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르지만 나에겐 튀는 애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처음 튀기 시작했던 건.
유치원 시절 여름 원복을 맞추러 양장점에 가서 부터 내 기억에 시작이 된 거 같다.
당시 바로 밑 여동생을 임신한 엄마가 입텃 때문에 친구 엄마에게 부탁을 해서 함께 옷을 맞추러 따라 갔는데 여름 복장의 모자가 맘에 안든다고 모잔 절대로 안맞추겠다며 내 생각을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랬던 일을 두고두고 친정엄마가 이야기를 해줘서 기억에 남게 되었던 일일테지만.
그 모자는 어린 내 눈에 이제까지 써왔던 내 모자에 비하면 한없이 유치하고 촌스럽고 더운 여름에 쓰기엔 통풍도 안되는 그런 재질의 모자였던게 이유였다.
당시 10회 졸업이었는데 당돌하게 촌스런 모자를 못쓰겠다고 했던 아인 전무후무했다는...
5형제의 장남의 첫딸로 태어나 그 시절 곱게 다림질한 원피스에 구두에 리본이 묶인 모자를 쓴 나의 모습은 동네 애들과 어울려 놀기 어려운 존재였었다.
나의 깔끔병 때문에도 런닝과 빤스 차림의 동네 아이들과 땀이 범벅이 되도록 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었기도 했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철푸덕 주저앉아 공기하는 흙묻은 손도 난 두려웠었다.
그래도 순박한 동네친구들은 그런 날 매일 불러주고 놀아주었다.
유치원을 다닌 건 당시 같은 계열의 사립국민학교를 입학하기 위한 준비였는데 은행알을 잘못잡아 떨어져 동네친구들과 동네 국민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희안하게도 그 학교 개교이래 유치원교육을 마친 아이는 나 혼자였단다.
그렇게 난 튀는 애가 되어갔고 사소한 나의 다른 부분이 튀는 행동으로 친구들에게 각인이 되어갔지만 친구들이 나에게 항상 호감을 가진 건 그들이 순수해서였던 거 같다.
그런 친구들과 동화되기 위해 비슷한 행동을 해보긴 했지만 그것조차 튀는.
5학년 여름 방학때 인사도 못하고 서울로 전학을 가버려 그 시절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가슴 한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자의반 타의반 튀는 날 친구로 놀아준 순박한 아이들이 그립다.
세월이 흘러 다시 대전에 인연이 닿아 살기 시작한지 15년 째.
가끔 그시절 친구들은 여전히 날 튀는 애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