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내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가평에 있는 '꽃무지풀무지'라는 야생화 수목원을 찾아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조관우의 노래 '꽃밭에서'가 흘러나온다. 나들이 장소와 노래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콧소리로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태풍이 지나 가리라던 하늘은 다행히 구름만 끼었을 뿐 비가 내릴 기세는 아니다.
그 어느 곳보다도 식물원이나 수목원 나들이를 즐기는 편인지라 올 초 '꽃무지풀무지'라는 예쁜 이름의 수목원이 가평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무척이나 가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도 바빴던지 야생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계절 봄이 지나고 여름도 거의 다 저물어갈 즈음에야 발길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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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과 개미. |
| 일산에서 마석을 거쳐 춘천 가는 46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토요일 오전이건만 길이 제법 막힌다. 나들이 길의 도로정체는 종종 즐거움을 빼앗는 요소다. 청평을 지나 목적지인 꽃무지풀무지에 도착하기까지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오랜 정체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지는 예쁜 꽃들을 보니 마음이 눈 녹듯이 풀어진다.
토요일 오후. 아직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의 명성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 한갓진 오후의 풍경이 마음에 든다.
이제 문을 연 지 1년 반 정도 지났건만 아직도 수목원은 제대로 외형을 갖추지 못했다. 포장도로에서 안내판을 보고 수목원 입구로 들어서는 가파른 언덕길은 아직도 포장이 되지 않아 운전대를 꽉 잡지 않으면 차가 길 밖으로 튕겨져 나갈 듯 아슬아슬하다.
주차장도 대충 모양만 갖춘 꼴이다. 주차선도 없고 잘 다져진 평지도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자연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잘 포장된 도로와 반듯하게 지은 주차장이라면 우선 거부감부터 느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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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초한 이미지의 부추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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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차에서 내리니 제일 먼저 풀벌레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도시에서는 풀벌레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고 요즘은 어딜 가나 매미 소리 때문에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없건만 이곳에서는 특이하게도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정겨운 풀벌레 소리가 온 몸을 감싸듯 들려온다.
매표소로 향하는 길에는 방아깨비며 풀무치, 송장메뚜기 등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메뚜기들이 지천으로 발밑을 뛰어다니고 머리 위에서는 잠자리와 나비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세상에, 아직까지 이런 곳이 있다니….'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달아나는 메뚜기를 따라 이리저리 뛰어 다녀본다. 메뚜기가 지천으로 뛰어 놀던 어린 시절 앞동산이 떠올라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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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무지풀무지에 지천으로 널린 메뚜기. 이렇게 큰 메뚜기를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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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하고 아담한 빨간색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꽃무지풀무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통 꽃동산이다. 발길 닿는 곳, 눈길 닿는 곳, 손길 닿는 곳 그 어디도 꽃 천지다. 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즐거워진다.
꽃무지풀무지는 수목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긴 하나 다른 수목원과는 사뭇 다르다. 규모가 그리 큰 것도 아니고 울창한 숲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일반인에게 익숙한 이름을 가진 식물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꽃들은 모두가 이름 없이 자라나는 들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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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과 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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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며느리밥풀, 뻐꾹나리, 노인장대, 꼬리풀, 노루오줌, 마타리, 며느리밑씻개, 범부채 등 요상하면서도 알듯말듯한 우리말을 가진 야생화를 전문으로 하는 수목원이기 때문이다.
비록 화려하고 이름난 꽃들은 볼 수 없으나 잔설이 쌓인 늦은 겨울부터 찬바람이 깊어 가는 초겨울까지 9개월 가까이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야생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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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솔체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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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무지풀무지는 모두 14개의 테마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연과 부레옥잠 등 물 위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모아 놓은 수생식물원, 큰꿩의비름, 기린초, 바위채송화 등 암반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모아 놓은 암석원, 산과 들, 냇가나 연못, 습지에 자생하는 칼잎용담이나 부처꽃, 매발톱 등을 모아 놓은 습지원, 층꽃 등 뛰어난 향기를 지닌 식물을 모아 놓은 향원 등이 있고 붓꽃 나리원, 덩굴식물원, 버섯원, 양치식물원, 약초원, 국화원, 모란원 등 저마다 특색을 갖춘 들꽃들이 주제별로 공간을 이루고 있다.
