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아보니(18)....
뒤 돌아보니 2005/10/12 03:37   http://blog.azoomma.com/nayamina/207310

 

 

정처없이 방랑하는 의미의 낭랑, 그리고 18세(?).....

 

18년차 들어선 나의 아줌마(?)란 삶이 조금씩 방랑(?)을 했던 2002년 초반....

 

지난 일년동안 내게 그 어떤 예고도 없이 왔다간 슬픔과 고통과 불행들로 컴에 관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등록해 놓았던 여러가지 수업들을 놓쳐야만 했다.

그렇게 한번 꺼진 엔진(?)을 다시 켜고 싶다는 의욕은 내게 쉽게 생겨나지 않았다... 쩝~

 

그나마 혼자 운동하는 시간이 내게 가장 유일한 위안이 되었고, 가족을 위한 메뉴를 정하기 위해 들여다보는 요리책보다 뭔가 겉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여러분야의 책들을 무작정 읽어대기 시작했다.

 

그때의 엄청난 독서량은 지난 내 시간을 통틀어도 비교가 되지 않았을 정도였고, 그렇게 보이지 않은 위로가 마음에 쌓여가는 만큼 내 속의 불안함은 조금씩 해소가 되어가는 듯 했다.

 

시간은 나의 희노애락(?)과 무관하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잘도 가고 있다.

이 사막의 구분되지 않는 겨울과 봄이 가고 여름이 올거란 뜨거운 태양의 안내로 난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준비(?)하기로 했다.

뭔가 내가 서 있던 그 깜깜한 탄광터널(?)에서 빠져나올 이유들을 찾고 싶었다, 억지로라도...

 

이젠 대학교 입학을 앞둔 큰녀석의 학교 문제로 내 삶의 부대낌보다는 부모로서 겪어내야 하는 소소한 문제들로 다시 '엄마'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란걸 깨달아야만 했다.  흠~

 

늘 그렇듯이 첫아이와의 모든 문제는 오래도록 고민을 하고, 신중하게 선택을 하는 습관이 있다.

누구든 첫경험에 대한 불안한 심리, 그리고 상대적으로 갖게 되는 희망.... 부조화 속의 조화(?)... 아이들로 인해 여러가지 간접 경험을 하게 되는 건 '부모'로서의 특권같기도 하다...

 

명문 사립고 입학을 심각하게 고민하던중 결국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로서의 자신감에 더 비중을 둔 우리는 주저없이 집에서 젤 가까운 공립학교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입시 전략(?)에 들어갔다.

 

대학입시를 위해 아이와 함께 동참해야 할 부모의 역할(?)을 찾지 않았더라면 어쩜 난,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입수하는 각 대학의 입학 정보로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기에 아이와 의논하며 미리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서두르는 부모의 모든것이 이제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녀석에겐 엄청난 부담일 수 있었겠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곳의 대학은 학교 성적은 기본이여야 했고, 그외 과외활동(?)이 크게 좌우 되기 때문에 부모의 정신적인 서포트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부모로서 할 수 있었던 것들은 굉장히 제한되어 있었기에 그 또한 쉽지 않았음을....

 

큰아들 녀석 나이 17세....

만만치 않은 나이....

아는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는(?) 겁없는(?) 나이.....

 

이제 부모의 기준이 되고 있는 지난 시간(?)들은 녀석에게 구식이 되었고, 그래서 오는 시대의 격차를 서로 답답하게 느끼며 피 튀기게 오갔던 저녁 식사중의 설전(舌戰)들......

 

시작에 불과한 사춘기 아들넘과의 전쟁(?).....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와 말투며 모든 생각이 똑같은 두 남자들의 팽팽한 의견 대립...

그런날 일수록 나의 역할(?)은 바빠지고 있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중재자의 역할이 이렇게 힘겨운지 몰랐다.. 쩝~

 

이제 더이상 사랑의 매도, 협박(?)도, 반성문도 필요없는 사춘기 녀석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써먹을 수 있었던 건, 단 한가지.... 눈물의 호소.......

