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를 배워봅시다. 김前대통령의 짧은 외교강의.
정치/경제 2004/06/17 11:13   http://blog.azoomma.com/richard/137413

엊그제 615선언 4주년을 맞아 MBC PD수첩에서 김대중 前 대통령의 특별 인터뷰를 했는데 약 1시간 정도의 짧은 인터뷰 속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3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김정일위원장의 답방 문제인데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북 특사론’에 대해서 한마디로 잘라서(?) ‘그건 아니야!’하고 정리를 한 거다. 왜 그건 아닐까? 「6.15 선언」에서 남북양측의 정상은 상호방문을 명문화했다. 그러면 그것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즉 만약에 답방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약속 위반이고 국제 외교에서 김위원장의 신용은 떨어진다. 특히 정상외교에서 상대방의 방문에 대한 답방은 너무도 당연한 원칙이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이 무슨 사정이 있어서 좀 지체 될 수는 있으나 결국 스스로 와야 한다.

 

그런데 만약 특사를 보내서 ‘와 주십시오’ 한다면 그 자체로 국제사회에서 김정일위원장의 신용도를 떨어뜨린다. 즉, 김정일위원장과 어떤 협정이나 조약을 맺어도 그것을 지킬 것 이라고 믿을 수 가 없어진다는 거다. 약속해 놓고 미적거리다 나중에 또 특사 보내서 촉구하고 해야 비로소 움직이는 인물로 찍히면 누가 그런 피곤한 인간하고 거래 하고 싶을까?

 

당장 북핵 문제 해결하고 북한이 개방으로 들어가면 무수한 나라들과 수없이 거래 상담(?)을 해야 하는데 신용이 없으면 북한이 그 만큼 피곤해 진다는 거다. 맺은 조약이나 약속에 대해 이행할 것이라는 또 다른 확신을 심어주는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사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도 좋지 않고 남한에도 좋지 않다는 소리라는 것이다.

 

남북 간에 무조건 만나서 뜨거운 가슴으로 얼싸안으면 장땡(?)이라고 착각하는 소위 통일 세력은 정신 좀 차리라는 소리다.

 

두 번째는 국제 외교에 있어 어느 국가를 상대할 때 사안별로 각각 접근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우리에게 안보 외교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지만 경제 문제로 가면 중국, 일본도 무시 못하는 나라다. 특히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러시아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러시아의 푸틴이 부시랑 코드를 맞추게 된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죽은(?) 목숨이다.

 

예를 들어, 러, 미 양국정상이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기로 합의를 보면 중국도 끌려 온다. 일본은 당연히 끌려가고… 그래서 북한은 2년 전부터 중국의 후진타오가 대 북한관계에 틈을 벌리려고 하자 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한 것이다.

 

김 前 대통령의 외교에서 기억할 만한 것이 있는데 2001년 1월에 푸틴이 한국에 왔다. 그리고 두 정상은 72년에 미, 소 간에 체결된 ABM(탄토탄 요격미사일 협정)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취임한지 며칠 안되던 부시는 열을 받을 대로 받았다. 왜 그랬을까?

 

부시는 당시 MD(미사일 방어체계)를 밀어 부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ABM을 파기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한국 대통령이 그것도 노벨 평화상 받은 국제적 저명인사가 푸틴하고 코드를 맞추면서 한 방(?) 먹이니까, 부시의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에서 여론이 아주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前 대통령이 왜 그랬을까? 그것은 남북 정상회담 전에 러시아를 방문해서 남북 간의 철도연결 그리고 시베리아 철도연결 사업과 북한의 개방 그리고 새로운 동북아 구도에 대해서 양국의 이해에 대해 두 사람이 공감했고, 그러기 위해서 남북 정상 회담을 푸틴이 많이 밀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냉전구도를 부활시키려고 하는데, 만약 한국이 미국의 압력에 눌려서 대북정책 등 정책에 변화가 생긴다면 러시아는 결국 미국과 코드를 맞출 수 밖에 없고, 그러면 북한이 고립무원으로 위험해지고, 당연히 햇볕정책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김 前 대통령은 푸틴에게 우리의 신용을 확인해 준 것이다. 모든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이다.

 

즉 한국을 믿어도 되고 부시도 알아서 설득하겠다는 소리를 한 것이다.

결국 김 前 대통령은 그 뒤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탱탱거리는 부시를 살살 구슬러서(?) 부시로 하여금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명문화한 공동성명에 사인하게 만들었다.

일단 계약서(?)에 사인했으면 끝난 것이다. 그래서 당시 부시가 인터뷰할 때 김정일 욕을 막 하면서 식식거렸던 것이다. 사인하고 생각해 보니까 손해본거 같았나 보다.

