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애틀에서...
씨애틀 이야기 2008/04/04 23:40   http://blog.azoomma.com/nayamina/272283

 

선물의 의미

 

 

누구에게나 선물이란 것은 얼굴을 환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릴적 짝꿍이 건네준 연필 한자루의 조촐한 선물부터 고급스럽게 포장된 선물들까지…

그들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나만을 위한 것이란 아주 특별한 이유만으로도 분명 우리를 기분좋게 만든다.

 

아주 오래전, 12월의 어느날이였을까?

연말답게 모두가 산타가 된듯 하나둘씩 선물을 준비하는 이곳 사람들 틈속에 섞여 난 어색하게 선물을 사러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내 어릴적 기억속 ‘선물’이란 것은 많은 고민을 해야만 해결을 할 수 있었기에 누군가의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받는 사람을 위해 되도록 더 고급스러운 선물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많았기 때문이지 싶다.

하지만 난, 오래전 이웃이였던 그 할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진정으로 ‘선물’이 주는 깊은 의미를 알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내 갈색눈과 달리 파란눈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의 주름으로 덮혀 있었기 때문에 피부색이 다른 낯선 할머니가 아닌 시골에 계신 내 할머니 같았던 분…

그녀는 빨간 립스틱을 즐겨 발라서 나이보다 훨 젊어보였기에 난 멋쟁이 할머니라 불렀다.

그녀는 내게 이쁜 포장으로 싸여진 작은 상자와 카드를 전해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짧은 한마디와 따뜻한 포옹을 한후 성탄절을 맞아 가족들을 만나러 집을 비우게 됐으니 가끔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상자와 제법 어울리는 작은 리본이 내 맘을 사로잡았지만 덥석 받기만 했던 난 몹시 당황스러웠다.

 

주는 만큼 받는다는 이해타산적인 선물교환(?)에 익숙했던 생활 습관 탓이였을까?

난 그저 내 가까운 가족과 친척들 선물만 준비했었지 늘 다정하게 대해줬던 그 할머니께 전할 선물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으로 부터 받은 선물은 날 잔뜩 기대하게 만들었기에 지체없이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속엔 사치스러웠던 포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홈메이드 초콜렛 서너개가 들어있었다.

그 땐, 보잘것 없는 몇개의 초코렛을 요란스럽게 포장했구나 하는 실망섞인 생각만 했을뿐 기쁘게 전해주셨던 그 할머니의 행복한 표정을 기억하지 못했었다, 어리석게도…

 

받았으니 뭔가 답례를 해야겠다는 부담과 성의 없는 생각으로 며칠을 보낸뒤 집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할머니를 볼 수가 있었다.

고맙고, 맛있었다는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는 사이 연말 쓰레기 수거로 정신없이 다니시는 청소부 아저씨들을 발견하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차를 세웠다.

 

할머니 특유의 다정한 목소리로 짧은 대화가 오고갔고, 그들 손에 내게 주어졌던 거와 똑같은 포장과 리본이 달려있는 작은 상자를 전해주었다.

그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난 뒤, 여전히 또다른 주인을 기다리는 또하나의 그 쌍둥이 작은 상자는 곧 다녀갈 우편배달부 거라며 말해준 할머니을 뒤로 한채,  돌아선 내 가슴에 커다란 감동이 삐집고 들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하찮게 생각했던 그 홈메이드 초코렛을 그녀는 전해줄 사람들을 생각하며, 재료를 구입하고, 만들고, 행여 그 작은 초코렛이 부서질까 조심스럽게 포장을 했었을 그 모든 과정들이 한순간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난 분명히 보았다, 그 작은 상자를 받은 나와 청소부 아저씨들의 얼굴 표정보다 설레이며 전해준 그녀의 얼굴이 더 행복했었다는 것을…

 

이렇게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과 선물을 전해주는 마음과 눈은 이세상 그 어느 것보다 더 밝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쩜 어릴적 내 부모님이 벙어리 털실 장갑과 목도리,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그리고 커다란 망사 양말 주머니에 든 종합선물 세트를 장농에 몰래 감춰 두시고 우리가 고이 잠든 사이 머리맡에 놓아두시며 느꼈던 그 ‘행복함’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의 키와 생각이 자라면서 선물을 주기 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해졌고, 행복과 마음을 비운채 허영만 잔뜩 담은 선물들을 주고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받은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때묻은 속셈으로 점점 굳어가는 내 심장을 그 때 그 이웃 할머닌 다시 뛰게 만들어 주었다.

화려한 포장지처럼 그 안의 선물도 고급스럽고 화려해야만 한다는 편견은 조금씩 사라졌고, 서서히 선물에 나의 마음을 담기 시작했다.

달콤한 그 홈메이드 초코렛처럼…

 

늘 그렇듯이 ‘생각와 다짐’을 실천하기까진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좋은 것’은 꼭 실천하고 싶었다.

처음 그 할머니처럼 동네 쓰레기 수거해 주시는 아저씨와 우체부 아저씨께 홈메이드는 아니지만 면이 좋다는 이유로 잔뜩 사온 한국산 양말 몇컬레를 참 쑥쓰럽게 전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이라 어색하고, 쉽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그들에게 전해주는 내 손과 표정은 더 밝아졌고, 당당해지고 있음을 스스로도 느낄수 있었다.

이렇게 선물이란 것이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일깨워줬던 그 이웃 할머니로 인해 ‘홈메이드 초코렛’과 같은 나만의 감사 선물을 준비한다.

 

선물이란 것이 이제 더 이상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은 필요없고, 오직 전하는 사람의 행복한 마음과 기쁨이 진실되게 담겨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난, 올 연말 선물을 위해 몇달전 부터 뜨기 시작한 여러개의 숄을 마무리 하며 하나씩 상자에 담고 있는 참 행복한 사람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