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품이 그리워 찾고 싶을 때 달력을 펼쳐라. 그 속에는 사진작가들이 정성을 기울여 담아낸 아름다
운 풍경이 들어 있다. 우리 땅에서 최고라 불리는 명소 중에서도 최고만을 골라 실은 달력 속의 비경을
감상한다.
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인 회색 도시에서 살다 보면 문득문득 자연이 그리워 진다. 푸른 물에 부서지는 밝은 빛과 숲에 이는 청명한 바람, 맑게 갠 하늘과 은은히 비치는 달. 이들을 모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야 이미 그런 곳을 찾아 떠났지만, 몸까지 동행할 수 없는 현실인지라 막연한 동경은 더욱 커진다. 이럴 때 위안이 되는 것이 달력이다. 집 안 벽이나 사무실 책상 위의 예쁜 풍경 사진이 담긴 달력.
그 속에는 신비하도록 투명한 자연이 들어 있다. 새싹이 돋아나는 초록 세상과 만 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꽃 세상, 산사에서 들려오는 고즈넉한 풍경 소리, 눈이 수북히 쌓여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설산, 조상의 숨결이 묻어나는 역사의 현장이 모두 12장의 달력을 통해 우리와 만난다.
우리 조상은 정원을 꾸밀 때 자연 경관을 집 안으로 들였다. 그것을 취경이라 했다. 우리의 생활 공간에서 자연을 끌어들이는 좋은 방법이 멋진 풍경이 들어 있는 달력을 두는 게 아닐까. 매일 한 번 이상은 바라보게 되어 자연스레 달력 속에 흐르는 시적 경치를 보면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취경이 아닌가.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기 힘들다. 가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달력 속의 장소는 어딘지 몰라서 가기 힘들다. 좋긴 한데 ‘그림의 떡’이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다. 사진작가는 전국을 헤매며 찾아낸 비경을 카메라에 담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그중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장소도 많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녀온 곳인데도 무심코 지나쳐버려 숨은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곳도 있다.
이제 달력 속의 풍경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란 생각을 버리자. 여기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달력 속의 명소가 기다린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누구라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카메라에 담아 멋진 경관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
‘일출 1번지’로 명성을 떨치는 대표 일출 여행지. 추암은 파도와 비바람에 씻긴 기암괴석과 작은 반달 모양의 한적한 해수욕장이 매력 있는 곳이다. 언제나 많은 사람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러 동해로 나선다. 매일 아침 동 틀 무렵이면 붉은 기운이 밝아지다가 어느새 황금빛으로 바뀌어 바다를 황금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촛대바위에 걸린 해는 촛대 위에서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그렇게 세상을 환하게 해준다. “붉고 자그마한 것이 보로소 쏘옥 떠오르면 그 모양이 붉은 석류 같고, 동그란 쟁반 같으며, 바다에 길게 비춰진 붉은 기운은 마치 소의 혀와 같다”는 정철의 <관동별곡>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저마나 장엄한 빛을 뿌리며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희망을 건져 올린다.
풍광이 독특하거나 이채로운 장소는 사진작가들이 선호하는 촬영지다. 특이한 모습은 강하고 인상이 깊어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전북 진안의 상징으로 불리는 마이산은 신묘한 봉우리의 생김새가 다른 곳에서는 좀체로 접하기 힘든 신성한 느낌을 준다. 말의 귀처럼 불끈 솟아 마주한 두 봉우리,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마이산이다. 무심히 바라보면 까칠하게 굳어버린 콘크리트 더미 같지만, 이 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이다. 암마이봉(673m)과 수마이봉(667m)의 두 봉우리엔 하늘에 오르려다 실패한 신선 부부의 불가사의한 전설이 서려 있다. 신기한 자연 경관과 그에 어울리는 애잔한 전설이 한데 어울려 여행의 설렘이 한층 더한다.
돌을 머리에 인 아낙들이 줄 지어 성 위를 도는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 장소가 고창읍성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의 성이 유럽의 성처럼 각광받는 여행지가 아닌 까닭에 수원 화성이나 순천 낙안읍성을 제외하고는 여행 장소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산성의 나라’라 불릴 만큼 무수히 많은 성이 있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하였다. 매년 음력 9월 9일을 전후로 열리는 축제 때는 답성놀이를 한다. “돌을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를 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왕생한다”고 한다. 축제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성 밟기를 하는 풍경이나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경치가 가장 뛰어나다.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어갈 즈음, 이미 산비탈을 따라 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활성산 기슭 봇재를 중심으로 펼쳐진 대규모의 차밭은 나무 숲 우거진 곳이 아니어도 멋드러진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푸른 파도가 너울대듯 온 산을 휘감은 차밭 한가운데 서보지 않고서는 그 진미를 느끼지 못한다. 세상에는 돌산, 설산 등 다양한 종류의 산이 있지만, 차밭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매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차밭을 거닐기에는 이른 아침이 좋다. 바다에서 밀려온 안개가 차밭을 휩싸며 신비로운 다원을 만든다. 안개에 싸인 차밭을 걷는 상쾌하고 신선한 기분. 대한다원은 차밭의 풍경도 그러하거니와 다원 입구에 길 양편으로 수령 50년 이상은 됐음직한 아름드리 삼나무가 심겨 있어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아름다운 길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