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설상의 새와 나무.
비익이라는 새는 암수가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나란히 한 몸이 되어 난다 하며,
연리라는 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이지만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나뭇결이 상통한다는 데서
남녀간의 깊은 정분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나라 6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그린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도다>라고 읊었다.
'연리지'는 서로 가까이 있는 두 나무가 자라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가지끼리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맞닿은 자리가 붙어 한 나무로 변한다. 땅 아래의 뿌리는 둘이면서 지상에 나온 부분은 그렇게 한몸이 되는거다.
바람 따위에 상처를 입어 속살이 드러났다거나, 아니면 두 줄기가 살짝 맞닿아 있다가도 그대로 붙어 버리는 연리지.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한번 연리지 된 가지는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무박사 임경빈 선생은 자기 집 뜰에 심은 엄나무 몇그루를 일부러 연리지를 만들어 키우기도 했다. 나무가 빨리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나무 가지들을 엮어 묶어 놓았다나.
어떻게 보면 참 불편할 것도 같은데 나무들에겐 왜 이런 연리지 현상이 일어날까.
두 나무가 서로 가까이에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해보자. 어느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혼자 자라도 모자랄 공간에 다른 나무가 떡하니 들어와 있는거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채로 계속 자라다 보면 두 나무 중 한그루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한 나무 분량의 영양분과 햇볕을 두 나무가 서로 나눠 갖다 보니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약한 놈이 죽게 되는 거다.
어쩔때는 두 나무가 동시에 병들어 죽기도 한다. 저희끼리 서로 살겠다고 치고 받고 싸우다가 결국엔 두 놈 다 병충해를 이겨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그런데 나무란 놈은 참 현명해서 그렇게 되기전에 대부분 서로 의기투합한다. 한쪽이 병들어 죽기 전에 설 붙어 한 몸이 되어서는 혼자였을 때보다 훨씬 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는 거다. 전화위복이랄까. 몸집이 더 커지다 보니 뻗어갈 수 있는 가지수도 늘어나고, 그만큼 병충해 같은 외부의 재해로부터 강해진다.
연리지 현상이 참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쳐지기전의 성격과 기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흰꽃을 피웠던 가지엔 흰꽃이, 붉은 꽃을 피웠던 가지엔 붉은꽃이 그대로 피어난다.
그렇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녔으면서도 어떻게 한몸을 이루면서 살 수 있는지, 마치 불과 물처럼 제각각인 나무들이 일단 한몸이 되면 서로의 개성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사는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나무가 연리지 되는 것을 보며 사람도 저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부부가 나무의 연리지처럼 살 수 있다면 그 삶은 진정 행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