지 못했다.

 

현충일 밤

비가 내린다.

보훈가족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내마음도 젖고 있다.

 

늙으신 시아버지...놓고 돌아온 무릎이 시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