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축제로 유명하다는 영평사엘 다녀왔습니다.
도자기 모임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과 우리 집에서 퀼트 모임을 하는 날인데 소풍을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제가 사는 곳이 신도시라서 모두들 최근에 이사를 온 관계로 동네 친구들이 따로 형성되지 않은 사교에 배가 고팠던 아줌마들이지요.
여러 곳에 흩어져 살다가 이곳에 모인 관계로 오랜 대전 생활 중에도 혼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곳이나 먹을 곳을 새롭게 가르쳐 주고 알아가는 재미있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 영평사는 그래서 알게 되어 구절초 구경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흥분이 되고 기다려지는지 (잠을 깊이 들지 못할 만큼)...
늦게 커피를 한 잔 마신 탓도 있지만( 딸래미가 피곤해 보인다고 한 잔 타주마 하길래 거절할 수 없어서 마셔줬더니만...) 낯선 곳에 대한 기대도 기대지만 친구에게서 들었던 영평사 경험은 흥분스러운 기다림이 되었거든요.
글쎄...절 입구에서 부터 구절초가 지천에 깔렸고 하늘 외에 절터 빼면 다 구절초라니...
상상해 보세요.
게다가 구절초 차를 무료 시음을 할 수 있답니다.
또 점심으로 물국수를 말아주는데 공짜랍니다.
제가 흥분하게 생겼지요?
무슨 색깔 옷을 입고 가야 구절초랑 어울릴까...그거 궁리하면서 밤새 청소해 놓고...정리하고...부지런을 떨었거든요.
아침에 누가 깨우지도 않는데 혼자 벌떡 일어나 실실 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면서 외출 준비를 했답니다.
빨래도 일찍 부터 한 통 돌리고 대개는 개수대 가득 설겆이를 미뤄두는데 해치우고 샤워까지 마치고 구절초랑 어울리는 옷을 골라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 나의 옷차림은 자주 쫄바지에 찐보라 쉐터에 바람이 차길래 밤색 외투를 입고 찐 보라가 살짝 터치된 퀼트 가방을 들고 목에 화려한 스카푸 한 장 두르구요...바람 쐬러...그렇게 집을 나섰답니다.
친구들을 차에 가득 태우고(저는 스틱 운전입니다) 친구의 안내로 영평사를 가는 동안에도 가슴에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가을 들녘을 원없이 보았지요.
이정표가 적절한 곳에 잘 배치가 되어 있어서 초행인 저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길눈 어두운 친구의 친절한 길안내가 바탕에 있었지만...
영평사 입구에는 주차장 주변으로 시작해서 절을 싸고 도는 산 모두가 구절초 밭이라고 할 수 있더군요.
점심 시간보다 이르게 가서 꽃구경을 다리가 아프게 하고 차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쉬었다가 국수를 기다리는 줄이 만들어지길래 우리도 기다리는 수고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길고 긴 줄에 낑겨 들어갔지요.
뻘건 절 김치 한 접시에 고명은 거의 찾을 수 없는 국물만 있는 국수 한 그릇을 배급받아 절간의 장독대를 밥상 삼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답니다.
43해 살면서 절간 음식은 처음 먹어 본 셈인데...제가 설레일만 하죠?
그리고 부른 배를 꺼트릴 겸 구절초가 가득 핀 절 뒷산을 올랐습니다.
이미 사람들의 발자취로 산엔 구절초 사이 사이 길이 만들어져 뻘껀 황토가 드러나 있었는데 묘한 색의 대비에서 사람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이 연상되어 남들 지나간 길을 걷는다는게 괜히 또 미안하고 미안했었답니다.
너무 너무 많은 구절초와 뻘건 길의 강한 느낌이 그렇게 다가왔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또 사라져가는 서글픔이랄까...
꽃이 또 그렇게 피고지는 서글픔이라고 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