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정치담론 - 史랑
미천한 출신 성분과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왕이 된 영조
궁궐에서 가장 미천한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의 아들로 태어난 영조는 원래 왕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왕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출신 신분도 좋지 않은 데다가 한때지만 중전이었던 희빈 장씨의 아들이었던 정통성을 완전히 갖춘 이복형 경종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왕위가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조가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종이 후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종은 후사가 없었기에 어머니인 장희빈이 사약을 받기 전 마지막 소원으로 아들인 경종을 보고 죽고자 했는데 사형 집행을 위해 둘을 떼어놓을 때 장희빈이 경종의 생식기를 쥐어뜯어서 경종의 후사가 없게 되었다는 야사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결국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를 죽이는데 앞장을 섰던 노론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하여 후사 없는 경종을 압박하여 경종의 이복동생, 즉 숙빈 최씨의 아들인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밀었고, 경종은 노론의 주장을 받아들여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했습니다.
그러나 노론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경종을 더욱 몰아붙여 세제 대리청정까지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사실상 세제에게 정권을 넘기라는 것이었는데, 경종은 이를 받아들여 세제 대리청정을 허락했으나 소론이 격렬히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소론 강경파들은 노론의 세제 대리청정 주장을 역모로 몰았고 경종이 이를 받아들여 정권은 소론에게 돌아갔습니다.
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고, 다음해 남인 목호룡이 노론쪽에서 경종을 살해하려고 했다는 이른바 「삼급수 살해 사건」(노론이 경종을 칼로, 약으로 살해하든지 모해하여 폐출할 것을 모의했다는 고변)을 고변하면서 임인옥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노론 4대신을 포함한 60여명을 처형하고 관련자 170여명을 유배 등으로 제거되며 노론은 일격을 당하게 됩니다.
이 반역 사건에 관련된 연잉군은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연잉군의 지지 기반인 노론들과 측근들이 제거되고, 경종을 만나는 것도 금지됩니다. 이렇게 그에게 압박이 다가오자 그는 대비 인원왕후를 찾아가 세제 자리를 내놓겠다는 말까지 하며 도움을 청합니다. 이에 인원왕후는 세제를 보호하는 언교를 내려 소론의 압박을 저지함으로써 연잉군은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듬해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영조는 50년 넘게 재위하면서 탕평책을 펼치며 왕권을 강화하고 균역법 등으로 민생을 안정시키며 영조, 정조 시대의 중흥기를 열었던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미천하다는 이유로 왕이 될 수 없다고 생각되어지기도 하였고, 역적으로 얽혀 죽을 뻔한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 왕이 되었기에 더 열심히 왕 노릇을 하였던 것입니다. 강물은 굽이쳐 흐르지만 결국은 바다로 갑니다.
내가 바라는 희망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이다
<한국갤럽이 민주당 대의원 103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최대허용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9%) 결과, 현재로서는 이인제 고문이 민주당 차기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내일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가 열리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지지하는 순서대로 두 사람을 말해달라'란 질문에 '첫 번째로 지지하는 후보'로 이인제 고문(43.4%)이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는 노무현 11.5%, 한화갑 11.3%, 김중권 7.9%, 정동영 3.1%, 김근태 고문 2.7%, 유종근 전북지사 0.7% 등의 순이었다. 모름, 무응답은 19.4%였다.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누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보는가'란 물음에도 이인제 고문이 50.3%로 가장 높았다. 이어 노무현 8.9%, 한화갑 8.4%, 김중권 4.2%, 정동영 0.9%, 김근태 0.7%, 유종근 0.4% 등이 뒤를 이었다.>
위의 언론 보도는 2년 전 민주당 국민경선이 있기 직전에 조사된 여론 조사 결과입니다. 이인제가 민주당에 들어온 이후 거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이인제>라는 <이인제 대세론>이 일반적인 분위기였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인제의 아픔은 대통령 후보는 되어도 대통령은 될 수 없다는 또 다른 대세론이었던 <이회창 대세론>이었습니다. 결국 민주당은 어차피 지게 되어 있는 이인제를 버리고 새로운 대안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노무현입니다.

그러나 국민참여경선이 있기 직전까지 누구도 노무현의 후보 당선을 예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예상과 틀렸습니다. 제주에서 한화갑이 1위를 하며 이인제 대세론을 무너뜨리기 시작하더니 울산에서 노무현이 1위를 하며 영남후보론을 확인시키고, <위대한 광주의 선택>으로 이른바 노풍이 불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후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이인제와 조중동은 말꼬리 잡기, 색깔론 등으로 무차별 공격으로 나왔지만 노풍은 오히려 거세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국민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 선출되었습니다. 이인제 대세론과 이회창 대세론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에게 노무현은 희망이 되었습니다.
