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하기
엄마와 추억만들기 2006/03/15 16:47   http://blog.azoomma.com/silkjewel/220688
2004년 11월 25일 17:20:33

작년~오월

친정엄마가 갑자기 위암3기말 진단을 받으셨다.

앞이 캄캄해지고 노래지는 느낌이었다.

평생을 너무도 건강하신...정말이지 나보고 너는 팔자가 좋아 골골 하다고

자식 먹일거 생각하면 아플새도 없다고 하시며 평생을 무쇠처럼 지내신 선비의 아내에게

위암이란 진단은 육남매에게 절망같은 어둠속에 몰아넣었다.

우리 엄마는 아프지 않을 줄 알았다.

우리 엄마는 평생 건강할 줄 알았다.

 

그런 엄마가 수술을 하는 바람에.

정말 모처럼 엄마와 함께 ..시집와서 엄마와 함께 병원에서

자면서 엄마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너는 사위 팔 베고 자야지 ..이렇게 자면 못자는 데 어쩌니?"

"아니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결혼 하고 처음에 집에서 살때...니방에 살짝 들어가보면...니가 안보여서 ...

이서방 품에서 자는게 보이드라...답답하도 않나...그런 생각이 들더라..."

"에이 엄마...그런걸 다 봤어.."

 

"근데 엄마..엄마는 아버지랑 하면서 오르가즘 느껴봤어?"

"오르가즘이 뭐여..."

"그게 뭐냐 하면...에이...설명이 안되네...그러니까...부부관계 하면서 무지 좋아지는거"

"그런거 몰러"

"그런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살았어"

"그냥 살았지..그냥 얘기낳고"

"애기만 낳으려고 부부관계 한거 아니잖아"

"나는 몰러...니 아부지...그리고 니들 하고 늘 한방에서 살았는디..."

 

맞다..우린 한칸 방에서 오래도록 살았다

엄마는 아랫목에 아버지는 윗목에서 우리는 중간에서...몇년에 한번씩 동생들이 태어났다

아릿하게 아팠다.

여자로써의 그런 아름다움을 모르고 사신 우리엄마

너무 안타까웠다.

 

"근디 그거 하면 조은겨~"

엄마는 내게 물었다.

"너 이서방 팔 비고 자도 안 답답 한겨?답답 할텐디...

난 니아부지랑 이불도 같이 못 덮겠든디.."

 

"엄마 ~난 팔 안베면 잠이 않와...

그리고 있잖아 ...부부관계하면 ..무지 좋아..뼈마디가 가지런해 지는 그런 느낌이야..

그런거 못느껴본 엄마가 너무 딱하네.."

 

"별일이네....그런거 모르것든디"

 

"근데..엄마...부부관계는 몇살까지 가능한거야...?엄마 지금도 해?"

"에고 망측해라..."

"왜 망측해"

"진즉에 관뒀지"

 

"아니 남자는 지푸라기 잡을 힘만 있어도 가능하다던데..

아버지 건강하시잖아.."

"그래서 니 아버지...에이 모르겄다...그런거 묻지마라..."

 

그밤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더이상 듣지 못했다.

물론 편찮으신 엄마에게 더 물을수도 없었지만...죽어도 좋아 영화에 나오는 그분들처럼

울 엄마도 행복한 부부관계를 찾으면 좋을텐데 하는 바람만 가졌을 뿐이다.

 

수술 일년이 지난 지금

울엄마는 건강을 되찾으셨고..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을 해서 이딸에게 주셨다.

이런....

난 정말 아직도 철없는 엄마의 딸이다.오십이 가까운....





난 남의 남자와 못자요 | 엄마랑 추억쌓기
2005.02.22

열일곱,그녀의 볼은 풋복숭아처럼 발그레하고 살결은 부드러웠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의 불호령과 여섯째딸의 설움

어머니가 내리 딸을 낳고 급기야 여섯째로 또 딸을 낳자 어머닌 이 여섯째딸을 낳자마자 엎어놓고 자신도 죽어버리겠다고 음력이월 초하루 얼음을 깨고 자신의 산 빨래를 하러 개울로 가셨다.