 

맘 여린 녀석은 그 방법이 젤 잘 먹혔다....

 

그해 여름방학을 맞아 고국에서 보내게 될 녀석들의 스케줄을 짰다.

 

'사랑의 집짓기'단체인 해비타드에서의 봉사활동과 초등학교 영어 봉사 활동, 그리고  짭짤한 대학생과의 영어 아르바이트.... 간간이 배우러 다녔던 클래식 기타 교실....

녀석들의 서울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후다닥 가고 있었고, 2002년 그해 여름은 녀석들에게 또하나의 진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붉은 티셔츠로 한국 국민의 열정을 몸소 느껴봤고.....

'대~한민국, 짝짝~짝 짝 짝' 이 우리 가락에서 빌어온 것도 알게 되었고....

태극기를 그려 넣은 친구네 티코(?)를 타고 홍대 앞에서 낯선 이들과 축하를 나누며 하나(?)임을 알았고.....

.....

무엇보다 큰녀석은 서서히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녀석은 내게 속삭였다...

이제야 자기가 한국인임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그간 우리 모르게 녀석은 정체성 혼란으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었나 보다.. 쩝~

 

또래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한번쯤 꼭 겪어야 하는 그들의 정체성 고민....

부모로서 해줘야 할 일은 그저 그들의 거울(?)이 되는 수 밖에 없음을....

더 이상 남편과 난 게으를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지독하게 사춘기를 앓아가는 녀석과의 자질구레한 갈등은 여전했지만 아들넘들은 그나마 크게 속 썩이지 않고 책임감 있는 학생들이 되고 있었다.

 

오래전에 들여 놓은 공부 습관으로 스스로들 알아서 잘해 주었고, 난 예전보다 녀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남편과 난, 사춘기에 접어든 녀석들을 위해 몇가지 결심한게 있었다..

 

오래전 부터이긴 하지만 우리 방은 물론 녀석들의 방문은 절대 닫지 않게 버릇을 들여놨었다.....

어느 날, 녀석들의 방문이 닫히는 그 순간부터 부모와의 단절(?)을 예견하는 무언의 행동일거란 이유였기에 애초 어릴적부터 방문을 닫고 키우지 않았었고......... 

 

그 다음으론, 다 큰 녀석들이라고 해서 절대 집에 혼자 두지 않았다.

아이들 스케줄에 내가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아이들이 집에 있을땐 나만의 외출은 거의 삼가했고....

해가 진 이후의 외출은 남편이나 나나 몸소 실천함으로써 녀석들의 쓸데없는 외출도 불허했다, 당당하게....

결과적으론 부모로서 모범을 보여주고 녀석들에게 큰소리(?) 치자는 작전!!!!

 

사실 녀석들 또래들이 따라오기엔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어른들의 횡포(?)였을지도 모르지만 감사하게도 잘 따라와 주었다.... *^_^*

 

전화통을 잡고 몇시간을 통화하는 녀석과의 잦은 말다툼(?)은 있었지만 학생으로서의 신분(?)을 잊지않고 열심히 하는 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저... 고맙다.. 라는 세마디....

 

작은녀석은 큰녀석에 비해 뭐든 좀 수월하게 키웠던 것 같다...

역시 뭐든 처음이 힘들지, 그 다음부턴 쉬워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시간은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흐르고 있다, 여전히..

자식(?)으로선 한없이 나약해지더니 부모(?)로선 끝없이 강해지고 있음을 느끼며 보낸 2002년의 겨울은 그나마 내게 작은 행복을 가져다 주려고 맘먹은 모양이다..

 

난 이제사 아직 끝나지 않은 '엄마'라는 직함으로 18년차 아줌마의 정신적 방황을 서서히 멈추려 하고 있었다, 어미라는 이름의 강한 의지(?)로....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