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번째 탯줄
뱃속의 태아는 오직 탯줄만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 받기 때문에 세상 빛을 보기 전까지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다.
더 이상 모체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일 때 드디어 탯줄은 그 누군가에 의해 잘려지고, 한 인간으로서의 첫울음을 터트리게 된다.
21년 전, 내 첫아이의 배꼽에 달린 탯줄의 자투리를 보고는 열달을 잘 견뎌내 준 것에 감사하며 탯줄대신 내 삶을 통해 조금씩 영양분을 주기 시작했다.
유일한 어미와의 통로인 탯줄 때문일까?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며 '엄마'라고 부르는 외침은
끝도 없지 싶다.
내 아이는 물론 나역시 소스라치게 놀랐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셀 수 없이 '엄마'라고 소리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갔고, 처음 학교라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해야 할 즘에, 난 아이에게 혼자서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엄마와의 유일했던 탯줄에 익숙해 있던 아이는 두려움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으며 홀로서기를 준비한다.
행여 되돌아와 도움을 청하면 혼자서 해야 한다는 모진 말로 애써 외면했던 내 아이의 유년시절은 별 어려움 없이 지나갔다.
어느덧 아이가 틴에이저가 되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사춘기 시절이 오고서야 난 은근히 아이의 인생에 조금씩 삐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그게 다 널 위한거니깐...." 하며...
아이는 쉴새없이 혼란스러워하며 커간다.
이십여년 전, 자신과 엄마를 연결했던 그 탯줄이 다시 자라고 있다는 것을 문득 생각할 것이다.
예전의 그 탯줄은 아이에게 붙어있던 것이였지만 새로 자라고 있는 두번째 탯줄은 엄마 마음 속 깊이 박혀 있다는 새로운 사실과 함께...
사실 다시 생겨나는 이 탯줄은 그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것이다.
다만 엄마도 아이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버렸기 때문에 모두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중이다.
어른이 된 나의 아이는 오늘도 그 탯줄을 끊으려 발버둥 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쪽에서 끊어야 끊어지게 되어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그 반대였다.
기나긴 동굴을 빠져나와 낯선 환경에서 거칠게 몰아치는 아이의 가쁜 호흡과 번쩍 들어올린 두 팔끝에 움켜쥔 두 손이야 말로 탯줄을 끊어야 비로소 소용이 있는 것을...
그렇게 탯줄을 끊어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였다.
오래전 시집오던 첫날 시어머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여자는 탯줄을 두번 끊어야 하는데 첫번째는 아이를 잉태할 때이고, 그 두번째가 아이가 출가할 때란다.
이제서야 깊은 의미를 새기면서 두번째 탯줄을 깔끔하게 끊어야겠다, 어른이 된 내 아이들은 엄마 마음속에 박혀 있는 그것을 결코 끊을 수 없을테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오늘도 말하겠지?
"언제까지 엄마가 잔소리 해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