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서정시인 나태주시인을 생각하며
봄 가뭄이 계속되어 건조한 땅은 부싯돌 불꽃에도 화르르
타내릴 것 같다.
봄불은 여우불이라고 여우꼬리에 불 붙으면 팔팔 뛰어다녀
잡을 수 조차 어려운 시기에 참 쓸쓸하게 메마른 시간을
지난다. 이 쓸쓸한 봄날 생각나는 시인이 있다.
왠지 이분을 보면 쓸쓸하고 눈물난다.쓸쓸한 서정시인.
따뜻한 시를 써내려가지만 정작 자신은 쓸쓸한 사람!
내가 시집을 출판할 때 서슴치않고 발간문을 써 준 시인!
시낭송하는 목소리가 폭신해 안겨 울고 싶은 여자라고해서
웃음짓게 해준 그 쓸쓸한 시인의 손목을 잡고 이쓸쓸한 봄날을
걷고 싶다.
‘세상에 와서 시를 만난건 우연이었다.
나는 쓸쓸한 서정시인,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싶은...
바람이 불면 바람 불어서 슬프고
햇빛 고우면 햇빛 고와서 외로운 나는 쓸쓸한 서정시인’
이라고 고백하는 나태주 시인!
그는 아직도 쓸쓸하고 외로워 그 슬픈 눈을 자연에게로 맞추어놓고 눈 속의 프리즘을 통해 작고 보잘것없는 이름모를
풀꽃까지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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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충남 서천 출생
공주사범학교 졸업
현재 충남 공주시 상서초등학교장으로 재직중
1971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등 수상
*시집 <대숲 아래서>,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굴뚝 각시>, <아버지를찾습니다>,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추억이 손짓하거든>,
<딸을 위하여>,<풀잎 속 작은 길>,
<슬픔에 손목 잡혀>, <섬을 건너다보는 자리>,
<별 아래 잠든 시인>(송수권, 이성선, 나태주 3인 시집) 등
*시화집 <사랑하는 마음 나에게 있어도>
*동화<외톨이>
*시선집 <빈손의 노래>, <추억의 묶음>, <네 생각 하나로 날이 저문다>,
<손바닥에 쓴 서정시>, <슬픈 젊은 날>, <나의 등불도 애달프다>,
<하늘의 서쪽><매디매디 눈물비친 사랑아><나태주 시인앨범>
*산문집 <대숲에 어리는 별빛>, <절망, 그 검은 꽃송이>, <추억이 말하게 하라>,
<외할머니랑 소쩍새랑>, <쓸쓸한 서정시인><아내와 여자>
*현 장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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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우주를 담은 시를 쓰는 사람!
쓸쓸하기에 외롭기에 자연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시인이다.
얼마전 작고한 <하늘문을 두드리며>의 설악시인 이성선과
<산문에 기대어>의 송수권시인과 함께 진정한 서정시인으로이 땅에 남아 시의 울림판을 진하게 울리고 있는 시인이다.
*참고로 이성선 시인과 송수권 시인의 대표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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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문을 두드리며
이성선
저녁이면 내 마음은 또 숲으로 가서 새둥주리를 짓습
니다. 둥주리를 짓는 내 마음은 따뜻하게 불붙고 나를
받쳐든 가지도 따스합니다. 물소리 꽃향기가 밤빛에 반
짝입니다. 나는 이들의 체온으로 더욱 포근합니다.
밤이 깊으면 머리 위 높은 하늘에서 그분이 불을 켜십
니다. 창에 비치는 그 빛은 희미하게 숲으로 내리고 창
가에 그분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파이프를 들고 사색
에 잠겨 방안을 이리저리 거니시는 모습, 불현듯 책상으
로 달려가 글 쓰시는 모습, 그러나 다시 조용히 몸을 일
으켜 피아노를 열고 하늘 선율을 치시는 그분, 책장 넘
기는 소리, 글 읽는 소리, 종이 위 펜 지나가는 소리,
별빛에 섞이어 내리는 피아노 소리..... 허눌애 피어 있
는 이 소리와 그림자는 내 마음의 지붕, 나의 둥주리는
불을 끄고 밤하늘 지붕을 받쳐들고 한밤 고요히 숲을 지
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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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날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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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하면 그를 대표하는 시 대숲아래서를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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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아래서
-나 태주-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 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얘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내 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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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 대숲아래서는 결코 참신한 작품이 아니라는 평을 받았다.