손이 떨어져 나갈것 같은 추위속에서 핏물을 개울로 흘려보내고 돌아와 보니 그딸은 생의 끈을 놓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엎어져 잠들어 있었다.

기가막힌 어머닌 그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딸 여섯째의 이름은 분하다고 분기였다.

허긴 첫딸은 첫번째라고 처음초자를 넣어 초기....둘째는 재기

이렇게 아무렇게나 던져놓듯이 이름을 지어버린 아버지는 그래도 그때의 유학자셨는데

이렇게 여섯째까지 낳으니 얼마나 분했으랴.

 

이렇게 분하기만 한 분기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아버지 앞에서는 표현하지 못했으나 마음속으로의 고집은 옹이되어 단단해졌다.

그런 그녀가 열일곱 되던해

출타했던 아버지가 돌아오시며 그딸에게 사주단자 하나를 안겼다.

충청도 어느 산골 눈빛이 빛나는 선비하나가 있는데 가난하기 이를데 없으나 네 고집으을 받아줄 사람이라는 이유였다.

결혼식날은 다가오고 신랑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못한 그녀는 가슴이 뛰고 시집가기 싫다고 몇날을 울었으나 불호령을 내린 아버지의 엄명을 어길수는 없었다.

 

드디어 결혼식날,

원삼족두리를 하고 초례청에 나서며 이마에 올린 손을 내려 건너편 남자의 얼굴을 본 그녀는 마음속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푸르다못해 하얀 옥양목 두르마기를 입고 관대복을 입은 청년의 눈빛이 광채처럼 빛나고

젊은 싱싱함이 열기처럼 품어져나온 남편감의 인물이 그동네를 통털어 가장 잘생겼음에 얼마나 흡족했는지 몰랐다.

 

열일곱!

첫날밤...

혼례를 치른 그밤..합환주 한상이 차려져왔고 합환주를 마신 신랑이 그녀의 족두리를

 벗기고 원삼을 벗기고 버선을 벗기고 그리고 급기야 저고리 끈을 푸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 같구료"

남편의 말이 수줍어 고개도 들지못한 그녀의 가슴은 문풍지처럼 팔랑거리고

자꾸만 몸을 움츠리고 있는데

"자~잡시다~"하면서 속치마를 벗기려고 했다.

 

그만 화들짝 놀란 그녀

속치마를 부여잡고

"저는 남의 남자하고는 못자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말로 떨리게 말을했다.

 

남편은 그녀의 떨리는 손을 잡고

저혼자 타들어 가는 등잔불을 껐다.

 

"난 남의 남자가 아니요..지금 부터 영원히 당신곁에 있을 당신의 남자요"

열일곱 그녀와 스물세살의 남편

그날밤 남여상렬지사를 무사히 치르고 그동안 분기 라는 이름표를 달고 분하게 살아온 그녀의 새인생이 다시 쓰여지기 시작했다.오십오년전 어느 날에....

--------------------------------------------------------------------------

*이글은 작년에 위암수술을 하고 너무도 작아진 내 친정엄마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입니다.

너무도 눈물나고 재밌는 엄마의 결혼 생활이야기

오십오년을 아버지와 다정하게 살아오신 이야기

아직도 어머니를 선녀라고 불러주시는 아버지와의 사랑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쓰려고 합니다 





엄마!! 아버지!! 사랑합니다. | 엄마랑 추억쌓기
2005.01.09

이현옥, 이현옥, 사진

일요일 나 혼자다.매주가는 시댁에 남편 혼자 보냈다.

국을 끓여 들려 보낸 후...(혼자가기 싫은 눈치였지만 눈딱 감고 혼자 보냈다)

나도 혼자이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의 여유로움도 있지만 혼자는 왠지 적막하다

누워서 거실에 모자이크를 하다,청소기를 돌리고,세탁기를 돌리고,

그리고 찜질방을 다녀오고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

 

어제 배달돼 온 시집 한권을 읽고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올해 아직 엄마 못만났네요..저녁에 가서 저녁 사드릴께요"

"그래..지금 참기름 짜고 있는데 와서 기름도 가져가고..."

