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9일 어제 딸래미 생일이었습니다.
이제 고 1 야자로 늦은 시간에 돌아와 함께 케익을 먹는게 축하의 전부였어요.
참 아침에 미역국 데워서 먹여보냈군요....
어젠 비가 왔어요.
마치 큰 아이 낳던 날 처럼...
그 때 우리 앨 받은 의사셈은 늦게야 연락을 받고 허둥허둥 오시다가 비 때문에 작은 사고 까지 내셨답니다.
큰 아이 임신 24주 때 그 셈은 유산을 권했어요.
제가 무릴 해서 양수가 샜었거든요.
이사하고 쭈그리고 앉아 걸레빨고 청소하고 그랬더니...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만 초음파로 딸이라며...정대 안정하고 치료를 해도 그 과정에 감염되면 산모가 위험하다면서 산모를 완벽하게 살리려면 "터미네이션"이 답이라나요...
그런데 딸이란 말이 나를 강하게 잡아 끄는 말이 되어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제 직장 병원에 연락을 하고 그날로 집에 틀어박혀서 답답한 생활을 좀 했지요.
이사하고 정신없는 집에,게다가 연말이었는데 전화 연결이 안되어있었고 아주버님 댁 곁방살이 하다가 분가한 셈이라 티비도 없구 사야 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거든요.
병원동료들이 근무 끝나고 찾아와 주어서 그나마 덜 답답했고 연말 연휴 특선 영화를 보라구 남편이 중고 티비를 사다줘서 낮 시간을 그나마 덜 지루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아이가 나오기 전까지 논문쓰느라 바쁜 남편은 제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명색만 가장이었었답니다.
그리 안정을 취하면서 감염 걱정 때문에 항생제를 썼고,사실 당시엔 터미네이션을 결정하기 위해 교과서에 실린 항생제의 부작용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내 목숨과 아기를 구하는 대신 무슨 댓가를 치루든...그런 맘이었거든요.
그러나 마음 한 구석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임신 내내 불안한 꿈을 꿨고 두려워 했었답니다.
그렇게 어렵게 낳은 딸래미가 이리 건강하게 자라주어서 가끔 눈물나게 고마운 것만으로 자식에게 받아야 할 효도의 전부 아닌가 싶어요.
욕심을 좀 부리자면...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봤으면 싶습니다.
그것 지켜보면서 그 아이의 맨토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제가 16년 그런 기쁨을 맛보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