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짱 아줌마' 신드롬은 지난해 12월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인터넷에서 몸짱 아줌마의 얼굴과 몸매를 보지 않은 네티즌은 거의 없을 것이고 그만큼 각종 매체에서는 몸짱 아줌마가 인기 있다고 이야기된다.
그래서인지 누드를 찍자는 제안이나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섭외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몸짱 아줌마가 뜨니 처음 시작했던 <딴지일보>는 이제 '몸짱 아저씨', '봄날 아저씨'를 모집하는가 하면 '몸짱 아줌마, 아저씨 프로젝트'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몸짱 아줌마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해소하러 <딴지일보> 몸짱 아줌마 Q&A게시판에 가면 몸짱 아줌마에게 질문을 하거나 나름대로 의견을 밝히는 글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금 놀라게 된다.
100여개라는 글의 숫자 때문이다. 지금 인터넷의 인기를 실감한다면 이는 너무나 적은 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여기에 몸짱 아줌마의 시작과 끝이 있다고 생각한다. 몸짱 아줌마라는 코드의 명분과 그 실제는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 때문이다.
몸짱 아줌마는 <딴지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왜 자신을 인터넷에서 공개했는지 이렇게 밝히고 있다.
딴 : "...인터넷 검색순위 1위를 순식간에 차지하시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계신데… 당황도 많이 되실 것이고…."
봄 : "네… 많이 당황되는 게 사실이에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기 때문에… 전 조그맣게 그저 운동 메신저 역할을 하고 싶었던 건데… 제 개인적 능력의 한계치를 드러낼까봐 두렵기도 하구요."
딴 : "운동 메신저라고 하면 운동을 전파하는…?"
봄 : "네." (딴지일보, [이너뷰] 봄날 아줌마를 만나다. 딴지보건복지부, 2003년 12월 29일)
몸짱 아줌마인 봄날 아줌마는 '운동의 메신저'를 자임하려 딴지일보에 글을 올렸다고 한다. 몸짱 아줌마를 정당화하는 명분이다.
40대에 가까운 나이에 운동을 통해 몸매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게하려는 운동의 메신저가 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에서 성상품화나 부유층의 운동론이라는 지적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리고 방송 활동이나 누드 촬영과 같은 인기와 상업성에 연연하여 자신을 인터넷에 드러낸 게 아니라고 말한다.
순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짬을 내 운동을 하게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정작 사람들은 몸짱 아줌마라고 불리게 된 봄날 아줌마의 이같은 의도에 얼마나 동의하는 것일까.
딴지일보 몸짱 아줌마 Q&A에 올라온 글들이 예상외로 적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정작 봄날 아줌마의 인기는 운동을 통해 자신도 몸짱 아줌마와 같은 몸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체질과 체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면 몸짱 아줌마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만약 몸짱 아줌마가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주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특수강도 용의자인 여성의 뛰어난 외모를 보고 팬클럽을 만들거나 선처를 호소하고, 다른 범죄자와 다르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그녀의 범죄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고 심지어 그에 응대하는 처벌에도 말이다. 이는 본질에 대한 외면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몸짱 아줌마가 뜬 것은 뛰어난 몸과 몸매일 뿐이다. 인터넷을 타고 돌아다니는 몸짱 아줌마의 인기는 나이에 비해 뛰어난 얼굴과 몸매가 시각을 즐겁게 하는데 있다.
눈을 즐겁게 하는 것, 여기에 진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인터넷 게시판에 진지하게 물어오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그 운동이라는 것이 몸의 건강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가 아니라 몸매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 집중할 뿐이다. 몸매와 건강은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몸짱 아줌마의 순수한 동기가 사실이라면 그것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순수한 동기라고 해도 사회적 맥락에서,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얼마든지 순수한 동기가 왜곡되고 다른 방향을 흘러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더욱 그렇다.
아줌마도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우선 딴지일보 몸짱 아줌마 Q&A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도록 한다.
