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배상"과 "보상"을 아무런 생각없이 혼용하곤 한다. 그러나 그 배상과 보상의 의미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 크다.
보상은 말 그대로 "적법한 법 집행"에 따른 피해를 보전해주는 경우이다.
그러나 배상은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징벌적인 피해보전의 의미가 있다. 도로용지에 편입된 개인의 땅에 대해서 "보상"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사기죄의 경우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하지 "보상"하라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냥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표현 중의 하나가 바로 "종군위안부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그 심정과 의도는 알겠으나 사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피해보전은 "보상"이 아니라 "배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만 한다.
종군위안부(사실 이 표현도 무척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이다.)로 끌려가셨던 할머니들의 경우 "합법적인 법집행"의 연장선 위에서 이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늘 노무현대통령이 일본에 대하여 "배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마 이 단어를 사용하기까지 매우 많은 고민과 숙고를 거쳤을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이 누구인가 ? 바로 변호사 출신 아니던가 ? 용어 하나 하나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움직이는 직업 아니던가 ?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지금의 현실을 인정한다.."라는 차원의(de facto) 입장에서 을사늑약(을사조약이 아니다. 불법, 강제에 의해 체결된 것이 어떻게 조약이 되나? 강제로 체결된 조약이니 늑약이나 늑체라 불러야 한다.)이나 한일협정을 꿀먹은 벙어리처럼 그냥 그렇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처지였다.
그 늑약 조약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인" 형태를 지녔으니 일본에 대해서 대놓고 "배상"하라고 대들지 못했던 것이다. 한일협정도 마찬가지이다. 떨떠름하지만 국가간 협약은 협약이니 일단 인정하겠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입장이었다.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그토록 집착했던 표현도 "독립축하금"이나 "경제발전지원금" 또는 "....원조"라는 것이다.
'배상'이라는 표현은 아예 꿈도 못꾸고, '보상'이라는 표현도 '실제 조선이 일본지배로 인해서 피해본 것은 전혀 없다..'라는 시각아래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토록 '보상'과 '배상'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가 매우 막중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대통령이 "배상"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어서 입에 올린 순간, 지금까지의 한국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한일협정의 원출발선인 을사늑약 자체의 효과를 부인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완전 무효이며 불법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은 범법자 취급하겠다는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그렇게까지는 안하겠지만 말이다.) "을사조약이나 한일협정의 효력은 인정하겠으니 그러니 알아서 조금만 더 떼어주라.."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 중요한 점은...그러한 주장을 일본 정치인이나 지도층에게 호소(?)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일본의 내노라 행세께나 한답시고 설쳐대는 "일본의 지성"을 향해서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 정치인들을 만나보니 그 근성이 완전히 글러먹었다는(?) 판단이기도 할 것이다. 마지막 보루, 일본의 양심세력에게 던지는 일종의 "화두"인 것이다. "너희가 이 것도 풀지 못하면서 무슨 세계지도자국가 행세 하려고 해 ?!!!"라는 선언과 마찬가지이다. 노무현대통령이 이 두 표현을 놓고 많은 고심을 한 흔적이 보인다. 그만큼 개인적인 역사관과 국제관이 반영된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력이 신장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며, 또 이제는 예전과 다른 당당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당한 사람만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이 당당한 만큼 우리도 당당한 것이다. 친일 찌꺼기들이나 수구잔존세력이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얘기인 것이다. 한 번 더 정리하자...일본에 요구할 것은 "보상"이 아니라 "배상"이다.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배상"인 것이다. 그 "배상"이라는 단어를..우리나라 대통령의 입에서,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아주 당당히 들을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 또 사족 한 마디....) 만일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배상"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배상"이라고 내뱉는 순간, 자기 아버지는 그 흉악무도한 범죄집단의 하수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인데... 박근혜 대표도 과연 "배상"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자기 아버지가 혈서를 쓰면서까지 충성을 바쳤던 일본제국인데 말이다... "배상..."이라는 표현은, 아주 당당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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