 

엄마는 매년 참기름 들기름을 짜서 육남매에게 나누어 주신다.

도시에 살면서 기름을 짜서 준다는것 쉬운일 아닌데..

 

연말에 보너스가 나왔다고 부모님 드리라고 남편이 준 봉투도 있고해서...

 

같은 대전에 살면서...30분도 안되는 거리에 살면서...

시골에는 매주 가면서...친정에는 왜그리 가지지 않는건지.

큰딸을 너무도 사랑하시는 아버지..그리고 애틋해 하시는 엄마!

 

가서 두분께 따로따로 봉투를 드렸다.

"이거 큰 사위가 드리래요"

"우리 큰딸 할 일도 많고, 많은 형제들하고 돈쓸일도 많은데..우리는 괜찮은데"

하신다.

 

"엄마..아버지..저도 괜찮아요..살만해요..아직도 그렇게 걱정이 되세요?"

"니네 식구는 전부 학생이잖니?"

"그래도 전부 벌잖아요..애들도 저한테 돈달라고 않해요..자기들이 다 벌어서

등록금도 내고,용돈도 하고,오히려 애들이 엄마에게 돈을 주는데요 뭐"

 

모시고 나가서 저녁을 사드렸다.

아주 조촐한 저녁식사였지만 너무도 잘 드셨다고 몇번이나 말씀하신다.

그러더니 참기름  들기름 한병씩을 담아주셨다.

 

"이거 직접 짜서 맛이 좋을거다..맛있게 해먹어라..그리고 왜그렇게 핼쓱하고

저녁도 제대로 못먹는거냐..어디 아프냐..."걱정이 많으시다.

"그제 에미애비는 자식 건강하믄 그만이다..우리 걱정하지 말고 네 몸이나

잘 건사하고...맛있는거 해먹고 그래라..니 몸 땜에 늘 걱정이다"

 

"에구 엄마는...난 엄마가 걱정이야...큰 수술 하셨는데...딸 노릇 도 제대로 못하고

엄마...엄마 오래 살아야 나도 건강하게 살 수 있어..그러니까 엄마 내 걱정하지 말고 뭐 드시고 싶으면 전화해요..사드릴께요"

 

돌아오는 딸에게 큰 숄하나를 건네시면서 따뜻하게 두르라고 하신다.

선물 받은거라면서..

 

가슴이 짠하다.

육남매중에서 가장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은 딸...

어린 딸 팔남매 맏며느리로 내어주시면서도..

아픈 아들 기르며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보시면서도 ...

그리고 늘 성치 못한 몸으로 바쁘게 동동이며 사는 모습을 보시면서도..

부모님은 늘 가슴 아파 하셨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행복하다.

아버지!! 엄마!!라고 부를수 있게 허락하신 두분..

아주 예쁘게 사랑하며 살고 계시다.

아직도 그렇게 사랑하며 살고 계시다.

 

평생을 자식들 앞에서 큰 소리 내지 않으셨고

어려운 일 많으셨을텐데도 낯 붉히지 않으셨고

속썪이는 자식 있었을텐데도 환하게 웃으셨고

나 처럼 힘들게 해드렸어도 근심하지 않으신 우리 부모님!

우리 엄마!!

 

돌아오는 차 뒤에서 두손 모으고 서 계시는 우리 아버지!!

 

찬 바람속을 돌아오면서 내 눈에는 따끈한 사랑이 고여 흘러내렸다.




육남매 줄기세포 | 엄마랑 추억쌓기
2004.12.27

이현옥, 이현옥, 사진

 

동행

                 최성수

 

아직도 내겐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그 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흐려진 안개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야만 하나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있는 날까지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있는 날까지 ....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있는 날까지 ....

 

줄기세포

               錦沙

 

피 가 끌어당김

떨어져 있어도

주파수가 그대 에게로 맞추어져

온통

내 몸속에

그대 피만 끓어

나를 다시 곧추세우는

생명의 줄기...

 

노래방에서 큰오빠의 바리톤음성은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2004년을 보내는 12월 끝자락 막내여동생의 집들이로 육남매가 뭉쳤다.