봄날아줌마는 저의 미래이자 우리의 미래입니다!~^^★
글쓴이 : 짱구사랑*^^* 글쓴날 : 2004-01-24 오후 7:51:28 조회수 : 372 점수 : 32
정말 대단하시네여!~ 제 목표 중 하나가… 나이 들어두 아줌마처럼 건강한 육체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는 거랍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볼만한 몸이지만...나이 먹어서도 그럴 수 있을지는 저도 장담을 못하겠네여!~ 전 이제 22살이거든여 정말이지 앞으로 점점 할 일이 많아지고 바빠질텐데…걱정이 많이 되네여!~~~
22살의 여자 분이 쓴 글이다. 이 글에는 '아줌마'에 대한 공포심이 짙게 배어 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몸이 지금 같지 않게 되리라는 불안 말이다. 몸짱 아줌마의 몸을 보고 운동을 하려하거나 자극을 받은 분들 중에 많은 경우 이러한 심리가 전제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불안은 몸짱 아줌마의 몸을 회자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건 기존 아줌마에 대한 부정이다.
애를 낳고 살이 불은 배, 잔뜩 주름이 진 피부,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몸 같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 사회, 우리 시대의 아줌마 모습 말이다. 몸짱 아줌마가 뜬 것은 이러한 기존의 아줌마 몸을 부정하고 나왔다는데 있다.
아줌마같지 않은 몸은 긍정이고 기존의 아줌마 몸은 부정인 것이다. 새삼스럽게 나이에 따른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빨래와 설거지에 시달려 습진에 걸린 손, 가사 노동에 맞벌이에 굽은 허리와 관절, 아이의 출산으로 나온 배, 잔뜩 주름지고 기미가 낀 얼굴…. 이 얼굴과 몸을 부정하는 팽팽한 얼굴과 빼어난 '몸짱'은 아줌마의 모습을 한없이 초라하고 가치 없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가치 없는' 아줌마 모습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치들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가치 있는 것은 오로지 뛰어난 피부와 몸매일 뿐인 것이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아줌마들의 모습이 지닌 많은 가치들이 몸매 때문에 부정의 대상이라는 말인가?
일부 문화 연구에서는 근대 이후 천대받던 몸에 대한 관심이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몸을 천시하는 동양의 전근대적인 인식 틀에서 이제 해방되었다고도 한다. 바타이유의 이론을 말하며 아름답고자 하는 욕망의 탈주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할 때 자본의 속성에 포섭되는 성상품화 측면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줌마에 대한 공포를 볼모로 아줌마의 몸을 천대하는 점들에 대해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건 몸짱 아줌마의 거품과 실제가 한국 아줌마들이 살아온 삶, 그 삶 속에서 그들의 몸이 어떤 모습을 만들고 우리들에게 의미를 주어 왔는지, 그것이 나름대로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인지 그런 것들을 내쳐버린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아줌마도 젊은이들처럼 탱탱한 피부와 몸매를 지니는 것이 최고라는 가치만을 일반화시키고 있는 점들 말이다.
뚱뚱하면, 기미가 많으면 어떻다는 말인가. 아줌마의 몸은 삶 자체이다. 그 자체가 인생 역정, 인생의 훈장임을 말해준다. 몸매 가꾸기는 이러한 인생 역정을 온통 박제화시키고 획일화시킨다.
계속 이러할 때 몸짱 아줌마와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경우 눈요기용 인터넷 사진일 뿐이다. 몸매를 위한 운동이고 진정 몸을 위한 건강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여기에 몸짱 아줌마의 운동법보다는 몸짱 아줌마의 몸을 보기를 원할 뿐이다.
여기에 몸짱 아줌마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랑을 추구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영혼의 깊이가 어떤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눈을 즐겁게 하는 몸매와 얼굴이 필요할 뿐이다. 여기에 사람들이 저 몸짱 아줌마처럼 될 수 있다는 환상, 그 환상에서 깨어날 때 현실은 더욱 자신에게 소외로 다가온다.
몸짱 신드롬의 확산 현상이 아줌마의 몸에까지 이르렀다. 몸과 영혼을 괴리 시키고 영혼에서 몸을 분리해 갈가리 찢어 인터넷에서 눈만을 즐겁게 하는 사이 현실의 아줌마 모습들을 왜곡하고 그 현실의 모습과 그 의미를 묻어버리게 한다.
이런 삽질이 어디 있을까. 지금 우리 주위에 있는 아줌마들을, 어머니들의 모습을 한 번 똑바로 보는 게 낫다. 아줌마들뿐만 아니라 아저씨들의 몸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고 그대로 두기를 바란다. 너무 위험한 장난이다.
김헌식 기자 codess@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