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다 누구나 한번쯤은 저렇게 부서질 때가 있다 비명도 없이 세상의 모든 절망이 단색이듯이 치장도 없이, 그대로 찢어져 지상으로 내려 앉는다 누군가 저 허공을 빈 것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채우다 만 여백이라 말하니 순백의 흰 것들은 차라리 비명이다 저것들, 메아리도 질문도 대답도 없이 한낱 가벼운 농담처럼 제 한몸 나풀거리는데, 아, 아 산자는 고개들어 축복이라 말하고, 나는 비명을 끌어안고 안심한다 내 기쁨의 행로는 왜 이리 징그러운가 낯설다 내가 믿는 진실이 어색하고, 다독거리던 말의 경로가 수상하다 눈 와, 흐린 저녁 어디론가 열심히 타전하는 사람들, 내가 아는 여자는 믿음을 자꾸만 어느 사내의 가슴에서 찾았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그 여자가 흔들리는 풀잎을 닮아가는 동안, 나는 하얀 잎을 본다 아아, 저 하얀 잎, 울음도 없이 저 슬픔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가
나는 절망의 가운데를 지나가려 무던히 애썼다 택한 길들은 도시의 심장근처 고통의 광장을 지나가고 어차피 나의 사유는 이 도시에서 쓰러진다 배운 곳에서 토해내고 심은 곳에서 나는 자랄 것이다 유난히 새것과 낡은 것을 구별하며, 쓸모의 뒷편에 무수히 부서지는 것들을 감춰놓았으니, 걸어갈 때마다 마찰을 일으키며 생을 압박한다 그러나
나는 느끼고 싶다 자정 너머 떠나가는 카타리나행 열차는 타지 않으리라 나는 이곳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불러 느끼고 싶다 저 쓰러지는 눈 한가운데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