서울에 3남매 ,대전에 3남매,

우린 어머니를 모시고 고속도로를 달려 올림픽도로를 들어갔다.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동생이 결혼했던 한강둔치가 보이고 유람선이 보이고..

그길을 달려 행주대교를 건너니..그끝 일산에 동생의 아파트가 서있었다.

행주대교를 건너며..친정어머닌 물었다.

이다리 이름이 왜 행주대굘까? 내가 대답했다.

"이 다리놓을 때 행주치마 입고 놓았대..엄마!"

차에 있는 식구들은 모두 웃었다.

 

막내여동생 ...어려서부터 영특하기로 유명했던 동생.

교과서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동생은

초등학교부터 수재의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교욱감상 부터 휩쓸던 동생..중학교 입학고사를 만점을

맞고 들어간 동생..고등학교 3년을 전교회장까지 지낸 여리디여린 동생

(동생은 정말 몸이 약했다.나는 늘 이런 동생이 자랑스러웠고 조심스러웠다.)

서울로 대학을 가서 결혼한 큰오빠 집으로 갔고 동생을 지극히 사랑하는 큰오빠의 보살핌으로 대학원까지 마치고 아주 멋진 여성의 길을 걷는 동생.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생각하지 않던 동생에게 너무 멋진 제부가 나타났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두사람의 모습~

그러더니 결혼 5년만에 아파트 분양을 받고~올해 겨울 입주를 한것이다.

부모의 도움없이 서울에서 집장만 하가가 그리 쉽지 않을텐데...

 

우리 남매는 아주 두툼한 봉투를 만들어 주었고..물론 마음이 더 두꺼웠지만

제부가 신문에 난..경제신문에 차세대 주자 1위로 뽑힌 외국인 회사 부장으로

큼지막하게 오른 제부의 모습...에 얼마나 뿌듯한지..

"저는요..정말 힘들게 일하다가도 집에 돌아와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아이들이

아빠~하고 품으로 달려올때~그리고 집사람이 환하게 웃을때~행복을 느낍니다"

 

"참~ 맏사위가 중신애비 라더니~우리집 사위들은 어찌그리 우리집 딸들에게

그리 잘하는지..맏사위는 언제나 싱글싱글해서 좋고~둘째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이 착해서 좋고~ 세째는 상냥하고 부지런해서 좋고~"

 

엄마는 그저 흐믓하신 모양이다.  

 

저녁을먹고 식구들은 노래방엘 갔다.

큰오빠 노래를 듣고 싶어서다.

법대를 나온   큰오빠는 과를 잘못 선택했다고 할 정도로 노래를 잘불러

법대의 성악가라 이름불려졌다고 한다.

오빠가 부르는 '목련화..그네..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찔레꽃...황성옛터

한오백년.돌아오라 소렌토로..'는 환상이다.

엄마는 큰오빠 노래만 들으면 삼년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다고 좋아하셨다.

 

아~오빠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역시 우리 큰오빠의 노래실력은 우리를 따뜻한 오빠의 품속에 품었다.

작은오빠의 익살스런 노래는 우리를 웃다웃다 배아프게 했고

내 남편의 노래를 들은 노래방 주인은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은

우리 노래방에 처음이라고 노래방 1시간을 무료로 더주었다.

 

큰오빠는 이번에 내가 낸 시집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오빠~집에가서 읽어~부끄럽게 왜그래~"

그래도

"우리동생~책을 읽으면 마음이 참 편해~우리집의 최고 명사 아닌가!"

"최고명사는 무슨~우리식구들 아이큐가 너무 뛰어나 늘 주눅드는데

그래서 나는 EQ . SQ 만 열심히 키웠는데~"

"SQ가 뭔데~"

"그런게 있어~"

 

책을 다 읽은 오빠는 몇권을 더 달란다.

