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통령 불인정병' 또 도지는가?
천도(遷都)란 도읍을 옮기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삼국지에 자주 등장하던 혹은 고려, 조선시대에나 쓰이던 말이 21세기에 되살아났다. 예전에 천도는 명실상부하게 모든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궁궐과 왕과 신하들이 모두 옮겨갔다. 구체제를 일시에 무너뜨리고, 새로운 지배체제를 세우고자 할 때 천도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요즘 이 '천도'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왜 굳이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제치고 이 죽어버린 단어인 '천도'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
천도라는 말은 기존의 기득권층에게 심각한 위협과 불안을 줄 수 있다. 옛 왕조 시대에 지배체제의 급속한 교체의 수단이 되었던 천도라는 단어는 현재에도 수도권에 자리잡은 기득권 세력에게는 상당히 자극적인 단어로 결국 교묘하게 기득권층의 저항을 부추기기 위해 선택된 명칭으로 보인다.
행정수도 이전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주된 선거 공약으로 등장하였고, 노 대통령의 당선 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국회에서 관련된 입법도 압도적으로 통과되었다. 공약을 내걸었으니 집권 후 추진하는 것이 당연하고 국회에서 관련 입법까지 된 마당에 새삼 '천도'를 들먹이며 문제삼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국민투표는 또 대통령 신임투표하자는 것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 주장은 노 대통령에 대한 신임 투표를 또 한번 해보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 탄핵으로 뜨거운 맛을 본지 며칠이 지났다고 또 그 '대통령 인정하지 않는 버릇'이 도진 것이다. 바로 지자체 재보선에서의 압도적 승리가 또 그 못된 버릇을 도지게 만든 것이다.
하긴 '꽃놀이패'도 이런 게 없다. 엄청난 이전 비용을 들먹이고 수도권 주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면 여론에서도 불리하지 않다. 더구나 영남 지역은 행정 수도가 자신들에게 가까이 다가온데도 무조건 노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오죽 많은가?
국민투표는 말하기도, 듣기도 좋다. 국민들의 민의를 받드는 모양새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국민투표를 거부하면 계속적인 공격의 실마리가 된다. 국민투표를 해서 이전이 좌절되면 참여 정부는 식물 정부가 된다. 찬성이 더 많으면 '아니면 말고'가 된다.
어느 학자는 "탄핵 정국과 총선 과정을 거치며 민의를 배반한 반민주적·반민족적 집단으로 매도되었던 ‘근조(謹弔) 제16대 국회’가 유독 수도 이전에 관해서는 국민의 의사를 그토록 잘 대변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고 말하며 국회에서 통과된 관련 입법을 무시한다. 그야말로 설렁한 개그다. 그러면 16대 국회의 입법은 전부 무효로 쳐야 한다.
어느 신문은 '천도 비용'이면 포항 공대 수준의 대학을 전국 방방곡곡에 100개를 지을 수 있다라고 비유하면서 야유한다. 돈만 있다고 '포항공대'가 될 리도 없을뿐더러, 방방곡곡에 대학을 만들면 무엇하나, 모두 어떡하든지 서울로 들어오려고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말이다.
무책임한 국민투표 주장보다 합리적인 대안 제시를
이제 좀 대안을 내놓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행정 수도 이전말고 과밀화로 포화 상태가 된 수도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라는 이야기이다. 서울 시장, 경기도 지사, 인천 시장의 반대는 굳이 한나라당 소속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당론으로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찬성한 한나라당이 일부 신문의 부추김에 넘어가 이제 와서 국민투표라니, 국민투표가 무슨 장난인가?
행정 수도 이전, 지금까지 애초의 공약 사항과 크게 달라진 것 없다. 청와대, 국회, 정부가 옮겨가는 것으로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구체적인 이전 기관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더 논의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일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해야지, 이제 와서 큰 줄기를 바꾸어 보겠다는 것은 오히려 혼란과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이다.
국민 투표,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국민투표를 한다면 또 다시 극심한 분열과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지자체간, 지역 주민간 대립 양상이 벌어질 것이 자명하다. 또 다시 정치판을 뒤흔들어 놓고 정부와 대통령의 입지를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
한나라당은 남북정상회담과 대북 지원을 '퍼주기'라며 맹렬히 비난하다가 이제 남북 협력에 지원하겠다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제껏 수구 냉전의 이미지를 이미 흠뻑 덮어썼다. 대선 결과를 승복하지 않고 재검표 농간에 넘어가 한나라당을 두 번 죽였다. 민주당의 꼬임(?)에 넘어가 대통령을 탄핵했다가 지옥까지 갔다 겨우 살아 돌아왔다.
이제 일부 신문의 국민투표 부추김에 혹해 또 '길 아닌 길'로 가려하고 있다. 대통령 재신임을 위헌이라고 했던, 신행정수도특별법을 당론으로 찬성했던, 행정수도 이전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던 한나라당은 이제라도 제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그 신문들 말대로 하면 죽는 길이란 걸 아직도 모르는가? [오미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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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진 기자는 고정칼럼니스트 겸 편집자문위원 입니다. 경북의 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