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돌아보니(16)...
뒤 돌아보니 2005/10/08 04:05   http://blog.azoomma.com/nayamina/206938

 

 

2000년의 봄.....

봄꽃들을 감상하기 보단 무차별하게 날아다니는 수많은 꽃가루들로 차라리 서둘러 사막의 여름이 오길 기다렸던 그 때......

 

아침에 남편이 출근한지 30분도 채 안되어 요란하게 울려댄 전화벨 소리...

 

엄니의 다급한 소리는 아버님이 쓰러지셔서 병원에 실려 가셨단다....

너무 놀라 재차 묻는 내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당황하심과 두려움을 대신하셨던 엄니....

그럼에도 검정색(?) 옷들을 챙겨오라셨던 엄니...

 

집으로 되돌아온 남편과 함께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라스베가스로 향하던 8시간동안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쁘고 자연의 신비로움을 전해주었던 작년의 그 들꽃들도 우리의 슬픔을 아는지 웃어주지 않았고 그저 작은 움직임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린 80시간을 달려온 것 같은 지루함과 상상하고 싶지 않은 앞으로의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원에 도착을 했다.

 

내 어릴적 기억속의 영안실하곤 전혀 다른 그곳(?)에 아버님이 계셨다.

 

그냥 무서웠다.

내게 닥친 가족의 죽음이란 단어가 무서웠다.

난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데....

...

엄니와 함께 돌아온 집엔 아직 아버님의 흔적이 여기 저기 남아 있었다.

움푹 파여있는 한쪽 카우치.....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던 카드들....

셀수 없을 정도로 쌓아놓으신 컨츄리 음악 CD들....

그리고...

유난히 눈에 띤 수많은 약병들.....

 

겉잡을 수 없는 눈물을 몰래 훔쳐내시는 엄니는 상황을 인정하고 싶어하시지 않을만큼 침착(?)해 보이셨다.

무섭고, 두렵고, 죄송해서 흘리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정신 차리자고 하신다.....

그래야 한단다.....

 

전혀 경험도 없는 이곳 장례식장에서의 해야 할 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의 두려움과 무서움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고, 난 그제서야 아버님과의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드릴 수 있었다.

 

하얀 분(?)을 바르고, 고운 양복을 입고 누워계신 아버님은 웃고 계셨다.

아주 편해 보이셨다....

루마치스로 인한 고통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난 아버님의 커다란 손을 잡아 드렸다....

불뚝 삐져나온 뼈마디는 예전 그대로였고......

차가운 느낌보다는 마치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진 듯한 딱딱한 느낌은 들었지만,

시집온 첫날 내 손을 잡아 주셨던 그 느낌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난 아버님께 속삭여 드렸다....

엄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

짝잃은 반쪽 비둘기(?)가 되신 엄니는 허전한 둥지(?)에서 이제사 통곡하신다...

...

난 가족의 사별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살아있을 이유를 만들어주지 않을거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남은 우리들은 끼니를 챙겨 먹고 있었다, 여전히... 흠~

 

그렇게 끼니를 때워가며 우린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사셨던 엄니의 거취......

남아있는 자식들의 설전(?)에도 불구하고 그 둥지에 혼자 남으시겠다는 엄니를 그 어느 누구도 말릴수가 없었기에 우린 엄니 혼자만의 배웅을 뒤로 한채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물론 가까운 곳에 다른 자식들이 살고 있지만, 깨물면 다같이 아픈 손가락(?)이라 할지라도 각 손가락이 느끼는 아픔의 통증(?)은 제 각기 달랐기 때문에 게중 어떤 한 자식(?)에게 맘이 끌리는 건 부모의 어쩔 수 없는 또 하나의 마음이기도 한 것 같다.

 

늘 우리와 함께 살고 싶으시다는 엄니는 이층집이라 위험하고 불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우리와의 동거를 잠시 미루셨고, 이제서야 홀로서기(?)를 해 보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자식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맘이듯이 그 때 역시 부모님 하시고 싶은대로 하시게 놔 두는 것 또한 자식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생각으로 우린 엄니의 홀로서기를 도와 드리기로 했다.

 

아버님의 빈자리를 메워 드리려 우리가 더 자주 드나 들었던 라스베가스....

 

문득 김장을 하시고 싶어했던 엄니를 돕기 위해 혼자 이른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갔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게 된 2000년 초겨울.....

나만의 자유여행(?)으로 엄니와 단 둘만의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도 모른채....흠~~

 

엄니랑 장도 보고, 김치도 담그고, 맛난 짬뽕도 먹고, 쌀통에 쌀도 가득 채워 드리고, 집안 구석 구석 먼지도 닦아 드리고....축 쳐진 엄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세월의 흔적을 되짚으며 날샜던 그 날의 추억.......

 

그럼에도 난 맘 한구석 여전히 엄니의 거취로 고민하고 있었다...

아버님의 빈자리는 하루가 다르게 엄니의 얼굴빛을 어둡게 만들었기 때문에 말은 하지 않아도 남편과 난 맘이 급했다.

 

그당시 내 맘에 善과 惡이 싸우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善이 말한다.....

당연히 엄니는 내가 모시고 살아야 한다.....

형제들중 나와 맘이 젤 맞으니깐....

그리고 생활도 젤 안정되어 있으니깐.....

 

惡이 나선다....

아무리 엄니가 좋은 분이라 해도 잠깐씩 만나는 거랑 같이 사는 건 생각보다 많이 힘이 들거란다...

엄니 오시면 나의 모든 생활에 적잖은 제약이 있을거란다...

순간 다혈질(?)인 우리 부부의 다툼(?)도 제대로 할 수 없을거란다...

....

이렇게 善과 惡이 한참을 싸우고 있었다....

누가 이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승자는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어 갔으니깐... 쩝~

 

여러날 심사숙고 끝에 남편에게 제시를 했다.

엄니는 우리가 모셔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난 한 지붕(?)에서 같이 사는 건 자신 없다고...

엄니 역시 한집에 사시면서 엄니 하고 싶은대로 절대 하시지 못할 거라고...

식사는 함께 하면서 각자의 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이 나뉘어져 있으면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고.....

그래서, 뒷마당에 있는 농구장 자리에 작은 집을 지으면 어떻겠냐고...

그리곤...

한지붕 두가족(?)과 두지붕 한가족(?)에 대한 차이는 아주 클거란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논리(?)와 함께....

 

남편 역시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한집안에서 생길 자질구레한 불편(?)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이런 생각(?)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마누라에겐 많이 실망(?)했었을 것 같다, 솔직히...  쩝~

 

연세에 비해 쿨(?)한 엄니셨기에 우리 의견에 동의는 하셨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신다...

조금더....  한 2~3년 뒤에 그렇게 하자신다....

 

내속의 惡이 말한다....

시간(?)을 좀 벌어 놓은 거라고......

 

그러나 그것은 그 이듬 해에 아주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이 되어버렸다...

 

결국 내 안의 惡이 승전가(?)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의 그 무서운 괴물을 깨워가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