직원들에게 읽히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 오빠들도 이젠 머리에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늘 웃음많고 긍정적인 오빠들~동생들 일이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오빠들

지금까지 화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없는 큰오빠와 한번도 걱정하는 모습을 본적없는 작은오빠~그들이라고 서울살이가  녹녹치만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늘 괜찮다..오빠들은 괜찮다 하면서 동생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있는 오빠들..생각해보니 이건 우리집에 언니들이 잘 들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가막힌 코스요리를 잘하는 큰언니와 붓글씨 쓰기와 노래부르기 그리고 다양한 운동에 심취하는 작은언니의 적극성이 우리 오빠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건

아닐까 싶어~두 언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 또 하나 ~여동생의 집장만으로 친정부모님의 짐을 덜고

형제들의 기쁨을 배로 더했다.

우리 형제들의 상생 ~줄기세포가 늘 건강하기를 바라며 서울하늘 바라보며

또 하나의 느낌을 심어놓고 돌아왔다.




아! 아버지!! | 엄마랑 추억쌓기
2004.12.19

이현옥, 이현옥, 사진

                                                          (시골 가는길..서리꽃 핀 용담댐...에서)

 

용담댐 ..그 너머 늙은 아버지가 계시다.일주일마다 찾아가는 길..어쩌면 힘들고

내게는 버거운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용담댐 서리꽃핀 그곳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가슴엔 아마 날카로운 서리꽃 무던히 피었으리라.

그 서리꽃이 심장을 찌르고..눈시울을 찌르고..그리고 돌아오는 발걸음을 찌르고

그래서 아프리라...

이현옥, 이현옥, 사진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연극 '아버지'관람)

 

오늘 저녁 친정아버지.어머니를 모시고 여동생과 함께 연극 '아버지'를 보았다.

김정현 소설을 극화한 연극'아버지'

삶이 고단할때 기대고 의지하고픈 아버지.어느땐 아버지는 원망의 대상이다가

그리움의 대상이다가..애증의 대상이다가..그러다

너무나 가슴아픈 그리움의 대상이다.

내 아버지!일흔 여덟의 내아버지는 사랑만 퍼올리는 분이다.

"계좌번호 써라"

흰종이를 내미시며..."내일 아침 네 통장으로 아비의 마음을 넣으마...

책도내고...그리고...아비의 가슴에 기쁨을 준 너에게 ..어쩌면 마지막 일지 모르는 아비의 기쁨을 넣으마....."     난 아버지께 계좌번호를 적어드렸고

그리고 아버지가 주신다는 액수에 가슴이 저려왔다.

아버지 연세에 상상도 하지 못할 큰 액수였다.

 

아버지의 마지막추신/달리 아무것도 줄수없는 아비..그래도 마지막 남은 목숨

하나라도 너희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기꺼이 바칠것이다.사랑한다

 

연극 마지막 대사처럼 ..내 친정부모님도 자신들의 몸을 병원에 기증하셨다.

연극내내 나는 울었다.

이현옥, 이현옥, 사진

                      ( 아내역을 맡은 사랑하는 후배...눈물을 쏙 빼게 만든 그녀의 웃음)

 

그녀를 사랑한다.그녀가 해냈다.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녀의 눈물이 그녀가슴의 아픔을 깨끗이 씻어내길 바라면서...

'아!이겨울!아버지 당신이 그립습니다'




孝子 不如惡妻 | 엄마랑 추억쌓기
2004.10.14

이현옥, 이현옥, 사진

                                               (아래 내용과는 관계없는

                                          이사진은  두분이 예쁘게 살고계신 나의 친정부모님)

 

경로의 달 10월 !

여기저기 어른들의 행사가 반짝하고 열린다.

자신의 모든것을 자식에게 쏟아주고 마른 등걸만 앙상하게 남은 어른들~

너무도 경악하는 사실은 요즘 노부부가 함께 저 세상의 길을 선택해 떠나고 계신다는 것이다 .

하루 10분꼴로 자살을 택해 자식들의 짐을 덜고자 한다는 뉴스는

정말 우리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고 나 자신도 책임을 아프게 느끼고 있다.

 

더구나 요즘은 노인학대가 심해져 노인학대신고센터의 사진전을 보면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세태에 이르고 말았다.

경로효친 사상은 이제 아득한 역사의 단어가 되고 말았고

어른중심의 생활이 아닌 자녀중심의 생활은 우리의 노후를 불보듯 뻔한 예측을

만들게 한다.  

