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근무지인 국군대전병원에선 내가 근무를 시작하기 전 부터 함께 갈 동료들 3명의 신상명세와 사진이 화제거리였었다고 한다,사실 그건 매년 새사람을 받는 통과의례였었던 것을 1년 지나 나도 후배를 받고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다소 차가운 듯 까다로운 듯 매서운 듯 보이는 서울 깍쟁이 모습이 주변 사람들을 먼저 긴장시키는 것으로 작용해서 만나서 살가운 인사를 한 번 해주면 나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는 말을 듣곤 할 만큼 사실 물렁탱이였던 시절,남편의 첫 인상은 부끄럼 많은 이웃집 총각같은 수더분한 인상이었고 그 모습은 내게 강열한 인상을 주었다.
사실 나랑 반대의 모습에 나도 당황스러웠다...
계급이 깡패라는 군대에서 소위인 내게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 남자는 유일하게 그 남자 한사람이었다.
가끔 퇴근 버스에서,약국에 처방전을 들고가서,정말 우연히 스치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군인아저씨는 6년을 근무하도록 오로지 한사람 뿐이었다.
그를 병원에선 약중위라 불렀고 어리버리 소위간호장교였던 난 약씨인 줄 알았으니...
신참 소위와 약중위의 운명같은 만남은 병원 생활이 한 달 쯤 됬을 때 치과 군의관의 제대회식에 초대되어 저녘을 먹고 대부분 가정을 가진 유부남들은 공식적으로 집에 들어간다 헤어지고 할 일 없는 처녀 총각들만 따로모여 2차를 하면서 아무도 눈치 못채게 엮여져 갔다.
2차로 간 곳은 청주의 무슨 스태드바...생전 처음 가본 곳이었고 거기서 페퍼민트라는 색깔고운 칵테일도 생전 처음 마셔봤다.
그 때 까지는 술 맛을 모르고 계급이 무서워서 받아 마신 정도의 주량이라 약간의 알콜만 들어가도 긴장 초긴장을 하던 때여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못하고 칼날같은 조심성이 드러날 때였는데 같이 갔던 일행중에 밤번 근무인 선배가 있어서 우린 병원으로 돌아오는 차를 타야만 했다.
당시엔 시외곽에 병원이 있어 일찍 시내버스가 끊겨서 택시를 타야만 했고 박봉의 처녀 총각장교들은 어울려 택시를 타고오곤 했었던 것 같다.
급하게 움직인 사람들은 먼저 가버리고 어리버리 나랑 늘 어슬렁거리는 남편이랑 둘만 남아 함께 택시를 타고 오게 된 일이 우릴 인연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 되었다.
그날 택시 안에서 남편은 갑자기 내 어깨 위에 어깨동무를 해버렸다.
항상 얼굴 뻘개지는 순진한 아저씨로만 봐서 어찌할 바를 모른채 운전사 아저씨가 처녀인 나를 수상히 볼까봐 두려워 그게 무서워 꼼짝을 못하고 잔뜩 긴장한채 응큼한 아저씨를 혼내 줄 궁리만으로 병원 앞 숙소에 도착해 뒤도 안돌아 보고 튀어 들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며칠을 의식해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