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저녁 약속을 하고
아버지께 갔는데
베란다에 주먹만한 무가 옹기종기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니 엄마가 심어놓고 간 것인데......이거 심어놓고 아픈 바람에...그리고
떠나는 바람에......돌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자랐다.
가져가서 김치담아라"
실은 더럭 겁이 났지만
뽑느라고 고생하신 아버지 맘도 그렇고 아내가 남겨놓은 마지막 손길을
자식들이 감사히 여겨야 기뻐하실 것 같아 두단을 선뜻 들고 오고 말았다.
"나머지는 네 오빠들 내려와 가져간다고 했으니......"
우리가 주택에 살 때......집을 세주고 아파트로 두분이 이사하셨다.
아파트의 편리함 때문에 우리는 두분을 편안히 살게 하고 싶어
아파트를 장만하고 이사하는 날...엄마는 싫어하셨다.
그동안 함께 살아온 골목 사람들과, 함께 한 울타리에서 살던 사람들과
정이 많이 들으셨다.
음식을 많이 해서 나누어 먹고 함께 김장하고 함께 장을 담그고
도시속에서도 시골같은 정을 나누며 살아오신 세월들을
나눌 수 없음을 섭섭해 하셨다.
아파트로 이사한 2년후 쯤, 세 놓았던 주택집 앞으로 길이 났고
우리집은 헐리고 말았다.
같이 살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이사가고 길이나고 남은 땅이
덩그마니 남았다.
그곳이 엄마의 텃밭으로 변했다.
엄마는 그곳에 한약찌꺼기를 사다 묻었고 계분을 사다 부어 고랑을 내고
여름에는 상추 쑥갓 열무를 심었고 호박도 서너군데 심으셨다.
하루에도 몇번씩 아파트에서 오가며 발자국 소리를 들려줬고
무공해 야채라고 가져다 먹으라 전화를 하셨었다.

무 다섯개는 신문지에 싸서 야채박스에 넣어놓았다.
그곳에 감장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을 하셨고 고추를 심어 풋고추를 따서 양념을 하셨다.
올해도 엄마는 그곳에 200포기의 배추와 무. 갓. 파를 심으셨다.
그리고 며칠 후 어깨에 담이 든것 같다고 아파하셨다.
그길로 병원에 입원하고 엄마 몸 전체에 퍼져버린 암세포때문에
엄마는 자신이 심어놓은 배추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 하시면서
답답해 하셨다.
아버지께 배추가 어떤지 보고오라고 하셨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주 잘 크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잘 커야 김장 할텐데......"
김장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엄마는 그만 떠나시고 말았다.

무를 들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남편이 놀랐다.
"또 아프면 어쩌려고......"
"엄마 마지막 남긴 건데....힘들어도 해 봐야지....."
부지런히 다듬는데 남편은 뭐 도울거 없느냐고 주방을 기웃인다.
직장일로 학교로 친정으로 하루종일 뛰었을 아내가
밤에 김치를 담근다고 하니 안스러운 모양이다.
무 다듬은 쓰레기를 묶어 버려주고 들어온다.
"시레기 삶아서 냉동실 넣어줘"
남편은 시레기를 한주먹씩 짜서 봉지에 담으며
"무청이 통통해서 맛있겠다"한다.
"땡큐~^*"

동치미를 담글까 하다가 절여진 무를 타원형으로 잘라넣고
무청은 반만 잘라 길게 넣고 풀국에다 고추가루 조금. 생강. 마늘.소금
대파는 숭숭 잘라 맨밑에 깔고 물김치를 담갔다.
동치미는 시어지면 먹기 나쁘지만..이 김치는 익어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기때문이다.
이 김치가 익을때쯤 엄마 49제가 돌아올텐데.
가슴이 뻐근하게 아프다.

앗..새우젓을 다지지 않고 넣었더니 여기저기 보이네
아들이 말했다.
"두 할머니가 엄마 배신하고 가시니 엄마가 힘드네...와 맛있는 냄새나는데요"
일일이 사진을 찍고 글로 남겨놓는건 엄마가 마지막 주고 가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엄마가 심은 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무 어디쯤 엄마 손길이 남아 있을까?
고랑에 열무씨를 놓던 엄마의 모습이 아른하다.
배추는 오빠랑 언니들이 잘 묶어놓았다고 했다.
이번주 쯤 내려와 김장을 한다고 했다.
아마 오빠들도 엄마가 남겨놓고 간 마지막 선물에 가슴이 짠 하리라.
다시는 받을 수 없는 엄마의 선물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간직하리라.
보고싶다......병원에서 함께 사진 찍으며 V를 그리던 엄마~
보고싶다. 오늘 밤 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