 

어제 우리 방송에서는 10월 경로의 달을 맞아 경로 孝 큰잔치를 마련했다.

대전 안영동 뿌리공원~우리선조들의 뿌리를 알수있는 성씨 시조들의 역사를 조각물로 만들어 아름다운 뿌리를 찾게하는 조각공원

그곳에 대전시내 5개구 어른들이 모이셨다.

잔디광장 가득 메우신 5천여분의 어르신들...

스포츠댄스.농악 사물놀이.공굴리기.모래주머니 넣기.등의 운동을 하며 어린아이

처럼 즐거워 하시는 모습에서 젊음을 다시 되찾으신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맡은 행사는 어른들의 노래자랑 이었다.

한달전 부터 구성하고 가수 확인하고 어른들 신청받고 리허설하고 대본쓰고

또 어른들을 긴장하지 않도록 안아드리고 손잡아드리고 어린아이처럼 포근하게 대해 드리는 일이었다.

잠시 눈을 딴데 돌리면 없어지고 자리를 뜨시는 분들때문에

내 눈을 어른들께 맞추어야 했다.

 

오프닝이 끝나고 가수 현진우의 첫무대로 유지나 진요근 엿가위부자 이효정의

무대와 초대되신 어른들의 노래는 2시간 동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클로징 멘트와 함께 구성한 내이름은 잠시 공중으로 흩어지고

갑자기 가슴이 텅비어졌다.

입안이 쓰고 팔 다리에 힘이 빠졌다.

 

오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을 또 이렇게 마감하는가보다~

현기증이 일었다.

 

스텝들과 함께 한 저녁자리~

허한 가슴에 소주 한잔을 부었다.

메마른 가슴에 불이 붙어 뜨거워졌다.

 

그러며 그 어른들을 생각했다.

복지관에서 만난 파트너라며 함께 춤을 추던 어른들.....

파트너가 없는 할머니는 외롭다고 내게 하소연을 하고

파트너가 있는 분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더 건강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였다.

 

아름다운 비단노을 같은 황혼을 즐기고 계셨다.

 

열효부가 악처 하나보다 못하다는데...홀로 밤을 보내실 늙은 시아버님

생각에 소주 한잔을 더 부었다.

또 한잔을 부었다...

 

그리고 울컥...뜨겁게 올라오는 눈물덩이를 삼켰다.

무심한 가을 밤...길기도 하실텐데...찬바람 가슴에 가득하실텐데...

다른 어른들께 그렇게 곰살궂게 대하면서 왜 나는

내 시아버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지....마음 아프게 가을밤을 뒤척인다.




아버지 향기 같은 꽃' 코스모스' | 엄마랑 추억쌓기
2004.07.27

이현옥, 이현옥, 사진

가을꽃이라 부르는 코스모스가 간간히 피어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이 폭염에 피어나 그 가냘픈 몸매로 뜨거움속을 버티고

있는지 안타깝기도 하지만

방긋한 얼굴로 견디고 있는 모습에서 나도 버텨야 한다고

이 더위를 견뎌내야 한다고 마음 다부지게 먹는다.

 

언제부터 내가 코스모스를 죽을만큼 좋아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리고 왜 코스모스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코스모스다.

가을로 접어들어 코스모스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벌써 가슴이 울렁거리고 이상한 멀미를 한다.

 

끝도없이 꽃이 핀 길을 달리고 나야 좀 가라앉는다.

 

초등학교 2학년때쯤 이던가!

 

시골 신작로에 사열해핀 코스모스길을 걸어 등하교를 했다

하양.빨강.분홍 색색의 코스모스는 어린 내키보다 훨씬 커서 꽃안에 숨으면 내모습이 감춰질 정도였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꽃길에서 해찰을 했다.

꽃 냄새도 맡아보고 꽃을 따서 머리에 꽂아도 보고.....

 

그런 어떤 날

그날도 코스모스의 알싸한 냄새에 취해 꽃밭을 헤메다 돌아오는 길목에

아버지가 서 계셨다 .

어린딸 치마를 팔랑거리고 돌아오는길..하도 해찰을 하니까 아버지는 해바라기처럼 목 길게 늘이고 딸을 기다리셨다.