그의 자연관조적인 동양적인 사정세계는 이미 너무도 친숙한
것이어서 그것을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밀기에 주저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시의 혼탁한 번역조 시풍의 풍미와 생경한
관념적인 무잡성과 응결력이 약화된 장황한 장시의 유행 속에서
시류에 초연하여 잃어가는 서정을 회복하고 시의 본도를 거쳐
침착하게 자신의 세계를 믿는 시인이라고 박목월 선생은 평했다.
정말 나태주시인은 가락을 아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향토성 짙은 가락을 흥겹게 풀어내고 눈물로 읽어낼 줄
아는 출렁이는 흥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몇 해 전 시인이 재직하고 있는 초등학교를 찾아간 적인 있다.
나태주시인은 학교 앞 텃밭에 기르고 있던 고구마 순을
한 아름 따주며 말했다.
“이것 맛있어.. 내가 일일이 마음으로 기른 거야~”
그러며 이왕 학교에 왔으니 온 기념으로 준다며 직접 그린
삽화 한 장에 내 이름을 써서 주었다. 참고로 나태주시인은
삽화를 직접 그리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참 곰살 맞은 마음이다. 시인의 고향을 그리는 막동리소묘
연작시는 방황하는 우리들의 마음의 키를 고향으로 돌리는
안내를 하기도 한다.
막동리 소묘
나태주
안개 속을 걸으니
속눈썹이 젖으오
마악 선잠깨어 눈 비비는 대숲은 새들의 저자요
새소리 시끄러울수록 고요함을 더하고
댓잎에 바람소리 적을수록
마음을 꼬이니 거 참 별스럽소.
나태주시인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자연에 대한 열정이다.
누구보다도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으로 알려져있다.
임실에서 살고있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처럼
금강변에 살면서 금강과 고향, 사람과 사랑,
그리고 작은 풀꽃과 나무와 바람, 나비의 몸짓,하물며 하늘의
해.달.별까지도 놓치지 않고 자신이 가꾸는 시의 화원에 풀어놓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며 시인은 작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도드라지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어느 땐 자신이 하나의 자연이 되어 자연의
정물화로 살아가고 있다.
오랜 기간 초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어린이들에게 동시를 가르치고
노래를 가르치고 그림을 가르치며 어린이들의 정서에 불을 피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각종 잡지와 다큐로 메스컴에 누구만큼 오르내린 인물이고, 시집
산문집 사화집등 무수한 책을 발간해 내고 있는 그야말로 열정이
대단한 작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서정적인 글을 쓰다보니
대표시 ‘대숲아래서’ 이후 이시를 능가하는 시를 발견하기
어렵고 문체가 지루하다시피 안정되어 있고 늘 그 시가 그 시인
듯한 느낌이다. 시대의 아픔과 격동하는 시류 속에서 자신의 살점을 베어내는 칼을 빼야하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시인들에 비해 안온하고 부드러운 서정은 가끔 사람을 슬프게 한다.
하지만 나태주시인은 강팍한 시대를 살아가는
고향을 잊고 사랑을 잊고 밟고 밟히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따순 노래를 한 아름 안기는 시인임에는 틀림없다.
상처로 덧난 가슴을 가만가만 아물리는 연고제 같은 서정으로
이 땅의 슬픔을 도닥여 놓고 정작 자신은 쓸쓸한 시인이다.
나태주시인의 그 많은 시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외로운 변방시인, 그래서 쓸쓸한 시인의 모습을 그린
‘사는 일’이란 시를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사는 일-나태주
1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먼저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두어 시간
땀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할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나랫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고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도 잠잠해졌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잘 살았다
2
세상에 나를 던져보기로 한다 /한 시간이나 두 시간
퇴근버스를 놓친 날 아예 /다음 차 기다리는 일을 포기해버리고
길바닥에 나를 놓아버리기로 한다
누가 나를 주워가줄 것인가 /만약 주워가준다면 얼마나 내가
나의 길을 줄였을 때 /주워가줄 것인가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시험 삼아 나는 세상 한복판에
나를 던져보기로 한다 /
나는 달리는 차들이 피해가는 /길바닥의 작은 돌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