수목원 가장 안쪽으로는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자그마한 산림욕장도 갖추고 있다. 입구에서 출발하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모든 테마 공간을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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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부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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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곳을 찾기 전까지만 해도 야생화를 볼 수 있으리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난 주에 들렀던 광릉 국립수목원의 야생화 꽃밭에서 아무 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꽃들이 졌나보다, 이미 내년 봄을 준비하기 시작했나보다'하는 생각에 큰 욕심은 버리고 있었건만 막상 수목원 안에 들어서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주위가 온통 야생화 천지다.
그동안 많은 식물원과 수목원을 다녀 보았지만 이처럼 알차게 야생화를 즐길 수 있었던 곳은 없었던 듯하다. 지천으로 어지럽게 널린 야생화 무리를 보니 절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 벅찬 감동을 어찌 다 글로 옮길 수 있으리요. 식물원이나 수목원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능력의 한계를 많이 느낀다. 꽃이라는 것이, 자연이라는 것이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일진대 그것을 글로 옮기려니 짧은 글 솜씨에 어찌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가슴 벅찬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설픈 몇 줄의 글로 표현하려는 것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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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소화. 독이 있어 잘못 만지면 실명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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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무지풀무지 수목원은 야생화와는 전혀 관계도 없던 김광수 원장이 우연히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7년여 준비기간을 거쳐 완성한 개인 식물원이라고 한다. 1만 5000평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에 야생화 600여 종이 자리 잡고 있고 추가로 400여 종을 더 준비 중이다.
수목원 곳곳을 둘러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을 가꾸기 위해 몇 년 동안 야생화 씨를 모으고 한포기 한포기 싹을 틔워 옮겨 심었을 김광수 원장의 노력과 열정을 생각해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꽃 하나, 이름 없는 저 풀 하나가 모두 그 분의 피땀 어린 노력이 스며들어 있는 값진 결실일 터. 그 결실을 맺기까지 걸어온 길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인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발밑을 뛰어다니는 메뚜기와 나비들을 피해 수목원 곳곳을 누비며 반가운 들꽃들을 만난다. 미처 몰랐던 부추꽃의 아름다움, 보라빛 꽃잎이 아름다운 솔체꽃, 눈처럼 순결해 보이는 옥잠화, 붉은 물봉선 틈바구니에서 홀로 꿋꿋하게 서 있는 노란 물봉선, 유채꽃을 연상시키는 노란 마타리, 그리고 일일이 이름을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야생화들.
그 속에 있으니 마음이 절로 행복해지는 듯하다.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 행복한데 왜 이제야 이곳을 찾았는지, 진작 찾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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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곤한 날개를 쉬고 있는 잠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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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경사진 산길을 따라 수목원 제일 위쪽에 위치한 국화원까지 둘러보며 내려오는데 2시간 반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것도 모든 꽃들을 일일이 둘러보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면서 본 것도 있건만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어떤 이들에게는 시간이 그보다 짧게 걸릴 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시간이 그보다 길게 걸릴 수도 있겠지만 이 아름다운 꽃무지를 둘러보면서 도시에서 사람 스쳐 지나가듯 그렇게 무심코 스쳐 지나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이야말로 이렇게 아름다운 꽃동산을 만들어 놓은 노력에 대한 작은 답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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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악산에서 자생한다는 해오라비 난초.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해오라기를 닮아 붙은 이름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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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산책을 마치고 아쉬운 마음으로 수목원을 나선다. 잘 길러보라며 입구에서 야생화 화분을 하나씩 나누어준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찬바람이 불고 저 들꽃들도 깊은 겨울잠에 들겠지. 내년에는 잔설이 녹기 전에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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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는 길:::
(46번 국도) 서울 - 구리 - 마석-청평-청평검문소 앞 좌회전(현리방향)-항사리(크리스탈밸리방면)에서 우회전 후 3km
(47번 국도) 서울 - 퇴계원 - 서파검문소(우회전) - 현리 - 항사리에서 좌회전
기타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gapyeongwildgarden.co.kr)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입장료) 성인 4,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 3,000원 모든 유료 입장객에게 야생화 화분을 나누어 줍니다.
(입장시간) 오전 8:00~오후 7:00(4월~11월) 오전 9:00~오후 5:00(12월~3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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