 

내 눈에 뜨인건 아버지가 들고 계신 꽃 방망이였다

땀이 송송맺혀 달려온 딸 에게 안겨주신 사랑

아카시아 나무에 코스모스꽃잎을 꽂은 꽃방망이....

딸이 코스모스를 좋아하는걸 눈치채신 아버지가 딸에게 줄 수있는 최고의 선물을 만드셔서 이딸을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그 꽃을 받아들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아버지는 번쩍 안으셨다.

그리고 말씀 하셨다.

 

(하양은소녀의 순결 이고

(빨강은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다)

 

이현옥, 이현옥, 사진

 

그때 부터 였나보다

내가 코스모스를 죽도록 좋아하게 된 것이....

유난히 나를 업고 다니기 좋아한 알싸한 아버지 등 냄새 같기도 하고

어느땐 주막에 들려 막걸리 한사발 하고는 날 업고 흥얼거리시던 노래 같기도 한꽃..코스모스.... 

 

내가 결혼하던 날 영어를 전공하신 주례선생님께서는 "가정의 코스모스를 지키는 결혼생활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다.하마트면 웃음이 날뻔 했지만   'Cosmos' 그 뜻에는 질서라는 말도 있다는 것을 알고난 후

정말 명 주례를 하셨단 생각이 들었다.

 

여리고 가냘프지만 웬만한 바람에 꺾이지 않는 꽃

그리고 강한 생명력으로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며 살아가는 꽃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꽃 코스모스

 

가을을 먼저 알리며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꽃

애잔하고 짠한 느낌으로 물기어린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꽃 코스모스가

철 이르게 피어 내 가슴을 벌써 부터 흔들어댄다

 

올 가을은 또 얼마나 가을멀미를 할것인가!

불혹의 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나는 얼마나 아파할 것인가!

 

또 그 알싸한 향기에 나를 업어주던  아버지의 젊은 등이 얼마나 그리워 질것인가!

아버진 어느덧 여든에 가까운데....

 

나는 또 지천으로 코스모스 피어나면 가을멀미 멈추러

떠나야하겠지.

아버지 향기 같은 꽃 코스모스를 찾아서.......




엄마가 머리를 잘랐어요 | 엄마랑 추억쌓기
2003.10.14

출처 : 비공개 입니다.
내가 철이 들기시작하면서 본 엄마의 머리는 쪽진 머리였다.젊은 나이인데도 비녀를 꽂은 엄마는 할머니같았고 그런 모습을 하고 학교라도 올라치면 나는 엄마가 다른아이들 엄마처럼 파마를 하고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엄마의 쪽진 머리는 엄마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윤기나게 검은 엄마의 머리는 앉으면 땅에 닿을정도로 길었다,
혼자서는 머리를 따서 쪽을 찌기가 불편하니까 엄마는 가끔 내게 머리를 땋아 달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의 긴 머리를 만지면서 동백기름이 손에 묻는것이 너무도 싫었다.
긴머리를 참빗으로 촘촘하게 빗어내리고 거기에 동백기름이나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엄마의 머리는 그야말로 반짝반짝하게 빛이났다.

앉은 화장대 앞에서 엄마는 머리를 빗으며 참 행복해 했다.
엄마의 머리가 참으로 무서웠던 적도 있다
그건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때인데 엄마는 그 긴머리를 풀고 곡을 하고 계셨다.
그 뒷모습이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무서운
할머니 같았다.
내가 시집온 후로 엄마의 머리를 땋아주는건 아버지 몫이였다,
아버지는 엄마의 긴 머리를 척척 잘도 따 내리셨다.
아내의 머리를 땋아주며 행복해하던 아내를 위해 아버지는 싫다 내색 없이 엄마의 머리를 책임지고 있었다.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추운 겨울날에도 엄마는 은비녀를 단정히 꽂고 한복을 입고 계시면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든 엄마는 눈에 띄였고 고운 한복과 어울린 한국여인네의 자태를 간직하고 계셨는데...