 

즉 통일 문제와 경제문제와 외교문제, 안보문제, 문화문제 등등의 사안에 대해서 우리와 이해를 같이 하는 나라들에게 우선적인 중점을 두는 외교를 해야지, 무조건 미국에 매달리거나 아니면 중국에, 또는 일본에 모든 것을 거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화 관련분야, 특히 요즘문제가 되는 스크린 쿼터 같은 문제는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이해가 아주 일치하는 분야이다. 그러면 이 문제에 있어서는 프랑스와 우리나라가 도움을 받고 또 도와주기도 하고 하면서 같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공동으로 대응하는 외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前 대통령과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중국의 후진타오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북한에 대한 지원을 끊으면서 압력을 행사 했지만,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러시아와 남한에 더욱 밀착되도록 만들었고, 지금은 일본도 북한하고 관계개선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연  후진타오는 얻은 게 뭔가? 룡천참사 직전에 김정일한테 선물 왕창(?) 주면서 북중관계 복원하느라 피곤하게 된 것이다.

 

또한 대만 문제에 있어서 미국이 안면몰수(?) 들어가니까 돌아 버릴 지경일 것이다. 만만해 보이던 천수이벤은 총통 취임식 날 작심하고 독립노선을 표방했다. 그래서 후진타오는 미국에 올인한 정책의 대가로 공산당 정치국 내에서도 공격당하고 있다.

 

외교란 것이 이렇다. 중국은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미국도 중국이 미국은 대만을 포기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역시 안다. 써 놓고 보니 헷갈리는군. 아무튼 그런데도 작년 11월에 원자바오 총리가 미국 가서 부시를 만났을 때 미국은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근데 원자바오는 부시가 거짓말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부시도 원자바오가 자기가 거짓말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역시 알고 있다는 거다. 또 헷갈리는군. 그러나 언론에서는 미, 중 양국이 무난한 합의를 이루었다고 써 갈긴다는 것이다. 원래 외교는 그런 것이다. 

 

결국 후진타오는 대만문제를 자기가 부시랑 거래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손해 봤다. 후진타오는 경제는 미국이지만 안보문제는 북한을 철저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고 아무리 경제가 아쉽더라도 경제는 경제, 안보는 안보라는 등소평이 주창한 ‘정경분리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고, 그것이 등소평과 후진타오의 수준차이다.

 

미국은 중국에게 있어서 경제의 파트너는 될지언정 결코 안보 문제에서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착각한 나머지 밑지는 거래를 한 것이다. 그래서 외교는 사안별로 분리해서 접근하는 현명함이 요구되는 게임이다. 즉 무조건적인 친미나 무조건적인 반미나 다 틀렸단 소리다.

 

세 번째는 ‘우리가 세계 속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라는 말씀이다. 통일한다고 해도 단순 무식하게 ‘우리끼리’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반도에서 정세변화가 일어나면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도 충돌하기 마련이다. 당장 러시아와 일본은 북방 4개섬 반환문제가 있는데, 지금까지는 북한은 아무래도 러시아랑 가깝고 남한은 일본 하고 가까운 구도였지만, 만약 북한이 개방해서 입장이 변하면? 우리도 무조건 일본편 들 수 없고, 최소한 중립을 지킨다는 정도의 성의를 러시아에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북한이 개방 후에 미국 쪽에 일방적으로 기울면 안되니까, 남한도 일방적으로 친미 노선을 고수하지 않겠다는 ‘와교적 신용’을 일찍부터 확인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대국들 속에 둘러싸인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려면 주변 당사국들간 이해의 충돌을 각각의 사안별로 접근해서 유리한 방향으로 적극 활용하는 외교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려면 항상 ‘한국인만이 아니고 세계인’이란 정체성을 이해하는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인재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김 前 대통령이 유럽 순방할 때 뭐라고 했나? 만약 북한이 안전 보장문제에 대해서 미국과 합의를 하고 다시 주변 당사국들이 합의를 해줘도 불안을 느낀다면, 유럽연합이 참여해서 보장을 강화하거나 아예 유엔이 다시 보장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북핵 문제를 이 정도로 거의 전 세계가 다 달라붙어서(?) 해결을 하게 되면 미국에서 부시보다 더한 인간이 대통령이 되어도 제네바 합의처럼 함부로 깨지 못한단 소리다.

그리고 북핵 문제에 대해서 이런 해법을 제시한 인물이 김 前 대통령 말고 있나? 없다. 이런 생각 자체가 아주 글로벌한 감각이 없으면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자주 의식’과 ‘우물 안 개구리근성’을 헷갈리는 인간들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소리다.

항상 ‘우리’ 를 ‘세계 속의 우리’로 인식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법 역시 ‘세계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그런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하다는 말씀이고, 그 전형이 햇볕정책이란 말씀을 김 前 대통령은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