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
너를 처음 만났던지도 어느새 2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979~80년대 전국이 민주화의 열기로 가득차고.
최루가스 난무하던 시기
우리는 어느 수녀원 기숙사에서 원장 수녀님의 특별한(? )교리를 받고 첫 세례를 받았었지.
그때 세례 동기가 7명? 첫 세례자들이었기에
그곳 전 가족들이 모여 저녁에 축하식도 해주고
잔치를 벌여주던 때가 엊그제 같구나.
너무도 어수선한 시국 말 한마디 잘못해도 붙들려 는 시기였는데.
어느날 ~원장 수녀님이 몰래 기도실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광주사태의 실상을 직접 설명해주었을 때
우리는 너무 충격을 받았었고 두려웠었지..
언론은 철저하게 통제 되었기에 그 당시 사회 실상을 일반 서민들이 알기는 쉽지 않았었거든.
그렇게 힘든 시기에 세례를 받고
너는 참으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더랬지..
언제 누가 보아도 바로 느낄 수 있는 넌 정말 바른생활 여인이었어.
새벽같이 일어나 단정한 옷차림으로 기도실에 머무는 너를 여러번 목격했단다.
우린 그때 한참 20대였고 옷갖 멋을 부리고 다닐 나이였는데
넌 늘 화장기 없는 얼굴에 단발 생머리였고
옷 또한 수녀님들 같은 회색빛 옷이나 단정한 검정 주름치마였어.
날이 조금만 쌀쌀해지면 입술이 약간 새파래지는 너를 보고
난 왜 늘 너가 춥게 느껴졌을까?
내가 생각하는 너의 뒷 모습은 늘 추워보였어.
그래서 너를 생각하면 늘 "겨울여자" 같단 생각을 하곤 했지
.내 마음속엔 너는 항상 겨울여자로 남아 있단다.
차갑고 날카로워 겨울여자가 아니고 늘 추워보여서
어쩐지 애처롭고 보호해 주고 싶은 그런 여인.
몇년 후 너의 고향인 홍천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는다는 연락을 받고
내가 몇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홍천에 달려갔었지..
그곳에 너의 작은 아버님댁에서 먹었던 가자미 식혜의 맛이 어찌나 일품이던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헤어지고 여러번의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너도 거처를 자주 옮기고
내가 결혼을 하고 여기 저기 이사를 다니다
서로 연락이 끊어진지가 20년이 되어 간다.
지금 같이 핸드폰이 있던 시절이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서로 마음에 친구로 그리워 하며 살진 않았을텐데......
친구야!
요즘 같이 날이 쌀쌀해지면 늘 추워보이는 여인,
늘 보호해 주고 싶은 여인 너가 가끔 생각나.
지금쯤 나처럼 결혼을 해서 아이들 키우며 알콩 달콩 살까?
아니면....
너의 소망대로 어느 수녀원에 입소해서 거룩한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을까?
난 가끔 지인들에게 말하곤 하지
겨울여자 같은 이런 내친구가 있는데 꼭 찾고 싶다고...
교적을 알아보면 어쩌면 너의 거처를 알 수 도 있는 방법이 있다는걸 얼마 전에 알았어
머지 않은 시기에 꼭 너를 찾을께
넌 성도 희귀 성이라 어쩌면 쉽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용 환숙 데레사..
보고 싶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