위암3기의 엄마는 수술전날 그 긴머리를 자르셨다.
병실에서 보자기를 걸치고 미용실 아줌마의 가위에
무참하게 잘려나가는 엄마의 머리를 보는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에게 긴머리는 목숨과 같은 것이었는데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입을 꼭 다물고 눈을 감은채 자신의 머리가 잘려지는 순간 엄마는 무슨생각을 하셨을까?

아버지는 검은 비닐봉지에 엄마의 긴 머리를 주워담아 조끼 주머니에 넣으셨다
아마 아버지에게도 특별한 엄마의 머리이리라
아침마다 아내의 머리를 빗기며 나누었을 은근한 사랑도 있었으리라

그머리는 아마 아버지의 책상서랍에서 엄마의 옛시간을 안고 간직되겠지
엄마는 짧게 머리를 깎고 아주 귀여운 할머니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쁘다고 엄마 정말 이쁘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자신의 머리가 잘려나간것에 텅빈 가슴으로
머릴 만지고 계시겠지

물론 엄마의 머리는 시간이 가면 다시 길겠지만
이젠 우리엄마는 암투병을 하면서 그 아름다웠던 쪽진 머릴 다시는 할수 없을지도 모르지

우리 6남매에게 지조를 알게한 엄마의 긴 머리가 잘려나가듯 엄마 몸속에 있는 암세포까지 잘려나가기를
기원 하며 엄마의 쾌유를 진심으로 빈다





부모님 결혼 53주년에 | 엄마랑 추억쌓기
2001.11.21

출처 : 비공개 입니다.
부모님 결혼 53주년

어제는 친정부모님께서 부부의 연을 맺으신지 53주년 되시는 날이어서 6남매가 모였다.
그동안 사느라고 결혼기념일 한번 챙겨보시지 못한 부모님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다.
17살 어린나이에 엄한 할아버지가 정하신 자리로 오시면서 시집 안가겠다고 내내 울던 어머닌
초례청 마당에서 도대체 내신랑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 눈위로 올린손을 살짝 내렸는데
희디흰 옥양목 두루마기를 입으신 아버지 얼굴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았다나...
그 길로 53년간 울음 그치고 살았다던 어머니
첫날밤 '나는 남의 남자하고 못자요'라고 하셨다던 어머닌 6남매의 강한 어머니가 되셔서
이세상 바람은 다 맞아가면서 육남매를 키워 내셨다.
어머닌 늘 배가 고프셨고 늘 의복이 허름했고 늘 힘드셨지만 육남매 공부잘하는 것이
살아가는 힘이라며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니
아 -거친음식에 거친옷에 수십년 세월 편하지 못하셨던 어머니가
그래도 다행인건 일흔의 연세에도 건강하시고 아직도 소녀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으셔서
노래 좋아하시고 책읽기 좋아하시고..
춘향전을 이틀동안 다 읽으셨다면서 눈이 침침해 읽는걸 어려워 하니까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낭낭하게 읽어주시더라고 행복하게 웃으셨다.
그랬다
어머닌 옥루몽.숙영낭자전.홍길동전 .삼국지.등등의 책을 눈내리는 겨울 밤새 읽으셨고
지금은 초등학생 글씨로 반야심경을 쓰시고 자신의 이름을 한문으로 수백번 쓰고 계신다.
아버지 붓글씨 쓰시는 곁에서 어머닌 그 옛날 남루했던 기억을 지워 나가시며
남은 생을 두분이서 기대어 지내신다.
우리부모님은 자신들의 사후를 병원에 의탁하신 아주 남다르신 분이시다.
이세상와서 공헌 한것 없고 자식 호강한번 시키지 못한 몸
병원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고가고 싶다시며
사후신체기증서를 만드신 부모님!!
가슴은 저리지만 그분들의 뜻을 어길수가 없다
지금 바램이 있다면 그런 부모님의 결혼 60주년 회혼례를 성대하게 치뤄드리고 싶은데..
세월이 약속을 지켜줄런지....
두분의 모습을 보고 돌아오며 나도 두분처럼 부부간 화합하고 자식들 앞길 가로막지 않도록 정성스런 말을 쓰며 남들에게 상처주는 말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아버지 늘 말씀 하셨다
말씀언 변에 이룰성 자가 정성성 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