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이 된 12년차 아줌마'....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 단어(?)의 배합은 생각지 못한 에너지(?)를 방출해 주었다.
얼떨결에 본 평가 테스트로 시작된 나의 캠퍼스 생활은 젤 먼저 아이들 학교 스케줄과 맞추는 걸 원칙으로 했다.
비록 제약이 되어 있는 시간들이였지만 욕심내지 않는 이상 하나씩 이룰 수 있었고, 나와의 시간으로 인해 아이들 얼굴은 조금씩 웃음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이렇게.....
늦공부(?)가 내게 주었던 의미는 그 이상(?)이였던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이 있었고....
목적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여유가 있었다, 물질적이 아닌 정신적인......
(차츰 이런 즐거움의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나를 보고 베시시 웃는 남편의 얼굴을 난,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의 칼부림(?)으로 인한 흉터(?)가 눈에 자꾸만 띄었기에..... 그래서...난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말 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해서......
)
TV를 보는 시간보다 아이들과 함께 영어단어를 외우고, 아이들 학교 공부도 같이 복습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집 세학생(?)들은 서로에게 좋은 의미로 다가가고 있었다, 살곰 살곰....
10 여년이 훌쩍 넘게 다시 소속된 학생이란 신분.....
비록 속세(직장)에서 썼던 영어와 제대로(?) 된 영어의 엄청나게 다른 차이(?)로 인해 내 귀와 입이 새로운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었을지라도 난 절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절대로......
(아줌마란 참 좋은 것이다, 그 어떠한 용기를 모두 다 낼 수 있으니....
)
카세트 녹음기로 강의 시간 내내 녹음해서 집에 와 되풀이 해서 듣고 복습하고, 또 듣고 복습하고.....
내 열정만큼이나 언어 능력은 금방 향상되지는 않았지만 쉽게 포기하기엔 내가 느껴야 할 행복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난 그 시간들을 오래도록 붙들고 싶어졌다.
그건 아마 뭔가 열심히 배우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의 이른 새벽 출근으로 인해 내게 주어졌던 몇시간의 온전한 내 새벽시간(?).....
한잔의 커피와 교과서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꼼꼼하게 풀며 정답(?)을 찾았을 때의 그 쾌감은 딜러로서의 만족하고는 차원이 또 다른 거였다.
지불했던 비싼 학비만큼(?) 교수님 방을 들락거리며 어려운 프로젝트들을 해결해 가며 지냈던 소중한 시간들....
악바리 같은 근성만으로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아줌마란 걸 모두가 알아 버렸다.
내 생애 공부의 참맛(?)을 알게 해준 지난 2년이 넘는 시간들은 소중함, 그 자체였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조금은 럭셔리(?)하고 지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만회의 시간(?)들이였던 것 같다.
업그레이드 할 분(?)에 넘치는 학위는 더 이상 내게 필요하지 않았다.
내 가정의 리모델링(?)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깐....
중요한건 어떻게 관리(?) 하느냐였으니깐.....
(그 때 공부에 대한 내 열정을 본 남편이 말을 건넨다... 부모님이 공부 시켜준다고 할땐 그렇게 안했다고 하더니, 남편이 공부 시켜 준다니깐 더 잘되냐고.... 남편의 밉지 않은 빈정거림으로 얼어있던 서로의 마음에 한줄기 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
이제 다시 제대로 된 낮과 밤의 생활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익숙해져 있던 넉넉한 수입의 삭감(?)으로 보이지 않은 여러가지 많은 불편(?)들이 있었음에도 그 어떤 불만(?)들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아마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가정'에 대한 소중함을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나 보다... 
비(?)온 뒤 땅이 굳듯 우리집의 기반은 이제 겨우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멋쩍은 화해(?)로 어색했던 우리 부부는 어느새 예전의 다정한 부부로 바뀌어 갔고, 가끔은, 많은 이들이 가족 휴가를 보내기 위해 라스베가스를 찾아 오듯, 지척에 거주하는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내 호텔에 묵으며 보냈던 특별한(?) 여름 휴가들...
이렇게....
나는 남편이 내민 손을 잡고 서서히 잃어버렸던 행복을 찾아 길(?)을 나서고 있었다.
우린 이제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큰 웃음 소리와 멀리 있지 않았던 행복이 오고 있는 소리를....
그 웃음 소리는 어느새 크리스마스를 알렸고, 우린 그해 겨울, 매년 보냈던 크리스마스 카드용 가족 사진들 중, 가장 자연스런(?) 웃음이 있는 한장의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고, 리모델(?)한 우리집의 행복한 입주(?)를 자축하며 보낸 여러장의 카드들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약속한 공개 선언서(?)였기에 맞이한 그해 겨울은 참 따뜻했다.
무엇보다 나의 자리로 돌아온 걸 가장 기뻐해 주셨던 시엄니....
슬그머니 내 손잡고 하시는 말씀.....
당신 아들 성격이 괴팍하단다.... 그러니 맘 좋은 나보고 참으라신다....
당신 아들 어릴적 고생 많이 했으니 불쌍(?)하게 생각하라신다....
나밖에 당신 아들 데리고(?) 살 사람이 없단다....
그리곤....
미안하다시며 앞으론 잃어버렸던 시간만큼 더 많이 행복하라신다.... 
....
울컥 올라오는 그 무엇을 삼키며 엄니를 꼭 안아 드렸다...
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침묵만큼이나 깊은(?).....
부모님 가슴에 새겨버린 지울 수 없던 상처(?)였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던 유일한 것은 '용서' 뿐 이였기에..... 흠~
자식의 아픔(?)까지 짊어져야 할 부모님인 것을......
나에겐 이제 너무 늦은(?) 시간들이 되었고...
그것이 날 슬프게 한다, 아주많이.......
To be continued....