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오빠
사랑밖엔 난 몰라 2006/04/17 08:17   http://blog.azoomma.com/silkjewel/222713
 

 

어제 청주 고모의 아들이 결혼을 했다.

나보다 한살 아래인 당고모.

어릴때 고향에서 함께 자라 친구같은 고모가 벌써 며느리를 본다.

 

친정아버지께서 주례를 맡으셨다.

8순의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어른이신 아버지께서는

혼인서약을 두손 맞잡고 하라 하시고서는

아내에게 잘하는 집이 번성하고 편안하다 하시면서

아내의 형편과 처지를 알아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셨다.

 

늘 오빠들에게 사위들에게 아내에게 잘 해야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아버지.

아내는 나의 위장과 같아서 위장이 아프면 온몸을 지탱할 수 없는거라고

그래서 위장을 보호하듯...위장이 하지말라고 하는것은 하지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어찌보면 대학자요,한학만을 하신 아버지가 그렇게 가슴이 트이셨는지

그래서 어머니께서 평생 가난한 선비의 아내로 사시면서도

함박꽃 웃음을 웃으셨나보다.

 

 

일가친척 다 모이고

아버지 아들딸 사위 며느리도 다 모인자리

우리 어머니만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 여동생이신 두 고모께서는 아버지를 보고 금세 눈물을 터뜨리시고

아버지는 동생들의 늙은 어깨를 도닥이시며

괜찮다,괜찮다 하신다.

두고모님도 벌써 칠순을 넘어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늙으신 병들고 유약한 모습이셨다.

 

홀로남은 오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나

병든 여동생을 바라보는 그 애잔함은 동기간이 아니고서는 느끼지 못할

애정이다.

 

나도 큰오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늘 웃는 우리큰오빠...어느새 머리가 희끗하다.

그렇구나...이렇게 아리구나.

 

오히려 큰오빠는 내게 아프지 말고 재밌게 살라고

바쁜 동생이 보기좋다고 나를 걱정한다.

오빠의 손이 따스하다.

 

오빠! 참 든든한 여자의 배경이다.

시집와서 내게 두명의 듬직한 오빠가 있다는것은 든든함이었다.

내뒤에서 나를 걱정하는 아버지와 오빠가 둘이나 있다는 것,

남편에게도 의식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여든,

그런 오빠 둘이 오십을 넘어 멋진 중년남자의 모습으로 내앞에 있다.

 

 

 

고모내외

울 고모는 어릴때부터 지게도 지고 꼴도 베는 억척 소녀였다.

나는 풀을 베는 빠른 낫질을 하는 고모가 무척 부러웠다.

고모 따라서 꼴을 벤다고 낫질을 해봤지만 한가닥 잡은 풀도 베어지지 않았다.

종조할아버지의 일을 도와 그 농사를 거뜬하게 지어낸 딸 아홉의

다섯째딸

시집가서도 그 집안을 훌륭히 일으킨 당당한 아줌마다.

참 이쁘다.

 

그 아들을 벌써 결혼시키다니...나도 벅차다.

 

사회를 신랑 선배라고 온 코메디언 서동균이 보아서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렇게 많은 결혼식 사회를 보았지만,사회보면서 주례사를 거의 듣지 않는데

오늘같은 주례사는 처음이었다고, 가슴에 새기고 살겠다고

마무리를 멋지게 헀다.

 

아버지와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아버지의 여동생처럼 애잔한 마음으로 오빠들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동안 나에게 쏟아져 오는 아버지와 오빠들의 애정만 받고 있었던건 아닌지

내 마음을 짚어 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