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친일 극작가 유치진의 아들 ?
여성동아 99년 4월호
http://www2.donga.com/docs/magazine/woman_donga/9904/wd990400050.html
아버지로서는 어떨지 궁금해 아이들 교육에 대해 질문했다. 중3, 초등학교 5학년인 두 아들들은 아직 아버지처럼 살겠다는 뜻은 없고, 유인촌·강혜경 부부도 뭐가 되라고 강요해본 적 없다.
그냥 풀어놓고 마음껏 지내다 언제든 뭔가 결정되면 전폭적으로 지지할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집안의 가업이나 다름없는 문화예술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할아버지인 희곡작가 유치진과 작은할아버지 청마 유치환 시인, 숙부인 유길촌 PD, 아버지 유인촌과 어머니 강혜경 성악과 교수 등등, 이 화려한 핏줄과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저 애들이 어디로 벗어나겠습니까? 남들과는 피가 다른데…. 아무리 풀어놔도 이 근처에서 놀겠지. 갓난아기 때부터 음악과 연극을 접하고 자란 아이들이 뭘 하겠어요? 큰 아이는 확실히 영화를 좋아해요. 나중에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연기만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넌 아무리 해도 나보다 더 잘할 수 없을 테니까’라고 설명했죠. 하하
교보생명 기사
http://www.kyobo.co.kr/sabo/sabo1901.html
1984년에 결혼해서 슬하에 2남의 자녀를 두고 있는 그는 성실한 남편이며 자상한 아빠로도 이미 소문이 나있다.
그는 자유로운 직업인이지만 가족과 자신의 노후를 위해 지난 88년부터 연금보험, 종합건강보험, 교통안전보험 등에 가입하고 있는 교보생명의 오랜 고객이다.
그의 아내가 성악가 강혜경 씨라는 것 또한 많이 알려진 사실인데, 전문 직업을 가진 아내에게 헌신적인 외조를 하기로도 유명하다. 몇 해 전에는 아내의 발전을 위해 먼저 나서서 유학까지 보냈다고 해서 다른 많은 아내들의 질투와 많은 남편들의 질타(?)를 사기도 했었다.
또, 그는 아버지로서도 굉장히 자유로운 마음이라 아직 두 아들에게 뭐가 되라고 강요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이들 또한 아버지처럼 살겠다는 뜻을 전한 적도 없고 해서 아직은 서로가 탐색만을 하면서 마냥 자유롭게 지낼 뿐이라고.
하지만 그는 언제고 뭔가가 결정되면 아이들 일에 있어서 만큼은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집안의 가업이나 다름없는 문화 예술계를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하는 듯도 했는데, 할아버지인 희곡 작가 유치진, 작은 할아버지 청마 유치환 시인, 숙부인 유길촌 PD, 배우인 아버지 유인촌과 성악가인 어머니 강혜경의 자손으로 태어난 아이들이니까 말이다.
이렇게나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어느 곳에 서 있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느낌으로 그 자리를 채워 주는 사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넘치는 애정과 확고한 믿음을 지닌 사람, 50대의 나이에 20대의 젊은 열기를 뿜어내는 사람. 이런 모습이 바로 지금 2002년을 사는 인간 유인촌 씨에게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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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아닌가부다. 전원일기 용식이와 역사스페셜의 잰틀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배반의 장미이다.
일본국채 32억원은 또 뭐야 ?
지난해 독립운동가 후손인 김원웅 의원이 발의한 법률이 있다. 법률이름이 좀 길다. [일제강점하 민간재산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이다.
일제시대 일본국 채권이나 주식/보험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일본 국채나 보험증권을 강매하여 행세께나 하던 사람들은 모두 보유하게 되었다.
이런 일본국 국채나 보험증권 주식을 사지 않으면 생필품 구매를 할 수 없도록 해서 강제구매를 강요당해 당시 조선 전 인구의 50% 이상이 보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1965년 박정희가 일본과 수교를 맺으면서 한일경제협정으로 민간인의 청구권은 소멸되고 만다. 참 나뿐 박정희 개새키다.
1975년 형식적으로 민간인 대일청구권 신고와 보상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으나, 독재정권 시절이라 제대로 보상을 받은 사람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국채, 일본회사 주식, 보험증권 등을 보유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정정도 보상을 해주겠다고 법률로 발의한 것이 김원웅 의원의 [일제강점하 민간재산청구원 보상에 관한 법률]이다.
그런데 이법이 개인 1인당 보상한도를 정했다. 10억원이 넘어도 보상한도는 10억원으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런데 유인촌 마누라가 일본국채를 보유하고 있다가 판 금액이 32억 6천만원이라고 하니 요상하다.
그리고 이 법은 아직 발의만 되었지 법률안이 공포된 것이 아니라서 보상을 받을 길이 없다. 민간인들끼리 법률안 공포를 기정사실화하고 매매를 할 수는 있어도 말이다.
일본 국채 32억원어치를 보유가 유인촌의 과거사이다.
지난해 김원웅의원의 법률안 발의가 알려지고 나서 일본국 국채 일본회사 주식 그리고 보험증권 매매에 관한 문의를 받을 적이 있어서 이 내용을 조금은 알고 있다.
실제 민간에서는 이것이 유통이 되고 있다. 법률안 발의만으로 실제 거래가 되고 있다는 것인데 유인촌 마누가 이것을 사고팔고 하는 과정에서 돈을 좀 번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치진의 아들, 청마 유치환은 작은 아버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만큼 유인촌에 대해서 우리가 몰랐다는 것이다.
어떻게 유인촌이 140억원을 모았을까 ? 하는 의문이 풀려지는 실타래가 바로 유치진의 아들, 일본국채 32억원으로 풀려지는 것 같다.
배용준과 비교해보라는 말로 설명이 안되던 것이 이제사 대충 얼개가 엮어진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참 훌륭한 친일파들이다.
유인촌 완전히 배반의 장미이다.
http://blog.daum.net/jby6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