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아보니(17).....
뒤 돌아보니 2005/10/09 00:50   http://blog.azoomma.com/nayamina/207029

 

 

17년차 아줌마의 마음엔 惡의 교만(?)이 서서히 지배하고 있었다.

 

미국 땅에서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중증 장애인(?)일 정도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인데....

그런 엄니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가 엄니와의 한지붕 동거(?)을 거부했던 내 자신을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도 나에 대한 사랑의 부족으로 그렇게 내 속의 괴물은 조금씩 자라가고 있었나 보다.

 

두지붕 한가족(?)에 대한 제안으로 떳떳한 내 감정을 표출하긴 했지만 너무 이기적인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스스로 예민해져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늘 내 속의 善과 惡이 싸우면서 날 괴롭혀 왔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지난 삶이 그러했듯 내게 처한 환경에 최선을 다하려 했고, 되도록 후회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내 속의 불편함(?)은 없어지지 않았다. 쩝~

 

그나마.....

이른 아침 드리는 전화로 엄니의 무사한(?) 새하루를 확인(?)했고, 점심 때 드리는 전화로 따분할 것 같은 오후의 맛난 수다(?)를 떨어 드렸고, 늦은 저녁 드리는 전화로 하루를 마감하는 생활의 의무(?)를 매일 지키며 나름대로의 작은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런것 또한 차츰 의무와 상관없이 반복되었고, 그렇게 나의 또다른 습관이 되어버린지 일여년.....

 

밀레니엄이란 설레임도 슬그머니 사라짐과 동시에 난 내 생활에 대한 애착도 함께 잃어버렸던 것이다.

얼마전부터 꿈틀거리는 괴물이 이번엔 내 삶의 의욕을 삼키려했던 모양이다.

 

중, 고생이 된 아들녀석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는  키만큼 말수도 적어지고, 남편은 사춘기 들어서려는 두 아들녀석과 혼자 계신 엄니의 걱정으로 예민해 있었는지, 나와의 대화는 늘 높은 언성으로 끝을 내곤 했다.  흠~

 

'싫었다'.....

상황들이 싫었고...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싫었고..

생활이 싫었고....

모든 사람들과의 갈등이 싫었다...

...

왜 싫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때의 이유를 찾아보곤 하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왜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난 아직도 그 이유를 대답할 수가 없다...

그냥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자꾸만 묻는다, 왜 사랑하느냐고....

모든 사람들은 구체적인 이유들을 알고 싶어했다...

사랑하는 것도, 싫은 것도....

그러나....

모르겠다, 여전히.....

 

지독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2000년을 보내며 덤덤한 2001년을 맞이했던 나.....

 

심한 회오리 바람이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는, 새해에 꾸었던 그 꿈이 우리집에 요란한 풍란(?)을 예견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우리가족은 천천히 탄광(?)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3월의 그날,

역시 엄니와의 아침 통화는 예전과 똑같이 평범했었다.

잘 주무셨느냐...

식사는 하셨느냐....

오늘 날씨는 어떠할거라는.......

전원일기의 일용엄마가 무슨 말을 했드라....

탤런트 누구랑 누가 결혼한다더라...

.......

혈압약 잘 챙겨 드시라는 끝인사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느새 점심을 알리는 뻐꾸기(?)가 울어대면....

나의 손은 자동으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고, 엄니께 번호를 돌린다.

 

그날은 요란한 벨 소리가 엄니의 부재을 알려주었다.

그날 외출 계획이 없으셨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텃밭에 물을 주러 가셨을거란 생각을 했던 바로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엄니가  병원에 가셨다는 시누님의 소리가 저 멀리서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우린 일년이 조금 넘어 그전에 했던 것처럼 검은색 옷을 챙겼고, 8시간의 침묵과 함께 그해 핀 들꽃들의 똑같은 슬픈 배웅을 받으며 엄니께 달려갔다, 예전처럼 아무말 없이....

 

나와의 아침 통화를 마치신 엄니가 바로 화장실서 쓰러지셨단다...

혈압으로 인한 심장마비란 死因을 가슴에 달고 일년전 아버님이 누워계셨던 그곳에 똑같이 누워계셨다.

 

하얀 분가루는 엄니의 검버섯을 충분히 가리고 있었고, 평소 그날(?) 입으시겠다는 회색의 투피스 정장과 잘 닦인 검정색 구두를 신고 아버님을 만나러(?) 가실 채비를 하고 계셨다.

몇시간 주어진 엄니와의 작별시간...

차가운 나무 조각같은 느낌의 엄니 얼굴과 손을 잡고 아무리 만져봐도 '민아야, 사랑한다..'라는 따뜻함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 아닌데...

아직 가시면 안되는데...

오후에 맛난 수다도 아직 떨지 않았는데...

저녁 인사도 드려야 하고....

날..

용서도 해주셔야 하는데....

...

