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서 부모님께서 오셨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주셔도 어느 댁 뉘인지...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른채 결혼식엘 갔습니다.
결혼식에 가서는 부지런히 인사하고 아는체 하지만 설명을 들을 때만 아는 듯 하다가 이내 일상으로 돌아와선 똑같은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지요.
이번 결혼식의 주인공은 친정 아버지의 외사촌의 큰 딸의 혼사였습니다.
제 돌아가신 할머니의 남동생의 따님의 따님으로 할머니 성씨를 가진 저만큼의 피가 섞였다고 할까요...덕분에 아버님의 형지분들까지 모두 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요.
친정 쪽 애경사에서 친지들을 만나고 나면 제가 나이를 먹는 만큼의 인간사 희노애락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곤 합니다.
친지들의 과거사로 부터 현제의 고단함이 짐작되어지는 분들을 대하려면 참으로 마음이 무겁고 안타까워 집니다.
그런 어른 중에 결혼식 내내 함께 움직이게 된 작은 아버님의 사정은 항상 마음이 무겁습니다.
작은 아버님은 오형제의 막내로 할머니께서 아이를 낳으면서 심장병이 생겨서 그 후로 누워 병치례를 하시다가 제가 태어나긴 전 근 10여년을 앓다가 돌아가셨대요.
그러니 그 작은 아버님은 엄마의 정도 돌봄도 받지 못하고 정에 굶주려 자라났겠지요.
독자였던 할아버지는 당신 몸은 끔찍히 살뜰했던 양반인데..아이들에게 따스한 부모의 정보다 엄격함과 미숙함으로 자식들을 돌볼 능력이 부족했었답니다.
그래서 갓 시집 온 우리 친정엄마가 어린 시동생들의 엄마노릇을 하면서...친정 아버지가 아버지 대리 노릇을 하면서 그리 자란거지요.
형과 형수로 부모 대신 애는 쓰셨지만 충분한 애정은 아니었겠지요...
절대 부족한 애정이었을겁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낳고 비로소 행복한 가정을 꾸리나 했었는데 오로지 가정밖에 모르는 작은 아버지에게 작은 엄마는 커다란 배신을 했어요.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건설현장 경리를 도맡아 하셨던 작은 아버지는 교통이 불편하던 때였으니 자주 집에 올 수 없었고 그 뜸한 시간의 여유와 비례한 경제적인 편안함이 작은 엄말 유혹하여 화투놀이를 하게된 겁니다.
어린시절 방학이라 작은 집에 가면 저 혼자 집을 지키거나 혼자 밥을 먹는 이유를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런 일이 숨겨진채 오랫동안 진행이 되었고 그 와중에 여유자금을 사채에 빌려줬다가 뜯기면서 제가 결혼 할 무렵에서 돈문제가 터져서는 손을 댈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던 겁니다.
결혼 준비로 집에 있던 어느날...
작은 엄마가 울면서 우리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하소연했던 사연과 그 후 종적을 감추고 사라진 뒤 여러거지를 종합해 사정을 가늠해 보면 화투를 심심풀이로 치다가 그 모임 중에 사채하는 이가 돈을 끌어가서는 원금을 주지않고 도주하였고 작은 엄만 본인의 돈 뿐만이 아니라 동네에서 신망을 얻었던지라 남의돈까지 가져다가 이자를 받아주었었나 봅니다.
자신도 감당할 수 없어서 밤도망으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는 종적을 감추고 돈벌어 오겠다는 통속적인 변명을 하고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눈에서 사라졌답니다.
그 후 작은 아버진 어린 두딸을 혼자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고 가난한 살림으로 더욱 궁색해져갔지요.
게다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엄마랑 연락이 닫았는지..큰 아이 집나가고 또 작은 아이까지 줄줄이 집을 나가버려 우리가족에겐 한없이 잔정많고 소심했던 작은 아버님이 혼자가 되어 고독하고 쓸쓸하게 빈집을 지켜내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가슴이 아픈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애경사에 빠짐없이 나오시고 조용히 자리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눈인사나 아는체 만으로는 부족한 아린 마음이 남곤 합니다.
그게 뭘까...
이번엔 작은 아버지와 아이들이 함께 움직이며 식사를 하고 한테이블에 앉아 어색하고 힘든 대화를 한참이나 나눴기 때문에 큰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긴 역사를 이야기 해줬어요.
딸애의 눈에 외할아버지와 다른 모습이 이해가 안갔었나봅니다.
그래도 조용조용 수줍게 웃는 할아버지의 따듯한 성격은 파악을 했는지 그분의 삶이 안됐고 마음 아프다며 다음에 만나면 할아버지를 알았으니 더 따뜻하게 할 수 있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딸래미를 보면서 제 마음이 한켠 뿌듯하고 한편 아려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