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이 주는 위력(?)은 아주 대단했다.
낯선 도시임에도 역시 아이들다운 친화력(?)으로 그 어떤 어색함 없이 그곳의 아이들 속에 쉽게 흡수되어 갔다.
맹자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삼천번 이사를 했다는 옛말이 가슴에 와 닿을 즘, 큰아이가 조금씩 내 키를 넘기며 크고(?) 있었다.
아이들에겐 본격적인 리더(?)가 필요한 시기.....
남편에겐 평범 그 이상의 교육관이 있었고, 나 역시 합리적인 남편의 제시에 착실하게 동참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부터 아이들 양육엔 아빠의 동참(?)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몸소 경험하지 않았나 싶다...
누구나 그렇듯이 아이들이 전부인 남편의 아버지 역할은 쉽사리 따라하지 못할 열정(?)과 유별난 자식사랑(?).. 그리고 남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완성(?) 되었던 과거 어린 시절의 '가정'이란 울타리..... 그 모든 것에 대한 스스로의 보상(?)이였을 것이다.
그만큼 '가정'에 대한 남편의 집착(?)은 대단했다.
넉넉하지 않았던 월급쟁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한국인임을 잊지않게 매년 외갓집 나들이로 한국인의 정신적 문화(?)를 배우게 했고, 모든 학교 행사에는 결근을 하면서까지 참석했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든 변화 하나 하나를 머릿속 깊이 기억해 놓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편.....
그런 남편과 내가 하나가 되어 아이들을 이끌어가고 있음은 하나가 아닌 둘이였기에 힘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린 '남편과 아내'의 역할보다는 '아빠와 엄마'의 역할에 더 중점을 둬야하는 시점임을 침묵(?)으로 서로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새 도시에서의 적응은 늘 그래왔듯 시간이 걸렸고, 아이들 학교간 사이 내게 주어진 많은 시간들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14년차 아줌마의 가을....
거의 매일 아이들의 암산 능력을 위한 간단한 문제(?)들을 만들어 놓고.....
방과후 생활 습관을 위해 일정한 시간표를 작성하고.....
하루를 계획하고, 한주를 계획하고, 한달을 계획하는 방법을 보여주면서 서서히 아이들 학습 습관 길들이기에 도움을 줄 '학습매니저(?)'라는 새로운 직함을 내 스스로에게 임명을 했다.....
그간 방치되었던 녀석들이였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스케줄이라 다행스럽게도 무리없이 잘들 따라와 주었다.
더 이상 사랑의 매(?)는 필요없었다, 반성문을 쓰게 함으로 작문 공부를 대신했으니깐....
그리고 매주 배달해준다는 일일 학습지도 필요없었다, 교과서(?)에 있는 문제(?)만 풀어도 시간이 모자랐으니깐.....
처음 몸을 비비 꼬며(?) 시작했던 그 스케줄에 아이들이 익숙해져 갈 때 나 역시 이제 겨우 제대로 된 학부형(?)이 되어갔다.
'습관'이란 것이 수없는 반복(?)에 대한 결과이기에 어느새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올바른 학습 습관에 길들어져 가고 있었다, 더이상 이 조폭부모(?)의 그 어떤 협박(?)없이도...
반면 차츰 안정(?)되어 가는 나만의 낮시간들을 위해 기웃(?)거렸던 커뮤니티의 강좌들.....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목적있는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르는 아줌마로서의 삶에 큰 기쁨이 되었고, 더불어 아이들에게 몸소 실천(?)하는 부모가 될 수 있을거란 믿음과 함께 표현 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가끔 영양가 없는(?) 아줌마들의 수다가 주는 짧은 휴식의 행복 또한 함께.....
그 때 역시 길지 않은 나만의 하루(?)였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많을거란 오만(?)으로 여기저기 두드리고(?) 다녔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는 성서의 한구절처럼, 우연찮게 취직이 된 달라스 라디오 코리아의 가요 프로그램 DJ....
이민사회가 풍요롭지 않았듯이 영세한(?) 직장이였지만 나만의 시간중 몇시간을 투자하게 되었던 것은 건강한 나의 정신(?)을 위한 성실한 투자(?)란 생각 때문이였다.
프로듀서, DJ, 작가, 엔지니어.....
70년대를 연상케 한 스튜디오 안에서의 1인 4역....
가난한 월급(?)에 비해 내가 느끼고 있던 행복이 훨씬 더 풍부했던 시간들이였지만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날, 갑자기 회사 사정상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멈춰버렸다. 쩝~
사실 이민자로서의 삶이 고달프면 한없이 고달프고, 또 삶이 무료하게 되면 한도 끝도 없이 무료한다는 걸 알기에 난 늘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애나(?)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늘 새로운 도전(?)이 내게 주는 두려움(?)은 기쁨, 그 이상이였다.
어느날 우연한 정보를 통해 Certificate of Bank Teller 강좌를 듣게 되었다. 취직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내 미래에 대한 하나의 보험(?)이라는 생각으로....
자격증(?)이란 구분이 좀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Bank Teller에 대한 편견은 강좌기간동안 사라졌고, 사회를 향한 모든 도전에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개인의 '성실'과 '책임'이란걸 배우게 되었다.
이쪽 분야 또한 암산 능력(?)이 좌우 됨으로 딜러로서의 경험으로 동기생들보다 취직의 기회가 빨리 왔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풀타임 직원을 원한다는 거.... 흠~
남편과의 약속.. 무엇보다 내 자신과의 약속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까지 또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 난 씩씩한(?) 거절을 했다.
솔직하고 배짱 좋은 사람에게 주는 기회였을까?
운좋게 원하는 날과 시간대에 일을 할 수 있었고, 더불어 아이들 방학기간 동안은 무급휴가(?)를 얻을 수 있었던 최상의 조건으로 일했던 길지 않은 시간들.....
그렇게 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동안 철저하게 '아내'와 '엄마'가 되려했고, 내게 주어진 나만의 시간속에선 철저하게 '내'가 되길 원했다.
달라스에서의 2 여년.....
영국의 국모(?)였던 다이애나의 죽음......
콜롬바인 고교의 충격적인 총격사건....
무엇보다 우리 나라를 강타(?)했던 IMF.....
...
세상소식이 인생무상(?)이란 네 글자를 떠오르게 했던, 탈 많았던 그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두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밀레니엄(?)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었나 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