사실 노무현은 국민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정치인이었습니다.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국민들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조선일보도 예감했었는지 노무현에 대한 비방, 사실 날조로 조중동을 종교로 믿는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노무현은 대통령감이 아니다라는 허무맹랑한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3당 야합과 지역감정에 맞서 싸우고, 조선일보와 당당히 싸워 이기고, 항상 국민들 편에 서서 정치를 해 온 것을 알기에 그를 희망으로 생각한 국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사모가 만들어지고, 인터넷에서 그가 희망이라는 것을 알리는 국민들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우리 모두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희망은 다른 사람들 우리 모두에게도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모르거나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우리 모두의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노무현입니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대통령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5자 대결의 경우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후보 31.7%, 정몽준(鄭夢準) 무소속 의원 29.6%,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후보 15.9%, 권영길(權永吉) 민주노동당 후보 2.2%, 이한동(李漢東) 전 국무총리 0.9%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민주당 일각에서 추진 중인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간의 후보 단일화를 감안, 노 후보가 사퇴할 경우에는 정몽준 의원이 40.1%를 얻어, 이회창 후보(34.5%)를 앞섰으며, 정 의원이 후보를 사퇴할 경우에는 이회창 41.8%, 노무현 31.4%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불어닥친 정몽준 바람은 결정적으로 노무현 바람을 잠재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위의 여론조사 결과는 대통령 선거가 있기 불과 3개월도 남지 않은 때의 상황입니다.
지방 선거 참패 후 시작된 노무현 후보 흔들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시기도 바로 이 때입니다.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며 자당 후보를 흔들고, 탈당하고 했던 인간들이 바로 박상천, 정균환 등의 인간들이었고, 나 몰라라 했던 인간이 한화갑입니다. 그때 이들을 비난하며 노무현 후보 지키기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조순형, 추미애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들이 짝짜꿍하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정몽준 바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곧 정몽준에 대한 조중동의 검증이 시작되었고, 이회창 당선의 최고 조건인 정몽준-노무현 도토리 만들기에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이에 공이 컸던 인간이 바로 김민석이었습니다. 김민새가 정몽준에게 날아가 버리자 노무현 바람은 다시 불기 시작하였고, 노무현과 정몽준의 지지율은 막상막하를 이루며 서로 근접하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후보 단일화의 압력이 강해지고 결국 노무현 후보의 결단으로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이때부터 노무현 후보는 승기를 잡고, 선거 전날의 정몽준 폭탄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는 정몽준에게 유리한 단일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사즉생의 각오로 국민들을 믿고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노무현은 정몽준도 믿지 않았고, 당내의 박상천, 정균환, 한화갑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국민만 믿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스스로의 결정에 놀랐고,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내가 바라는 희망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이라는 것. 우리 모두의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의 증거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열린우리당이 승리하는 방법
<정당 지지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 23.3%, 민주당 18.8%, 열린우리당 17.3%, 민주노동당 5.9%, 자민련 2.7% 등이었고 ‘지지정당 없음’은 32%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TNS에 의뢰해 전국 성인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한나라당은 2주전에 비해 3.4%포인트 하락했지만 1위를 고수했다.
민주당은 4.3%포인트 상승하면서 1.5%포인트 하락한 열린우리당을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2위에 올랐다. 수도권과 영남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선두였고, 호남권에서는 민주당, 충청권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우세했다.>
위의 언론 보도는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 여론 조사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웃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의 상황이 오면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총선은 대선이 아니기 때문에 전국 지지율보다는 각 지역별 지지율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소선거구제이기 때문에 1등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2등, 3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마 자민련이 강세인 지역구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비례 대표 몇 석이 희망인 민노당보다는 의석 수는 더 있을 것입니다.
지금 현재 각 지역별 지지율을 보면 호남은 민주당, 영남은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이겠지만 열린우리당의 후보 내세우기가 어떠냐에 따라서는 전북과 부산, 경남에서는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총선 결과를 판가름할 가장 중요한 수도권은 어떤 바람이 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총선 결과를 보면 수도권은 거의 예외 없이 바람이 불어 판세가 결정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총선은 새 정치와 낡은 정치의 대결이라는 바람이 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민들은 거의 100%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패 구조의 낡은 정치를 혐오하고 있습니다. 결국 수도권의 승리는 새 정치의 희망을 보여주는 정당이 가져갈 것입니다. 저는 그 희망을 보여줄 정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열린우리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과의 합당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하여서 수도권에서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낡은 정치끼리의 싸움이 되어버리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나 희망이 없습니다. 낡은 정치의 진흙탕 싸움의 전문은 한나라당이기 때문입니다.
열린우리당은 이것 하나만 믿으면 승리할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희망은 다른 사람들 우리 모두에게도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국민참여경선으로 후보를 뽑고,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선거 운동을 하고, 깨끗하게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이 바로 새 정치이고, 그것이 승리의 유일한 비결입니다. 그것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