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숲
과학에세이 2007/01/31 16:51   http://blog.azoomma.com/richard/241405

하루 종일 일하다보면 심신이 지쳐서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어 쓰러집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기력이 회복되어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제가 숲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중의 하나가 <나를 살리는 숲으로 가자>입니다. 그 내용이 너무 좋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쌉싸름한 향기, 거칠고 투박하지만 기분 좋게 느껴지는 나무껍질의 촉감, 쫄랑쫄랑 흐르는 시냇물소리.. 이런 것들을 볼 때 우리는 편안한 느낌을 갖습니다. 왜 그런 심정이 될까요?

그것은 유전적으로 갖추어진 것이며, 우리의 직관이 부여하는 능력으로써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생리인류학자 사토 마사히코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도시가 출현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태고적 야생의 숲이나 초원에서 살아온 뇌를 가지고 우리들은 지금 도시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인간의 뇌, 신경계, 근육, 폐, 소화기, 간장, 감각계 등의 모든 생리기능은 자연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진화해 왔고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에드위드 윌슨은 <바이오필리아>라는 그의 책에, 인간은 생명과 생명다양성이 풍부한 자연환경을 ‘운명적’으로 사랑하게끔 태어났다고 썼습니다. 우리들의 유전자 속에는 수백만 년 전부터 비롯된 인류의 기원과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래 우리 조상의 생활방식에 가까이 다가 갈수록 우리는 쾌적하고 행복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러닝머신 위에서 콘크리트 벽을 바라보며 30분을 달리는 것과, 같은 시간 숲길을 달리는 것은 그 운동량은 똑같을지 몰라도 우리 신체의 각 기관이 받아들이는 정서적인 즐거움과 호르몬의 반응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윌슨의 바이오필리아 가설’이라고 하는데, 자연생태계나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매우 비중있게 받아들이는 이론입니다.

지금껏 모든 인류는 99.99% 이상의 시간을 자연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우리들은 콘크리트에 파묻혀 살고 있습니다.

나무를 기어오르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습니다. 사냥을 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대신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의 대형 할인점을 향해 자동차를 몰고 있습니다.
우리 뇌는 자연환경에 적응되도록 창조주에 의해 설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화된 인공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니 언제나 긴장을 강요당하고 교감신경 활동이 고조되게 마련입니다. 1984년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그레이브 브로우드는 이런 상태를 ‘테그노 스트레스’라고 명명했습니다.

충북대학교 수의학과 정의배 교수는 우리가 숲속에서 느끼는 ‘기분의 전환’이라는 것을 나무가 품어내는 휘발성 방향물질 테르펜의 결과라고 이야기 합니다.

한 실험을 통해 이를 알아보았습니다.
실험용 쥐들을 특수한 상자에 담습니다. 가엾게도 쥐들의 발밑에는 전기가 잘 통하는 구리선이 깔려 있습니다. 전기 충격을 주고서 스트레스 반응을 검사하는 실험입니다. 전기충격을 받은 쥐는 엄청난 고통 때문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농도가 급상승합니다.

반면, 똑같은 고통을 겪었어도 거즈에 편백정유를 살짝 뿌려서 통 속에 넣어주면 그 쥐들의 혈액 속에서 코티졸 농도가 현저하게 감소하는 것을 쉽사리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위의 경우에 비해 절반 정도의 코티졸 농도였습니다.

쓰쿠바 소재의 일본 삼림총합연구소 주관으로 스트레스에 관한 실험 결과를 하나 더 소개합니다.

숲속에서 명상에 잠길 때와 도시의 호텔에서 하루 일과를 생각하는 사람의 코티졸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두 배 가량의 코티졸 농도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지방이 핏속으로 대량 유출이 되어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고, 그러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농도가 높게 나타납니다.

이와 반대로 숲속에서는 혈당, 콜레스테롤, 코티졸 등등 사람에게 나쁜 요소들의 수치가 유의할 만하게 떨어집니다. 바로 이것이 숲이 주는 신비입니다.

