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의 학교가 다음주 월요일 스승의 날 휴교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하루 선생님들 모처럼 쉬시라고 마음편히 생각해도 좋겠지만
우리가 어린이날 어린 자녀를 위해 온갖 사랑을 쏟아붓듯..그래서 그 아이가 자라
어린이 날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바라보듯
어버이날
일년내내 불효하고도 그날 하루라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며
앞으로 효도하겠다고 마음먹던 어버이날 이듯
선생님 말씀도 안듣고
공부도 못하고 그런 제자가 내밀던 편지한장 꽃한송이에
고되고 고된 스승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신 세상의 선생님들 많은데..
모르겠다.
왜 이런일이 생겨났는지.
그러면 아예 달력에서 스승의 날을 지워버리던지
5월15일이 스승의 날로 표기해 두고
그날 더 선생님들의 가슴을 상처내고 있으니...
어제 내 방송에 초대되신 선생님..
그분은 40여년 선생님을 하시고 지금은 정년퇴직을 하신분이다.
일흔다섯의 연세
평생 학생을 가르쳤으니 할수 있는 건 그일 밖에 없으시다며
평생교육봉사단 회원으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그리고 사회 단체에 가서
문학을 가르치고 미술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다.
선생님은 증조할아버지부터 대대로 선생님을 하셨고 아들까지 교수로 있어
6대가 선생님만 하시는 가족이셨다.
거기다 작은 아버지 고모 삼촌 조카까지 선생님 이셔서 이가족은 모이면
학교얘기 뿐 이라고 웃으셨다.
선생님이 대학에 진학했을때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이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나 집안이 가난한지 대학학비를 제대로 낼수가 없어
교장선생님이신 아버지가 대학에 오셔서 교수님들께 사정하시는 모습을 보고
이를 물고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절대 선생님은 하지 않겠노라 다짐 했지만
아버지의 한말씀이 결국 자신을 선생님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고 한다.
"이세상 어느 훌륭한 이도 선생님의 가르침 없이는 만들어 지지 않는다
선생은 세상 사람들의 길잡이다
가난하고 힘들다고 세상의 재목을 길러내지 않으면 나중엔 그 좋은 재목을
하나도 쓰지 못하게 된다.
좋은 재목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고 어딘가에서
좋은 재목의 역할을 다하면 그만이다
선생은 그 재목을 길러낸 것만으로 할일을 다 한것이다."
그러시며
40여년의 제자들이
그것도 환갑을 훨씬 넘긴 제자들이 아직도 스승의 날이면
찾아오고 전화를 준다며 좋아하셨다.
요즘 스승의 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사회가 만들어 낸 이야기지 스승과 제자는
변함 없는 것" 이라고 하신다.
내게도 그런 선생님 계시다.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 선생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난한 집안 살림에 진학을 망설이는 내게
선생님이 입학금을 대신 내줄테니..학교를 중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결국 중학교를 포기했다.
큰오빠가 경기고등학교를 다니고 밑으로 줄줄이 동생들이 있었다.
선생님은 참 마음아파 하시고 그 쓸쓸한 졸업식에 에쁜 꽃다발 하나를 안겨 주셨다.
"그 똑똑한 머리가 아까우니 언젠가는 꼭 공부를 다시 하라"고 하셨다.
지금 그선생님이 내 모습을 보신다면...보여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내모습..20년 가까이 방송작가로..시인으로..세상의 모퉁이를 지탱하는
모습으로 사랑가는 내모습을 보여드릴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잘헸다. 잘했다 하실텐데..
.
공부를 포기했던 내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힘으로 남았던 선생님.
그분이 아니셨다면 지금 내인생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며칠전 아버지의 제자 되시는 분이 내게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 모시고 밖으로 나가 식사대접을 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사양을 하셔서 선생님 댁으로 가려고 하니 동생도 참석해 주면 좋겠다"
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제자들 ..
너무도 호랑이 같은 선생님께 종아리도 무지 맞았다고
나만 만나면 털어놓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에 세상에 나가
아는체 했고 당당히 살았다고 말할땐 기쁘다.
참 푸르게 성성했던 아버지셨다.
지금도 아버지께 공부를 하러 오는 제들이 있는데 공부할 때마다
아버지 목소리를 녹음해 두고 있다고 한다.
나중 선생님 목소리가 그리울때,그때 들으려고 한다고.
우리가 못하는 일을 해주는 그 나이먹은 제자
국전에 나가고 국전 초대작가가 된 무수한 제자들은
아버지의 글과 글씨를 사랑한다.
아버지는 그저 제자들과 집에 있는 소주 한잔 나누시는 걸 좋아하신다.
아버지는 늘 아버지 책상밑에 소주를 준비해 두신다.
물론 딸이나 아들..사위가 갈때마다 소주병을 채워두지만..
아버지는 그 맑은 소주 한병이면 그만이라고 ..하신다.
아버지는 우리들 학교 다닐때 늘 이르셨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이세상 선생님 보다 훌륭하신 분은 없다"
며칠전 아버지께 갔다가 한지로 직접 만드신 작은 한시집을 보았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쓰신 한시가 붓글씨로 씌여있었다.
"아버지..이거 언제 쓰신거예요"
"공부하면서 쓴거니까 60년도 넘었고 요즘 것도 있고.."
나는 아버지의 시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이거 읽을 수 없어서 어떡하지..."
그런데 놀랍게도 선생님을 하시는
작은오빠가 아버지 시를 해석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작은오빠는 원래 사회를 가르치는데 한문선생님 자격증을 취득했다.
주일마다 내려와 공부하고 매일새벽 아버지께 전화로 한문공부를 했다.
요즘은 한문공부의 경전이라는 대학을 읽는 오빠를 볼 수가 있다.
오빠가 초등학교 5학년때 어머니께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가난한 선생님 안될래요
나무백짐, 쌀 백가마 쌓아놓는 부자 될래요"
했던 그오빠가 청빈한 선비셨던 아버지처럼..참 맑은 가난을 걸어가신
아버지처럼 청빈한 선생님의 길을 걷고있다.
80의 연세인 아버지.
아직도 푸른 선비의 기상이 우리들에게 세상을 걷는 길잡이가 되어주신다.
청출어람 [靑出於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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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藍]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세상의 선생님들은 오늘도
제자가 훌륭하게 되어 세상의 재목이 되는 기쁨으로
스승의 날의 상처를 웃음으로 넘기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