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이유로 글쓰기를 자제하고 있던 내게 토요일 박지성의 활약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이나모토를 앞세워 올드 트래포드에서 화끈한 승리를 거두던 풀햄은 몇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엊그제 박지성을 내세운 맨유에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박지성의 발끝을 떠난 볼이 동료들에 의해 풀햄의 골망을 출렁일때마다 풀햄 서포터가 놀라고 맨유 원정 서포터가 놀랐으며 TV를 보고 있던 영국인 모두가 놀랐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던 우리 한국사람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중계 마이크를 잡은 캐스터의 요란한 수사도 전혀 객쩍지 않았던 그 멋진 전반 45분의 퍼포먼스.
 박지성은 엄연히 맨유의 공격수다. 측면 미드필더가 아니라 측면 공격수이며 때에 따라서는 반 니스텔로이를 보좌하는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움직이기까지 한다.
박지성은 신개념 윙플레이어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따라 터치라인 플레이를 즐기는 선수가 아니다. 측면을 냅다 파고들어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려주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라 측면에 위치하되 PA 안쪽을 지향하는 움직임을 소유한 21세기형 윙플레이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팀동료인 긱스와 크게 구분되며 이것이 바로 퍼거슨이 박지성을 영입한, 박지성에게서 더 큰 성공을 기대하는 이유다. 팀동료 로날도, 긱스가 보다 공격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이 공격시에 그들보다 항상 앞쪽에 위치하는 것도 그래서다.
즉, 박지성은 신개념 윙플레이어 공격수다. 공을 다루는 스타일 면에서는 (영국 언론의 평가대로) 존 반스를 연상케하지만 그 위치나 팀내 역할을 따지자면 '무패우승'할 당시 아스날의 로베르 피레와 닮아있다. 윙이면서 윙이 아니라는 촌평이 피레와 박지성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유다.
세 골을 모두 돕는 것으로 팀 승리를 이끌긴 했지만 이 한 경기를 통해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여전히 박지성은 팀내 베스트11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 긱스, 로날도 등과 경합해야 한다.
그렇다면, 긱스의 경험과 스페셜한 왼발, 호나우두의 현란한 드리블과 크로스 앞에서 박지성이 내세워야할 것은 무엇일까. 종횡무진 경기장을 누비는 박지성의 플레이는 그 자체로 이미 경외로운 것이지만 중요한 건 그의 팀내 포션이 '미드필더'가 아닌 '공격수'라는 점이다.
그러니 누가 뭐라하든 '공격포인트'를 꾸준히 쌓는 것이 절대과제가 될 것이다. 저 현란한 로날도가 맨유에서 아직 100%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보이는 것'에 비해 '소득'이 적어서 아닌가. 공격수는 결국 포인트로 승부하는거다. 골이건 도움이건, 이것들이 따라와주지 않으면 승부가 힘들다.
골에서 도움으로 선회한 것은 그런 점에서 현명한 선택이다. 욕심을 내고 골에 집착하는 방식도 의미있을수 있지만 어차피 박지성이 한 시즌에 10골 이상 넣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닌 바에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것도 좋다. 특히 풀햄전에서 보여준 '욕심없는', 그러니까 '도움이 나의 최선이다'라는 뉘앙스의 연속된 패스는 도리어 박지성을 돋보이게 만들어준 기제였다.
맨유란 팀은, 굳이 박지성까지 득점 대열에 가세하지 않아도 되는 팀. 반 니스텔로이와 웨인 루니라는, 영국 최고, 혹은 유럽 A급 수준의 콤비를 앞에 내세운 팀에서라면 박지성은 골에 대한 부담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
1년에 5골 안팎 정도만 목표로 삼아도 충분하다. (그 현란한 로날도, 지난 2년간 맨유에서 넣은 리그 골이 10골도 되지 않는다. 긱스? 지난 10년간 리그에서 한 시즌 가장 많은 골을 넣었던 게 8골이다.) 요는, 조금 잘하기 시작했다고 '이제는 골'을 요구하는건 '맨유의 박지성'에겐 불필요한 지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하튼, 대단한 활약이었다. 방송 3사의 메인 뉴스가 비중있게 다룰만큼 국내 (축구팬만이 아닌) 일반인들의 관심도 드높아졌다. 영국 내에서의 평가도 찬사 일색이다. 주간 MVP, 아무나 받는 것 아니다. 주말 경기에 출전하는 250명 선수 중에서 가장 잘했다는 얘기다. 그것도 유럽 1류 리그로 평가받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말이다.
"앞으로는 더 잘해야" 내지는 "이제는 골이다" 따위의 기대 말고 박지성이 부여받은 임무, 그리고 그가 이를 어떻게 철저히 수행해내고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춘 채로 그저 이 유쾌한 기분을 즐기는건 어떨까. 박지성,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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