두번째(?) 가족을 보내는 슬픔은 이상하리 만큼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나의 뇌속의 모든 액체들이 죄다 빠져버렸을 것 같은 느낌...

더이상 내 의지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움직이는 식물인간(?)이였을.....

 

모두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끼니만을 겨우 겨우 챙긴채 각자의 슬픔을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남은 자들은 또 살아가고 있었다....

 

그해 여름..

엄니 100일 탈상이란 핑계로 엄니 옷가지 몇개 챙겨들고 한국에 갔다. 

친정나들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생전 그렇게 그리워 하셨던 엄니 고향에 가기 위해서...

 

72년간 맺힌 엄니의 그리움을 달래주기 위해 옷 몇가지 태운 재를 고이 담아 우리 가족은 무주행 완행 버스를 타고 무작정 깊숙한 마을에 다달았다.

어딘지는 몰라도 '무주'라는 글자만으로도 엄니가 기뻐하실 것 같았다.

 

아이들과 산위로 올라가 정성스레 재를 뿌리며 하늘에서의 엄니와 아버님의 재회를 축하해 드렸다, 기쁜 마음으로.....

 

이제야 겨우 한가지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보상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얇팍한 내 마음이 잘했다고 나를 위로한다..

 

친정아버지의 든든한 격려로 남편은 슬픔을 삼켰고, 친정엄마의 잔잔한 사랑으로 엄니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울 수 있었다.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가족을 잃는 슬픔을 난 이렇게 겪어가고 있었다, 그해 여름 들어서는 문턱에서....

 

새삼 피를 나눈 혈육에 대한 소중함 또한 절실하게 깨닫게 될즘, 온가족이 함께 특별한(?)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가 겪은 이별의 아픔을 통해 잠시 깨닫게 된 그 무엇(?)으로 가족의 단결(?)을 추진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내 맘속의 엄니를 무주에서 보내드리고 돌아온 몇일 뒤, 떠난 가족여행...

우린 비가 내렸던 제주도에서 4박 5일을 보냈다.

친정 부모님의 삼남매(?)와 손주(?)들..... 

든든한 대가족들의 여행으로 또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돌아온 그해 무더운 여름밤....

 

자식들이 과도하게 지출했을 여행 경비를 걱정하시며 잠자리에 드셨던 친정 아버지께서 그 다음날이 되었는데도 영영 깨어나시지 않으셨다...

.....

아버지가 울 시엄니 뒤를 따라 가셨던 그날은 하늘도 많이 슬펐던 모양이다...

억수로 내린 비로 나의 눈물이 섞여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깐....

.....

아마....

그 많은 여름날들 엄마가 즐겨듣던 김범수의 '하루'라는 노래가 우리 온 가족이 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하루(?)'를 예견했던 모양이다....

 

17년차 아줌마의 2001년은 세번째(?) 가족을 잃은 커다란 상실감 속에 허우적 거리며 힘겹게 보내고 있었다.

 

'이보다 더 이상 나쁠 수는 없을거야'....

수없이 외친 나의 몸부림.....

그나마 신앙이 있었기에 겨우 지탱할 수 있었음을.... 흠~

 

내 머릿속에 떠오르려는 모든 잡념(?)들을 꽁꽁 묵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난 밤새 십자수를 놓았다....

남아있던 그해를 온통 십자수로 수를 놓았던 것이다...

잡념들이 삐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으려고....

아무 생각없이....

 

내속의 괴물은 나의 의지를 삼켜 버렸고, 슬금 슬금 '아내'와 '엄마'의 자리도 방해하고 있었다.

 

사람이 의욕을 잃고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의욕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가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난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저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형상들이 내게 살아갈 이유를 자꾸만 자꾸만 던져준다....

웃고 있는 아이들...

고등학생이 된 큰아들녀석의 한마디가 나를 깨운다....

 

슬픔을 너무 길게 품고 있지 말라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떠나신게 아니라고.....

자기 가슴에 아직도 살아계심을 느낀다며,

엄마도 느껴보란다.....

 

슬그머니 내 손을 가슴에 얹어 보았다....  세 분의 심장이 뛰는 듯했다....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다시는 안을 수 없지만 늘 함께 하실거란 나 혼자만의 약속을 믿기로 했다.

 

그 약속은 내게 살아갈 희망을 주었다.

이제야 아이들의 얼굴이 차츰 또렷이 보이면서 서서히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남편의 슬픔까지 챙길 마음은 없었다.  겨우 '엄마'라는 자리로만 돌아오기로 했다.

그래서 '아내'는 강하지 않아도 '엄마'가 훨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남편역시 '아빠'란 책임감으로 맘놓고 슬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이도 시간이 모든걸 해결해 주었다.

 

2001년은 엄청난 슬픔을 내게 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삼십년지기 친구 두명에게도 아버지들과의 아픈 이별(?)을 남겨준 아주 고약하고 괘씸한(?) 해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