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서 두오빠와 언니가 내려왔고, 오늘 막내 여동생 내외가 내려오고
대전에 있는 우리해서 6남매가 일요일 점심을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했다.
어머니 돌아가신지 7개월 되는 날
아버지 혼자 어머니 계신 병원 곁을 헤매시지 않도록 모이자고 했다.
점심은 대전에서 22년 전통으로 내려온다는 콩국수 집으로 갔다.
미식가인 막내 남동생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서..
어머니 계실때 직접 밀어서 해 주시던 콩국수
그 맛을 느끼고 싶어서 찾아간 국수집은 정말 명성 그대로 사람들로 붐볐다.
6남매 모두모여 맛있게 콩국수를 먹었는데
아버지께서 점심값을 내신다고 일어서셨다.
오빠들이 아니라고 말렸지만
"니들 맛있게 먹는것만 봐도 좋다"시며
15명 분의 콩국수 값을 내셨다.
" 니엄마 있었으면 니들 맛있게 먹는거만 봐도 좋다고 이것저것 마련했는데
엄마 없으니 니들이 와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그래서 않됐다고"
80의 아버지가 애뜻하다.
"니들 바쁜데 나 걱정한다고 그렇게 자주 오지마라
기름값도 많이 들고..."
다들 살기 괜찮은데 아버지는 늘 걱정이시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 집으로 모여 과일과 차를 마시는데
아버지는 아주 중대한 발표를 하셨다.
"장형.장형수는 부모 대신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아파트...내가 소중하게 가꾸고 니엄마와 추억이 남은 이 아파트를
큰 며느리에게 주려고 한다"
우리 모두는 박수를 쳤다.
어느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
큰 언니, 가난한 법대생에게 시집와서 지금까지 동생들 거둔 언니
막내여동생, 막내남동생을 서울로 데려가 이화대학과 고려법대를
공부 시켜서 눈부시게 키워준 언니
자신의 집을 서울로 발령난 작은 오빠에게 선뜻 등기이전을 해준 언니!
가난하고 청빈한 집으로 시집와 말없이 형제들을 다독인 언니 때문에
우리 집이 평화가 깨지지 않고 이렇게 우애를 지켜가는 건 아닌지.
오빠집에 갈때마다 언니의 놀라운 음식솜씨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고 감탄했는가!
전채요리 코스요리가 나올때마다 환성을 지르게 했다.
입맛 까다로운 동생의 도시락 반찬을 하루에 여섯가지씩 싸주며 애쓴 언니
그 막내 시동생이 좋은 직장에서 멋지게 살아간다고 행복하다던 언니다.
막내동생이 해외지사로 발령나면 큰 형수를 꼭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형수때문에 행복했다고.
언니라고 왜 갈등이 없었겠는가!
6남매 맏이의 맏며느리역할
아마 하루도 바람 잘날 없었으리라.
동생이라면 너무도 끔찍한 남편이 간간히 미울때도 있었으리라.
"남자가 잘나면 국민도 먹여살리는데 설마 동생들 건사 못하겠느냐"는
큰 오빠의 지론
간간히 여자로써 아픔도 많았으리라.
그런 언니, 그 큰며느리의 마음을 읽어내신 아버지.
우리집은 아들보다 며느리가 잘 들어왔고
딸들보다 사위가 잘 들어왔다고 칭찬하시는 아버지 마음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여든의 인생길을 걸으시면서
이제 정리를 하고 계신것 같다.
큰 오빠가 말했다.
우리 육남매중 가장 아프게 자란 큰 여동생..우리 큰 여동생만 잘되면
아무걱정 없다고...
오빠..나 괜찮아 라고 말했지만 오빠는 내손을 잡았다.
왜 그러는지 그마음을 안다. 그마음이 따스하다.
내게 이런 멋진 아버지..오빠들 ,언니들이 있다는것
그리고 멋진 동생이 있다는것, 정말 행복한 일이다.
아침에 오빠들과 *소영원에 다녀온 남편이 네잎 클로버 하나를 내밀었다.
"오늘 행운 가득하라고..."
햇살내리는 일요일 오후
오월의 마지막 일요일 방송을 준비하면서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방송으로 만들고 싶다.
내가 만드는 방송의 모토인
~온 세상 모두모두 행복해 질때까지~처럼
소영원-아버지께서 만들어 놓으신 고향의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