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위반의 댓가
씨애틀 이야기 2007/10/21 04:29   http://blog.azoomma.com/nayamina/259211

 

 

올 10월, 대학에 입학한 작은 아들이 고교 졸업을 몇일 앞둔 어느날 아침....

등교길에 주택가 속도 위반으로 티켓을 받았다며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만 16세 이상이면 오너 드라이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들녀석 역시 어린 나이에 운전을 하게 되어 늘 걱정을 하고 있었건만 내리막 길이였던 주택가에서 속도가 붙었던 모양이다.

 

제한속도 35마일....

경찰관 스피드 건에 찍혀버린 아들녀석의 자동차 속도는 자그마치 55 마일....

 

태어나 처음으로 경찰관과의 일대일(?) 대면은 아들녀석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면허증과 보험증서를 내주는 녀석의 손은 세상 푸르른 5월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정없이 떨고 있었단다.

 

방과후, 집에 온 녀석이 내민 핑크색 종이엔 교통 위반 장소, 시간, 이유... 등등 사무적인 것들이 씌여 있었고 그 뒤엔 위반자가 해야 할 여러가지 방법들이 씌여져 있었다.

게중 손쉽게 벌금 $185만 내고 간단한 재교육을 받게 되면 보험료의 인상 유무와는 상관없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될 수도 있지만 남편과 난 아들녀석에게 '속도 위반의 댓가'를 톡톡히 치루게 했다.

그것은 사회 봉사 활동으로 벌금을 삭제 받을 수 있는 방법이였는데 최소 임금 수당인 $8.50/hr 으로 계산한 거의 21시간의 봉사 명령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중 젤 처음으로 교통 위반자가 된 작은 아들녀석 역시 기꺼이 사회 봉사를 하겠노라 큰소리 치더니 막상 적당한 곳을 찾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녀석은 미국의 '아름다운 가게'라 할 수 있는 'Goodwill' 란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처럼 기증받은 그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손을 본뒤 아주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으로 크기는 거의 대형 할인점과 비슷하지 싶다

 

여기서 아들녀석이 해야 할 일은 트럭으로 들어오는 물건들을 분류해서 매장에 진열을 해 놓는 일을 시작으로 탈의실 옷정리는 물론 매장내 모든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아두는 소소한 일을 하게 되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0시간....

아들녀석에게 이것은 분명 '봉사'가 아닌 '중노동'이였을 것이다.

편의점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 첫날......

매장 매니저의 지시에 잠시 앉아 볼 틈이 없을 정도로 힘들고 바빴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며 아들녀석은 배시시 웃는다.

그렇게 제법 익숙해진 둘째날에 잠시 둘러보니  매장안이 전보다 훨씬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는 내 말에 녀석은 자기가 열심히 일한 흔적이라며 너스레를 떨며 함께 돌아오는 차안에서 짧았지만 느꼈던 녀석의 생각들을 두서없이 끄집어 낸다.

 

뭔가 하자 있는(?) 자원봉사 신청서를 성의 없이 훑어보았던 매니저가 매장에서 함께 일해 볼 의향이 없냐는 적극적인 프로포즈는 분명 좋은 뜻이였지만 처음 잠시라도 문제아(?) 취급을 당했을 때의 묘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단다.

(허긴 녀석처럼 교통위반으로 인해 사회 봉사 명령을 받게 된 많은 청소년들이 정직한 봉사활동보다는 적당히 시간을 때우려는 경우가 많다고 했었으니깐.....)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인연들은 자기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였기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며 한두명씩 거론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이란 중년남성은 하루 벌어 사는 막막한 삶의 주인공이지만 최소 임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그 작은 행복으로 허름한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흥분해 하는 순수한 모습으로 인해...

 

겨우 숫자만 분별한다는 쟌이 여기 저기 흩어진 옷가지들을 부지런히 정리하면서 발음이 셀 정도로 돌보지 못한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그의 웃음으로 인해........

 

그리고 무엇보다 '재활용 센터 매장'인 Goodwill 에 들러 기꺼이 물품들을 구입해가는  대부분의 소탈한 서민들이 보여준 그 모든 것들로 인해....

 

풍요로운 세상속에서 살아온 아들녀석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었던 모양이다.

 

느낀 만큼이나 확실하게 전달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던 녀석은 정말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내뱉는다.

 

아마 오래전 'I'm hungry.' 란 피켓을 들고 구걸하던 홈리스를 보며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는 말이 떠올랐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