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남편이 동문회를 마치고 술이 잔뜩 취한채 친구를 한 명 달고 들어왔다. 나고 자란 곳 아닌 이곳에서 그것두 직장 따라 온 대전에서 다른 직종의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당시에 친했던 안친했던 갑자기 끈끈한 우정이 샘솟는가 보다.
한밤중에 정적을 가르는 택시 문닫는 소리와 떠나는 엔진 소리에 혹시나해서 창밖을 주시해 보니 갈지자의 두 남자가 공터에 방뇨를 하는 폼이 하나는 내 남편 뒷모습이 분명하고 한 남자는 낯설어 눈길이 자꾸만 갔었다.
그 자린 우리집 두찌가 영역을 표시하는 곳인데... 볼 일을 마친 두남자는 우리집 대문을 들어선다.
하루의 간장감이 풀어진 우리집 모습 그대로... 손님을 맞이하고 술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난 그가 최근에 병으로 죽을 뻔한 경험을 했고 그 후로 인생관이 달라지면서 종교에 심취하게 됐으며 부부관계를 재정비 하기 위해 종교단체에서 하는 교육에 참가를 하고서 부부사이가 개선되어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음을 알았다.
45년 만에 만난 남편의 친구는 그렇게 자신의 변화를 종교의 힘으로 힘주어 이야기를 했고 그 때문에 난 밤새 종교적 갈등에 휩싸였는지 꿈에 한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이가 나타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요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살면서 반듯하고 인간적으로 따뜻한 성품의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종교에 관심이 가는 것이 확실하다. 반면..그렇지 않은 경험 또한 종교에 대한 나의 반감을 지속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그 갈등이 꿈에 나타난 것인데... 이젠 종지부를 좀 찍고 싶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집안 일로부터 아침을 시작하면서 정리 되어지는 마른 빨래와 깨끗하게 정리되는 그릇들을 보면서 내 마음도 하나씩 정리가 되어지는 느낌이 되었다. 항상 종교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그들에게 나의 종교저 자유에 대해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고 흔들려 댔던 것을 부끄러워 했는데... 궤변같은 나의 변명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려면 학교에 가듯이 신앙을 갖기 위해 교회나 성당을 찾겠지만... 공부하는 방법은 스스로 게으르면 아무리 학교에 성실히 출석을 해도 머릿속에 들어가는 것이 없는 이치처럼 교회나 성당을 찾지 않아도 배움에 대한 갈망과 목적을 찾듯이 이간의 선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나의 궤변스러운 변명이 떠오르기 시작을 했다.
그동안은 나는 선한가 악한가를 두고 양심이 많이도 흔들렸지만... 또 제도권의 학벌만을 추구한 것 처럼 종교적인 권유로 가끔씩 내 마음 송두리째 흔들리곤 했지만 이젠 조금 자유로운 핑계 꺼리가 생겨난 듯이 홀가분하고 자유롭기만 하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지혜로운 사람이 있듯이 내가 어떤 종교에 소속하지 않더라도 선한 사람이고 싶다. 그 사실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