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줌마 경력 19년, 어미 경력 18년차....
자식을 향한 강한 어미로서의 본능은 그 누구도 내게 가르켜 준 적은 없었다.
그저 자식(?)이 자식(?)을 낳아봐야만 알게 되는 것을.....
나 역시 18년전 첫아이를 낳으며 친정엄마에 대한 고마운 그리움(?)을 알았고, 요즘은 애틋함(?)으로 진정한 감사를 알게 된, 철든 아줌마...... 흠~
며느리로서, 아버지의 딸로서는 이미 늦어버렸지만 그나마 엄마의 딸로서 주어진 그 귀한 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얼떨결에 싱글(?)이 된 우리엄마....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드시는 재주로 늘 웃으시는 엄마의 얼굴엔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로 한동안 깊은 상실감 속에 많이 힘들어 하셨다.
아들들이 주는 위로(?)와는 달리 딸이 주는 위로(?)를 은근히 더 많이 기다리셨던 엄마...
연말의 짧은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배려로 우리 가족이 엄마와 함께 한국서 보냈던 지난 겨울밤의 추억들....
자식은 늘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는 옛말(?)을 절실하게 경험한 탓에 난 되도록 주어진 여건속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했다.
그 이듬해 여름 아이들과 한국을 방문하고 같이 미국에 오신 엄마와 난, 단 둘만의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이미 개학을 한 아이들이 있었기에 남편의 특별한 배려(?)가 아니였으면 불가능 했었을 시간들....
엄마와 딸....
둘만이 가졌던 2003년 여름의 그 여행은 엄마와 내겐 너무나도 값진 추억이 되었다.
같은 여자로서 교감할 수 있었던 삶의 이야기...
그것으로 난 엄마의 지난 인생을 엿볼 수 있었고, 엄만 어느새 중년에 들어선 딸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새로운(?) 버팀목을 발견하시게 된 모양이다.
비록 아빠의 자리를 대신 할 수는 없었지만..... 흠~
여행사를 통한 내 생애 첫 단체 관광여행....
여러 모습의 사람들과의 합류로 또다른 삶을 구경했던 아주 귀한 시간이였고, 내 개인적으론 참 신기하기도 했다, 가지각색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 부부 단체 여행객들이였지만 간간이 우리같은 모녀사이인 관광객도 눈에 띄였다.
하지만 단 한팀도 시엄니와 며느리 관계인 관광객은 없었던 그 사실은 내게 적잖은 충격(?)이였다, 아들 둘 갖은 어미로서... 쩝~
4박 5일의 길지 않은 여정이였지만 엄마와 내 가슴속에 새겨 넣었던 그 특별했던 여행은 록키산 만큼 푸르고 풍성한 추억으로 감사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우린 여행이 주었던 여유로움으로 차츰 각자의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9월에 들어서며 아들넘들은 한학년씩 올라갔고, 녀석들의 익숙해진 고교 생활은 눈코 뜰새 없이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큰녀석이 Marching Band에서 지휘(Drum Major)를 하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남편과 난 아이들 학교에 봉사(?)를 하게 되었다.
내 어릴적 기억속에선 부모의 학교 활동 참여는 곧 '치맛바람'과 연관되었지만 이곳 학교에서의 부모들 참여는 말 그대로 순수한 봉사활동(?)이였기에 나의 지난 편견(?)들을 바꾸게 된 아주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9월부터 12월까지 거의 매주 있는 밴드부의 행사로 봉사하는 부모들의 참여는 생각보다 굉장히 적극적이였고, 서로 궂은일 마다 않고 성실하게 돕는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동양인이 거의 없던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은 물론 남편과 나의 존재는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였기 때문에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아주 작은 것으로 인한 편견(?)이 살아가며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었으니깐...
도둑질을 했던 한 흑인을 보고 흑인들은 다 그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하루 일하고 말 없이 나오지 않는 한 히스패닉을 보고 모든 히스패닉들에게 성실하지 못하다는 편견을 갖게 되듯 동양인으로서의 무심한 행동과 언어 하나로 모든 동양인을 판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늘 신경쓰고 있었다.
임명장 없는 민간 외교인(?)으로서의 자세를 기억하며..... 
그리 나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너무 몸 사리며 뒤로 물러서지도 않으려 했고, 그저 봉사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며 나름대로 '자원봉사'의 참 의미도 배우게 되었던 시간들....
봉사란 남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내 자신에게 주는 만족과 희열이 더 큰 것을....
더불어 아이들 학교 활동에 부모의 참여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것도 알게 되었다.
개개인의 악기로 큰 화음을 이뤄 내듯이 작은 참여로 커다란 봉사를 하며 학교내 특별활동하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단결 또한 보기 좋았다.
우린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배우게 된, 작지만 커다란 희망을 알게 해준 참 값진 추억을 나눠 갖게 되었다.
한학기동안 밴드부의 행사는 아주 많이 있었고, 더불어 아줌마인 내가 지난 많은 시간들처럼 내 자신의 계발을 위한 투자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또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해 준, 보람의 해(?)가 가고 있었다, 아쉽게도 후다닥~~~
그해, 12월......
녀석의 마칭 밴드부는 샌프란시스코 Diamond Walnut Bowl 이란 프로 풋볼 게임에 초대되어 한해를 마무리 하며 휘날레 Marching을 하게 되었고, 우린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바라보면서 요란하고 화려한 폭주를 터뜨리며 2003년을 보내고 2004년을 맞이했다, 빗속에서 오돌 오돌 떨어가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