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나제통문, 일제가 만든 굴이었다.
사회/문화/국제 2004/12/06 13:41   http://blog.azoomma.com/richard/170978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으로 알려져 있는 전북 무주군의 나제통문.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위치한 무주구천동 33경 중 제 1경인 '나제통문(羅濟通門)'은 높이 5~6m 너비 4~5m 길이 30~40m인 굴로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경계선 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굴이 삼국시대부터 있던 굴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뚫은 굴 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추적해 역사 교과서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하게 만든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 상임연구위원인 역사학자 오재성씨는 “이 굴의 원래 이름은 기니미굴” 이라며 “1910년경 일본 사람들이 인근 금광에서 채굴된 금을 용이하게 옮기고 그 지역의 농산물과 임산물을 신속히 옮겨가기 위하여 뚫은 굴로 당시 김천과 거창을 잇는 신작로였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당시 이 ‘기미니굴’을 중심으로 위쪽마을은 ‘기니미 마을’로 아래쪽은 ‘이미리 마을’ 이라 불렀다.

이 굴의 명칭이 바뀐 것은 1963년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부터. 이때부터 '기니미굴'이 '나제통문'으로 둔갑해 교과서에 등장했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코스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지역 노인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굴을 뚫을 당시의 현장을 목격한 노인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다. 그러나 무주군의 행정기록을 적어놓은 ‘무주군청지 적성지(赤城誌)’에 당시 공사를 한 작업일지가 적혀있다고 한다.

우리민족사연구회에 따르면 지리적으로 살펴봐도 무주에서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남 거창으로 향하거나 반대로 그 쪽에서 무주로 들어설 때 반드시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 즉 이 굴은 현대에 와서 드나들기 편하게 만든 굴일 뿐이지 결코 삼국시대에 존재하던 굴이 아니란 것이다.

오재성 선생은 "이제는 교과서에서도 사라진 것을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놀랍다” 며 “불과 몇 십년 전 일도 이렇게 왜곡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 역사적 진실을 사실 그대로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추가 내용*********************
나제통문은 삼국시대 당시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 굴은 일제 때 뚫린 것이다.  
33경중 제1경이면서 덕유산 찾은 이들은 한번은 들르게 되는 나제통문(羅濟通門)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던 곳. 비록 삼국시대가 아닌 일제 때 뚫렸고, 높이 3m, 길이 10m의 작다면 작은 바위굴이지만, 무주의 비밀을 푸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무주구천동 물줄기와 나란히 달리는 석견산(石絹山)은 신라와 백제의 경계였고, 그 바위 능선으로는 설천과 무풍을 잇는 나제통도(羅濟通道)라는 고갯길이 있었다. 이 능선을 경계로 동쪽의 무풍은 신라 무산 땅이었고, 서쪽의 설천ㆍ적상면과 무주읍 등은 백제 적천 땅이었다. 이곳을 경계로 쌍방에 피 터지는 분쟁이 있었지만 삼국통일 이후 통합되었다.

그러다 일제 때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석견산에 굴이 뚫으면서 현재의 굴이 생겼다. 처음 이름은 설천면에 있는 굴이라 하여 설천굴(雪川窟). 그러다 이곳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는 유래에 착안해 나제동문(羅濟洞門)이나 나제통문 등으로 부르다가 나제통문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비록 이렇게 행정구역을 합쳤어도 아직도 나제통문 양쪽의 언어와 관습이 다르다 하니 참으로 질긴 게 인습인가보다.

글 사진/주간한국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