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기를
사랑밖엔 난 몰라 2006/06/24 17:52   http://blog.azoomma.com/silkjewel/227158

 

이천수 선수가 16강 진출 좌절에 그라운드에서 엎드려 울고있던 그시간 나는 서울의

한 병원에 있었다.

 

 

 

어제저녁 모 방송국에 들어가 있는데

내 핸드폰이 급하게 울렸다.

이상하게 소름끼치는 불안한 예감이 훅하고 바람으로 스쳐갔다.

 

"형님..전데요..지금 저 서울가는 길이예요. 진이 아빠가 병원에 있다네요"

울산에 사는 세째 동서는 다급하게 울고 있었다.

"아니 왜?..."

"잘 몰라요"

"그래 ~병원에 도착해서 다시 전화해"

 

남편과 둘째네에게 전화를 했다.그리고 밤 10시  서울길을 달렸다.

"당신 어제 아들보내느라 한숨도 못잤는데

오늘 또 이렇게 힘들어서 어째~참 맏며느리 일도 많다"

 

 

12시에 서울 병원에 도착했지만 중환자실에 있는 시동생은 볼 수 없었고

동서는 혼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냥 어지러웠대요...CT촬영은 했는데 이상은 없대요

내일 MRI를 해보고 결과를 보자네요"

 

그래 그것만도 다행이다. 급하게 달려온 마음에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동생걱정에 얼굴이 하얗게 변한 남편과 둘째시동생을 병원 근처 찜질방으로 보내고

둘째동서와 나 셋이는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 남았다.

 

"형님..그사람 나으면 저 그사람 울산으로 데리고 내려갈래요

몇년을 떨어져 살았는데..그래서 병이 났나봐요..같이 살래요"

 

요리사인 세째 시동생

양평의 한 유스호스텔에서 일하며 울산의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저사람 어찌나 미련한지 자기 몸 부서져라 일만해요

요즘도 900명식사를 해먹였대요..몇달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대요"

 

그랬을것이다. 부지런하고 착한 시동생..꾀부리지 않고 일했을 것이다.

그러니 남에게 인정받고 여기저기 스카웃의 손길이 오겠지.

작년 여름 휴가때 온 식구들을 초청해 주어서 즐겁게 지냈는데

올 여름도 아버님 모시고 한번 다녀가라고 했는데...

 

그렇게 동서들과 밤을 뒤척이고 아침 7시30분 면회시간이 되어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형의 손을 꼭잡고..형수의 손을 꼭 잡고 ..왜 오셨냐고 오히려 우릴 걱정했다.

 

백짓장 같이 하얀 얼굴로라도

말을 해서  우릴 알아봐서 다행이었다.

 

착해서 괜찮을거야~정말 착해서 괜찮을거라고 말해주었다.

시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16강 진출이 좌절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저녁 생방송 준비하면서 인터넷 여기저기서 월드컵 기사를 읽었다.

 

그랬구나..그랬구나

우리인생이 우리마음대로 되지않듯이

그렇게 열심히 응원하고 열심히 싸웠는데도 그렇게 어렵구나.

 

마음을 추스리고 방송대본을 쓰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별 이상 없다네..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옮긴다네"

 

아 다행이다. 몸은 구름위에 뜬것 처럼 피곤하지만 마음이 개운해졌다.

이제 며칠만 치료받으면 다시 일어나 활짝 웃으며 일하겠지.

이렇게 간간히 우리의 발목을 잡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다시 일어나

남은 우리인생을 힘차게 걸어가야 하겠지.

 

잠시의 아찔했던 순간이 지난 이순간 많이 걱정할 결과가 아니란 것이

행복하게 한다.  

 

 

 

 

행복이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은
결코 비옥한 땅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절망과 좌절이라는
돌멩이로 뒤덮인 황무지일수도 있다


한번쯤 절망에 빠져보지 않고서,
한번쯤 좌절을 겪어보지 않고서,
우리가 어찌 행복의 진정한 값을
알수 있을까.
절망과 좌절이라는 것은,
우리가 참된 행복을 이루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절망스럽다고
실의에 잠겨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더 큰 행복을 위해,
참된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닐까.
돌멩이를 부지런히 들어내야
옥토를 만들 수 있듯이...


절망과 좌절이라는 것이 설사
우리의 삶에 바윗덩어리와 같은 무게로
짓눌러 온다하더라도 그것을 무사히
들어내기만 한다면,
그 밑에는 틀림없이 눈부시고
찬란한 행복이라는 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