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아보니 (21)
뒤 돌아보니 2007/01/12 03:42   http://blog.azoomma.com/nayamina/240178

 

겨울눈 보다 겨울비가 더 잘 어울리는 이곳 씨애틀의 1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선인장 마을에서 이사온 우리 가족을 위한양 어제도 많은 눈이 내렸다.

여러가지 기록을 세우고 있는 걸 보니 분명 자연이 많이 화가 난 것 같긴 한데...

 

지난 2006년 1월의 오늘...

대학간 큰아들 녀석의 빈자리로 익숙해질 무렵....

남편과 난 작은녀석의 대학 준비로 또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분주했다는 표현은 좀 비양심적이지만....)

 

늘 그랬듯이 모든 것이 '처음'이였던 큰녀석보단 둘째는 거저 키운다는 생각을 많이하게 된다, 미안하게시리....

 

형의 능력(?)만큼은 아니지만, 형보단 훨씬 덜 애 먹이는 녀석이 대학 입학 준비로 젤 바빴던 지난해 초....

 

녀석의 목표가 의대이기 때문에 남편과 난 머리 맞대며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그건 바로 삶의 둥지를 옮기는거!!!!

 

모든 것이 그렇지만 미국에서 의대를 간다는 건 장거리 마라톤과 같아 본인이나 가족의 꾸준한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대의 꿈을 접은 남편의 생각이였기에 전직의 어려움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결심하게 되었다.

 

비싼 명문대학 학비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기 위해 일단 괜찮은 주립대학에서 학사를 하고 기왕이면 유명한 의대에 입학하자는 아들녀석과 동의한 장기 계획을 위해 '워싱턴 의대'가 있는 씨애틀에 남편이 직장을 알아 보기 시작했다.

 

운명이였을까?  직장을 알아본지 한달도 채 안되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버린 삶의 둥지 옮기기는 노련한(?) 21년차 아줌마인 내겐 그리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한국처럼 땅덩어리 좁은 곳에서의 매매처럼 활발하지 않은 이곳이기에 드문 구매자를 위해 매일 쓸고 닦고 정리하기를 일주일 만에 예상치도 않게 일찍 집이 팔려 버렸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버린 우리 생활의 변화들....

 

아들녀석의 남은 학기를 위해 팔자좋게 콘도 생활을 하며 먼저 씨애틀로 간 남편과 주말 부부란 색다른 경험을 했던 2006년의 그해 여름...

그것이 선인장 마을의 마지막 여름이였는데...

그래도 마지막이란 아쉬움으로 만끽하기엔 여전히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고교 졸업을 일년 앞두고 전학을 하게 된 아들녀석(더구나 수석을 놓치지 않았기에 수석 졸업은 따놓은 당상이였음에도 불구하고....)이 많이 서운했겠지만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기꺼이 따라와 준 녀석이 얼마나 기특한지.....

 

* 참고로 이곳 미국 대학 학비는 사립학교 빼놓고 각 주(state)마다 하나씩 있는 주립대학의 학비는 그 학교가 위치해 있는 주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 입학할 경우 타주에서 온 학생들이 내는 학비(약 $40000)의 1/10 수준($4000)이기 때문에 그 혜택을 받으려면 적어도 그 주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 주사람이 되기 위해선 그 주에서 최소 1년 이상 거주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래서 우린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하게 졸업 1년을 앞두고 이사를 해야만 했다.

 

의대 학비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만년 월급쟁이인 우리의 경제적 여건상 남편과 난 녀석의 양해와 장기적으로 철저히 계획을 세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만약 녀석이 지금 기다리고 있는 Presidential Scholarship 이란 4년 장학금을 받게 된다면 신나는 보너스가 되겠지만서도.....

 

그렇게 2006년의 상반기를 보내며 낯선 씨애틀의 여름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은 늘 그랬듯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지만 역시 큰도시가 주는 장점은 참 매력적이였다.

낯선 환경과 기후임에도 대도시의 복잡함은 삶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대도시의 편리함은 선인장 마을과는 달리 한국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흥분을 내게 주었다.

 

마치 한국의 백화점 내, 대형 식품점을 연상케 하는 한국 마켓에서 들려오는 한국말들....

 

"생선, 원하는대로 손질해 드림~~"

"배추 한상자 빅 세일~~"

"오징어 젓 한팩사면 하나 공짜~~"

"붕어빵 2개 $1.00~~"

"김! 즉석에서 구어 드립니다!"

"$100 이상 구매시 쌀 한포 보너스!"

"즉석 두부, 순두부 판매~"

"호두 과자 한봉지 $2.00"

....

...

마치 시골 아낙이 서울 처음 올라와 눈과 귀가 휘둥그레지는 양 나의 일과는 그 대형마켓에 출근 도장을 찍는 것으로 시작했었다.

 

'어젠' 고등어 한마리 조림용...

'오늘'은 새송이 버섯과 순두부 하나....

'내일'은 살아있는 게 사다 찌개 끓이고...

...

참 재미난 삶의 시작이였다.

둘러보니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도 참 많이 있었다.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약 10만이 넘는 이곳의 한인들은 참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향기가 여기 저기서 나는 듯하다.

이것이 삶인 것을.....

서로 시기와 싸움 속에서 늘 서로 그리워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교포들...

우물안과 같았던 선인장 마을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우물 밖의 세상(?)에 나는 이렇게 서서히 들어서게 되었다.

 

난 그 세상에서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는 장난끼가 발동해서 큰 대형마켓에서 공모한 주부 백일장에 응모를 했고, 대상에게 준다는 김치 냉장고에 흑심이 있었건만 3등에게 준다는 대형 압력솥으로 거만한 위로(?)를 했던 추억의 시간....

 

그것을 인연으로 우연찮게 맺어진 이곳 한인 라디오 방송국과의 관계....

공중파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 생활인지, 미국 생활인지 돼체 구분이 되지 않는 이곳에서의 생활... 어찌 불평 불만이 있을 수 있을까!!!

 

붉게 물들었던 거리들은 나에게 첫가을의 찐한 추억이 되어 새겨져 버렸고, 몇날 며칠 계속되는 겨울비 속의 씨애틀은 남들과는 달리 내게 전혀 불평거리는 되지 못했다.

 

이젠 보슬비만 내려도 우산을 폈던 나의 촌스러웠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렸고, 주룩 주룩 비가 내려도 여유있게 걸어가는 6개월차 씨애틀 시민(?)이 서서히 되어가는 나는 다시 한번 '감사'란 두글자를 새겨 볼란다.

 

선인장 마을에서 너무 뜨거웠던 태양을 불평하지 않았듯이 너무 자주 내리는 겨울비에 불평하지 않고 작지만 커다랗게 느낄 수 있는 내 지금 주변 환경에 나의 심장이 뛰는 그날까지 감사하리라, 그 모든것이 생각의 차이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