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의 숲 / 이순우 著 -
낙엽을 떨구고 나목(裸木)으로 서 있는 나무들은 스스로의 몸을 가볍게 하고 자기
자신을 뒤돌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땅속 깊은 곳에서 빨아올린 신선한 수액과 뜨
거운 햇빛을 자양분으로 무성한 잎들을 번성시켰던 나무들은 때가 되자 홀가분하게
신변을 정리하고 조용한 휴식과 침잠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때 숨막히도록 강한 열기를 뿜어내던 녹음의 공간을 지금은 바람과 햇빛이 어울
려서 마음껏 채울수 있도록 비워준 것이다. 숲은 여름내내 몇 미터 앞 거리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두텁게 드리웠던 나뭇잎의 가림막을 걷어 저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자유로움과 투시의 공간과 시간을 부여해 주고 있다.
스스로 잎을 지우는 나무들은 그들이 떨쳐낸 낙엽들을 헛되게 내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낙엽들을 그들 가까운 곳에 쌓이게 한 뒤 자신과 또 다른 생명체들의 뿌리로
되돌아가게 한다.
낙엽귀근(落葉歸根).
나무들은 그들 스스로 푸른빛으로 불태웠던 정염의 나뭇잎들을 미련없이 땅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생명과 우주의 순환을 지속할 수 있는 휴식과 밑거름을 만들어 준다.
자신을 거두고 비움으로써 지금에 연연하기 보다는, 보다 풍성한 내일을 기다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털어 버리고 나면, 벗어 버리고 나면 이렇듯 환하고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을.
지워버리고 비워 버리고 나면 자신은 물론 다른 것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을. 우리는 주기적으로 거추장스러운 짐과 옷을 벗어버리고 평상심平常心
으로 되돌아가 좀 더 넓고 밝게 볼 수 있는 지혜를, 잎을 지우는 나무숲으로부터
배워야만 한다. 스스로의 몸을 가볍게 만들어서 마련하게 되는 빈자리를 다른 것들
에게 베풀 줄 아는 나무숲의 미덕을 본받아야만 한다. 과감히 잎을 떨구는 나무숲과
같이 쉼과 여유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음악소스 - Sonnet Of Setting Sun / Yuhki Kuramot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