나무와 숲의 신기한 힘을 가장 일찍 국민 건강에 활용하기 시작한 나라가 독일입니다. 온천과 숲을 한데 묶어서 개발한 자연치유를 국가가 권장하는 차원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뵈리스호펜은 1800년대 중반 세바스티안 크나이프라는 신부님이 독일 최고의 건강 휴양지로 바꿔 놓았습니다. 기운이 솟구치는 상쾌한 물 치료, 자연에서 뽑아낸 의약품, 균형잡힌 영양식, 내면의 평온한 질서와 육체를 원기왕성하게 움직이는 일 등이 크나이프 신부의 건강 철칙이었고, 그것들은 주로 숲 속에서 실시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건강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노르딕 워킹’인데, 스키 탈 때 사용하는 폴대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숲길을 걷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독일인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모여든 다국적 휴양객들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르딕 워킹이라고 하는 신종 산림욕이 당당히 의료행위의 일종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워킹에 참가한 사람이 원한다면 의료보험회사의 서류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지도 강사가 노르딕 워킹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확인을 해주면 보험회사에서 의료보험료를 깎아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어지십니까? 쉽게 말하자면 무사고 운전자일수록 매년 자동차 보험료가 내려가는 것과 마찬가지 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림욕을 포함한 자연요법이 독일정부로부터 과연 어떤 혜택을 받고 있을까요? 대학병원이든 시골의 동네병원이든 의사가 진단서에 ‘이 사람은 숲속에서 자연요법으로 치료받는 것이 좋겠다’라고 써주기만 하면, 치료받아야 할 당사자는 물론이고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 그 동반자까지 모든 게 무료입니다.

환자의 고민은 호텔의 유형과 어떤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은지 선택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무실과 일정을 협의만하면 모든 것을 의료보험에서 계산해 주기 때문입니다.

뵈리스호펜의 기공수련에도 의료보험 혜택이 적용된다는 게 너무 신기한 일입니다. 요가나 태극권 같은 동양 전래의 건강법이, 본고장에서는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최소한의 대접을 받고 있는데 그치는 반면, 이 코 큰 양반들은 현대의학과 똑같은 융슝한 대우를 해주고 있습니다. 국민의료보험료까지 지급해주면서 말입니다.

뵈리스호펜의 또 다른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세바스티아노임 요양병원. 이곳은 병원이라기보다 호텔에 가깝습니다. 이 요양병원의 원장 에버하르트 폴거 박사는 심장병 전문의이면서 동시에 유럽 대체의학협의회의 회장이기도 합니다.

그는 현대의학이 첨단기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의사의 역할은 환자 스스로 질병과 싸워서 이겨 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요법은 건강을 증진시키고 병을 예방함으로써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이론을 현대의학에 적용시키고 있는데, 의사가 하는 일 절반은 숲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자연요법을 현대의학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서로 돕는 형제처럼 친밀한 관계로 지내야 합니다. 숲이, 자연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으로 본 세바스티아노임 요양병원의 환자들은 모두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병원의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의 실내공기는 아마도 서울에서 가장 나쁜 곳과 비교하여 순서를 매긴다 해도 열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고, 의사들의 표정은 어지간히 살벌해서 말도 제대로 못 붙일 형편이고, 그러다보니 환자들의 얼굴은 ‘죽을 상’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숲’은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조물주가 심어준 나무입니다. 이 나무의 뿌리는 어머니 땅 속으로 깊이 뻗어내려 가고, 가지들은 기도하는 손처럼 아버지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 나무의 열매들은 사랑, 자비, 관용, 인내, 지혜, 용기, 존중, 겸손으로 가는 길을 일러주는 가르침들이며, 인간은 그 나무 아래에서 힘과 지혜를 얻고 치료받고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신도시의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아이들을 좋은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또 최신 영화와 뮤지컬을 구경하기 위해 이 ‘숲’을 등지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육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겸손과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영혼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신성한 나무’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그늘 아래에서 태초 자연의 에너지가 몸속을 뚫고 지나가는 찬란하고 신비한 체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