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가 제사음식하느라고 고생했다고 메도 올리지 않은 상을 남편이 찍어놨다
어제 7월3일, 유월 초여드레는 시할머님 기일이었다.
그리고 민선 기초단체장들의 취임식이 있었다.
우리 구에서도 구청장이 취임식을 하는 날이라서 축시낭송을 해야 해서
마음이 분주했다.
수첩에다 준비할 음식과 장을 보아야 할것을 적었다.
8남매에다가 동서가 넷이나 되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둘째동서만 올 수 있었다.
"여러가지 바쁘니까 서둘지마..축시낭송 잘하고...음식 그냥 간단히 준비해"
라고 남편은 말했지만 그건 남자의 마음이고
정성을 다해 준비하지 못하는 맏며느리...
향교를 다니시는 시아버님의 심기는 분명 불편하시리라 생각되었다.
시할머님....
얼굴은 뵙지 못했지만 맏손자인 남편을 금이야 옥이야 기르셨다고 한다.
중학교 다닐때까지 할머니 젖을 만지며 잠을 잤다는 남편은 할머니와 유일하게
겸상을 하고 할머니의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께 종아리를 맞을때도 할머니 들으실까봐 울음소리를 내지못했다고 한다.
손자를 위해 기도를 하셨고
손자를 위해 주머니를 풀렀던 할머니
할머니의 추억을 이야기할때마다 남편은 말했다.
"만약 할머니 계셨으면 당신 할머니 사랑 많이 받았을텐데..."
"피~어머님 시집살이 모질게 시키셨다며...동네 사람들이 다 알더라
무서운 할머니..호랑이 할머니였다고..."
그랬다.
우리어머님
모진 시집살이를 하셨다.
남편이 중학교를 다니도록 친정에 한번 가시지 못했고
장 나들이도 가지 못하셨다고 했다.
내가 시집가던날
'나는 우리며느리 절대 시집살이 안시키겠다'고 다짐하셨던 어머니
그 약속을 지켜주고 가셨다.
그러나 남편에게 그리운 할머니도 아버님께는 효자상을 탈수 있게 하신 할머님이시다.
할머님 편찮으실때 초하루 보름으로 새벽길 30리를 걸어 읍내에 나가
고기를 사다 상에올린 산삭망을 지내신 것으로 유명하신 우리아버님
할머님 기일에 쓰라고 직접 고사리를 꺾어 말려 보내오셨다.
그런 할머니 제사에 떡도 사다쓰고..바쁘다고 음식도 골고루 않하는 맏며느리
마음으로 고우실리 만무하다.
말씀은 않하시지만 어머님 살아계실때 온갖음식을 만드시던 어머님 모습과 비교하면
얼마나 엉터리 같으실까?
그 민망함을 지우려했을까?
"아니 그바쁜데 언제 이렇게 음식을 많이 했어...우리 할머니 손자 사랑하시더니
손자며느리에게 호강하시네..."
남편이 한수 뜬다.
그 남편 마음 왜 모르랴..일 바쁜 아내.등 아프게 준비한 고마움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서일테니...
그렇게 할머님을 기억한 하루가 지났다.
정말 등이 아파 하루종일 힘든 하루였다. 오늘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